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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Apr 17. 2023

랜선 집사가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유기묘 임시 보호 하기

사내 게시판을 통해 임시 보호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하는 글을 읽었다. 어릴 때 보호소로 와서 오랜 기간 좁은 케이지에 갇혀있는 고양이들이 수십 마리라는 것이다. 

아무리 임시보호라지만 조금 겁이 났던 것은 사실이다. 혹시나 입양이 늦어지거나 아예 안되면 솔직히 떠맡아야 할 거 같은 부담감이 있었고,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못할 짓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 사람이니 부담 없이 대화를 해보자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하다 보니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없어지고, 일단 저질러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딪쳐보고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봉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든든했다.


고민 끝에 결정을 했건만 공고를 했던 녀석은 그 사이 다른 집 막내로 입양을 가버리고 말았다.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이미 마음을 냈기 때문일지 잘됐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섭섭했다. 


나는 그다음 차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았다. 이 고양이 역시 2개월에 들어와 8개월 간 케이지에 갇혀 있었는데, 얼굴도 못 본 옆 방 고양이가 나가자마자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보니 눈도 안 좋고, 췌장염까지 걸려 있는 상태였다. 아마 같이 부대끼고 살진 못했어도 서로 의지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언젠가 동물을 기르게 된다면 가장 취약한 녀석을 데려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번 마음을 내고 나니 결정은 조금 더 쉬웠다. 게다가 뭔가 샵이든 가정분양이든 가서 보고 결정할게요 같은 짓은 할 수 없었고, 보호소 안의 동물들이 처한 상황을 보니 모른척하기도 어려웠다. 


처음 고양이를 키워보는 주제지만 그렇게 이름이 403번으로 불리던 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보호소에서 하도 많은 동물들이 오고 가니 때문에 이름을 일일이 지어주진 못한다고 했다. 그 작은 곳에 연 2천 마리 정도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이고 닭, 토끼, 뱀도 유기가 되고 얼마 전에는 라쿤도 보호소에 들어왔다.)


이름은 고민 끝에 루비로 지어주었다. 루비가 처음 보호소로 들어왔을 때 사진이다. 생각보단 말끔한 편이라 아마 어미가 먹이 활동을 갔을 때 사람들이 혼자 있는 루비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도 겁먹으면 저 자세랑 똑같다.


아래는 보호소 시절의 루비이다. 

루비는 아니지만 보호소 환경을 기억해 두고 싶어서 가져온 사진이다. 바닥 부분이 평평한 땅이 아니다 보니 루비의 발바닥은 거칠었었다. 몸을 다 펴지 못하는 크기이다.  


우리 집에 거의 오자마자 찍은 사진. 눈을 일부러 저렇게 뜬 게 아니고, 잘 먹지도 못하고 아파서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눈꺼풀이 잘 때 감기고 평소에는 말끔하게 떠야 하는데 뭔가 조절이 안 되는 상황. 


내 방에서 찍은 며칠 전의 루비. 나는 열심히 일하고, 루비는 일광욕하면서 낮잠 잔다. 팔자 좋은 녀석! 


바로 어제 찍은 사진이다. 내 침대를 노리는 눈빛... 슈렉 고양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루비는 너무 어릴 때부터 갇혀서 살았으니 야생성이 전혀 없어서 방사를 하면 바로 죽을 운명이다. 길에서 살던 루비를 사람이 데려와서 강제로 가둔 셈이니 누군가는 돌봐주어야 한다. 이유도 모르고 8개월을 갇혀있었을 루비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사실 품종묘가 아니니 주인이 빨리 나타나지 않을 수있다는 말도 들었고, 봉사자 분은 거의 8년째 봉사를 하고 있지만 제일 늦게 입양을 간 경우도 10개월 미만였다고 했었다. 사실 루비는나보다 더 좋은 가족을 찾아줄 수 있다면 보내 줄 수 있지만(나는 과연 사랑을 주지만 정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계속 케어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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