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this out, 트레바리
문과지만 책과 담을 쌓고 살았다. 이건 마치 '술은 마쳤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맥락일까? 22살쯔음 이었다. 갑자기 마케팅에 빠져 관련 서적들을 등하굣길에 미친 듯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건 나의 기질 중 무언가에 빠지면 앞뒤 안재고 깊게 빠져버리는 성질과 연관이 있다. 이것이 나와 책과의 첫 애착 경험이었다.
트레바리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마도 3년 전쯤이었다. 아니 어쩜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기획이 신선하다 느꼈다. 책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도 모자라, 돈을 내고 사람을 만나다니! 자격증도 아니고, 인증서가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돈을 주고 사람을 만난다고? 어딘가 슬펐지만 동시에 흥미로웠다. 곧장 윤수영(=창업자)님을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갔다. 관심사가 생기면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그뿐이었다. 습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대전염병 시대가 도래하고 여행 대신할 수 있는 거라곤 독서뿐이었다. 웬걸, 생각보다 꽤나 즐거웠다. 그리고 20,21년 사내에서 (편의상) 다독왕으로 문화상품권도 받았다. 하지만, 나 금사빠자냐~ 읽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하고 싶어졌다.
90일의 휴식기 동안 가장 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빨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찰나 '트레바리'가 생각났다. 처음 윤수영 님을 팔로우할 때만 해도 이런 류의 유료 서비스는 트레바리 단, 하나뿐이었다. 요즘은 자기 계발 클럽들이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겼기에 더 많은 옵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트레바리로 결정했다. 본디 처음이 가장 강렬하지 않나? 여러 클럽 중 가장 먼저 사로 잡힌 것은 '혼자서도 단단하게'였다. 35만 원이면 책이 17권 정도 되려나, 대신 3시간씩 4번의 모임, 12시간을 사기로 했다.
첫 경험은 '글쎄'였다.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만큼도 아니었다. 아마도 헤매고 있는 나의 상황이 클럽에서도 이어진 듯했다. 그 무렵 시작한 심리상담 역시 헤매고 있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더더욱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은 지(조직 밖에서) 10년 만에 나를 소개하려니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몸이 증명이라도 하듯 첫 모임이 끝난 이후 집에 와서 쓰러져 자기 바빴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 새롭게 하는 경험, 이 삼합에 기가 다 눌려버렸다.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도 즐겁고 행복하지만, 삶 또는 읽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정말 복 받은 사람으로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 친구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냄비근성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던 내가 4개월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을뿐더러 추가로 다른 클럽을 결제해서 마지막 모임만을 앞두고 있다. 이 클럽은 '잘 산다는 것'이다. '혼자서도 단단하게'의 두 번째 모임이 진행될 쯔음 10여 권정도의 책들을 읽었는데 독서뿐만 아니라 모임의 나눔을 통해서 나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이 정도 힘이 있는 나눔이라면 다른 클럽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 싶었고, 그렇게 선택한 클럽이 '잘 산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클럽이 내게 준 것은 마침표보다는 물음표에 가깝다. 그랬는데도 왜 좋았냐고?
첫째,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나 관점을 독서만으로도 충분히 바꿀 수 있고 배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관점을 향유하고 공유한다는 것은 삶의 레벨을 약 1 정도는 올려주는 느낌이다. 이 시대의 배움이란 일방향에 가까운데, 쌍방향의 힘으로 끌어 올리는 힘이 느껴졌다.
둘째, 모임 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독후감 덕택에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 PT를 받아도 개인 운동 시간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과외를 받아도 혼자 학습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공유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독후감의 힘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6권의 책뿐 아니라, 6개의 글까지 생겼다.
독서는 좋아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게 트레바리는 22년, 초보자로 두는 첫 번째 스텝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도전과제를 주었다. 혼자서도 단단하게 잘 살아나가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지만 아직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트레바리 이전의 내가 출발선이 어딘지도 몰랐다면, 지금은 출발선에 발을 디딘 느낌이라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계기도 책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가 나를 또 어디로 끌어다 줄지 잘 모르겠지만 다시 나는 초보자로 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물음표를 던질 것이다. 언젠가 마침표는 찍힐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