12. 옹천 언니

by 함완

사람의 이름은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불린다. 엄마 뱃속에서 살아갈 때는 태명을,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호적상 이름을, 가끔은 호적과는 다른 족보상 이름을 쓰기도 한다. 연예인이나 작가들은 예명을 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닉네임을 지어 본래 이름을 대신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는 ‘전주댁’처럼 고향 이름표를 달고, 격한 노동을 하는 이들은 이름도 없이 성씨로 불리기도 한다. “어이, 김 씨”라고 불릴 때 는 김 씨 성을 가진 아저씨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엄마는 대개 성식 아빠, 성식 엄마로 서로를 불렀다. 아니, 아버지가 엄마를 어떻게 불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여기, 이봐, 저기”와 같은 단어를 써서 부르던 기억이 더 많긴 하다. 두 분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본 게 몇 번이나 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친구분들에게 ‘뼁끼’라고 불렸는데, 이는 페인트나 칠을 의미하는 네덜란드어 ‘pek’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펭키’에서 온 말이다.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고 페인트공으로 페인트 칠까지 하는 아버지였기에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뼁끼라고 불렀고, 우리집은 뼁끼네로 불렸다. 아버지 당신도 평생 이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았을 거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아버지의 이름이 됐다.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페인트 칠을 그만두신 뒤, 사람들은 아버지를 더 이상 ‘뼁끼’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직업으로 불렸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게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가든, 모타, 정육점’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부르고 기억하기 편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은 숙명처럼 그들에게 착 달라붙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주부와 페인트 가게 주인을 겸했지만 그 시대의 다른 수많은 엄마들이 그랬듯 '누구 엄마'가 당신의 이름이었다. 엄마는 첫 자식 이름을 따 '성식이 엄마'로 불렸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만큼 몸 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가게 장사도 시원찮자 엄마는 청소일에 뛰어들었다. 엄마의 직장생활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관광 호텔을 시작으로 한두 번 일하는 곳을 옮겼고, 그 뒤에는 사우나에서 일을 하셨다.


엄마는 처음에 ‘청소 아줌마’로 불렸다.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청소 아줌마’가 가장 엄마를 명확하게 가리키는 말이었으리라. 엄마 외에도 그곳에는 ‘매점 여자’, ‘카운터 여자’, ‘매니저’, ‘세신 아줌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청소 아줌마’인 엄마는 사람들이 '청소 아줌마'라고 부르자, 몇 번을 듣고는 못 참으셨는지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단호한 목소리로 “야, 내가 왜 청소 아줌마야? 나 이름 있어. 이름 놔두고 왜 ‘청소 아줌마’라고 불러? 이름 부르기 어려우면 차라리 ‘옹천 언니’라고 불러.” 부모님이 사는 곳은 옹천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엄마는 한평생을 살아온 곳을 자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택했다.


엄마의 일갈로 '옹천 언니'라는 엄마는 새 이름을 어렵지 않게 획득했다. 이름을 쟁취한 시골 할머니. 난 엄마의 강단에 감동했고, 기뻤다. 당신에게서 가장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쉬운, 하지만 익숙하지 않아 어려운, 당신의 목소리 내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11. 감당할 만큼만 힘들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