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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주니 Nov 14. 2022

나는 오늘도 나를 모릅니다.

ESFJ-INFJ-ISTP, 나는 3개의 MBTI를 갖고 있습니다.

며칠 전 회사 게시판에 MBTI 검사 안내 공지글이 올라왔다. 복직 후 한 달간 흔들리지 않고 잘 다듬었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 요즘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마트 마감시간 마냥 선착순이라는 말에 일단 신청 메세지부터 보내고 본다. 그리고 난 일본으로 떠났다.


신청방법이 너무나 간단해서 잊을 뻔 했는데 빠르게 연락이 왔다. 간략하게 메세지로 답장만 해도 된다. 첫 심리상담 신청은 너무나 어려웠지만, MBTI라니 어려울 것도 없었고 마음이 무겁지도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배정 된 심리상담사를 통해 MBTI 검사지를 받아보았다. 인터넷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검사를 임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ESFJ

21년 초까지만 해도 검사결과는 ESFJ였다. 그리고 나랑 제법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파트너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회사에서 업무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듯했고,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제법 잘 어울린다 생각했고 왠지 ESFJ 유형이 멋져보였다.적어도 작년 초까지는 말이다.



INFJ

작년 초여름부터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그 때 알았다. 현대인들이 그토록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집 근처 병원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네이버 평이 좋은 곳은 아예 예약도 받지 않았고 오픈런을 해야했다. 하지만 기다릴 수 없었다. 불안 증세를 누를 만큼 심리적 여유가 있었다면 병원 대신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선택했을테니까 말이다.


결국 동생의 학교 선배 병원을 소개 받아 갔다. 심지어 이 병원은 초진은 받지도 않는다고 한다. 물어물어 간 곳은 지인의 어머님도 만족한 병원이었다. 나 역시 만족했다. 그런데 '만족'이라함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본질적 원인을 찾고 답을 찾은 만족은 아니었다. 감기가 걸리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듯, 마음에 병이 생기면 병원에 와서 치료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에 대한 경험의 '만족'이었다.


검사 결과 이렇다 할 병명은 없었지만, 약물보다는 운동으로 극복하길 원했고 지난 1년간 나는 지독하게 열심히 했다. 미련하리만큼 말이다. 그리고 결국 휴직을 선택했다.


ISTP

불안 증세는 자아성찰로 옮겨가는 듯했다. 불면이나 불안, 압박감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를 괴롭히기 바빴다. 자책하고 괴롭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갈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휴직도 하는데 나를 돌보는 휴직을 왜 하지 않을까라며 계획에도 없던,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휴직을 신청했다.


 물론 38년을 90일의 시간으로 전 부치듯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보듬기 위해 시간을 지켜낸 나를 칭찬하고 싶다. 이번 MBTI 결과는 ISTP가 나왔지만 가장 나 다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이전의 MBTI는 '남'이 보는 나를 생각하며 작성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를 작성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3가지의 유형 중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에 더 적합한지모른다. 다만 원하는 것이 뚜렷할 때에는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충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는 내부에서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어디 중간쯤에서 헤매며, 원하는 것을 찾는 방랑자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가끔 이 사실에 스스로가 질리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제 시작인걸. 깊게 생각하지 말고, 남의 눈치보지 말고, 이 또한 나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그리고 부단히 노력한 이 과정이 진정한 어른으로 가는 길임을 믿는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유형의 삶을 살게될까? 아 나란 인간이여,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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