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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May 29. 2023

루비의 빈자리

나의 펫로스

루비가 떠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첫 3일은 가슴 통증이 사라지질 않고 답답함 때문에 스스로도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하루 8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낮 시간에는 통증을 자각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간다. 이별의 아픔은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잊어가는 거라고 하지만, 이마저도 루비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저녁에 일 마치고 루비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 아, 이때다! 하고 기억은 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함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 당황스러웠다. 조금씩 잊혀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아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 이게 바로 펫로스구나 실감했다. 멍해지면 생각나고, 일련의 일들을 되짚어 보게 되고 어김없이 눈물이 뚝 떨어진다. 누군가 우황청심환을 약국에서 사 먹어보라는 이야기를 하여 미세먼지가 심하던 날에도 외출하여 2병을 사가지고 왔다.  


루비를 위해 구해두었던 두 번째 신약이 도착했지만, 박스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반품을 하러 우체국에 갔다. 주인은 없고 약만 덩그러니 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 신약을 찾았을 때 나는 과정이 길고 힘들어도 루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었기 때문에 많이 허망했다.


덩그러니 놓인 밥그릇, 물그릇을 마지막으로 설거지해 두었다. 아직 루비가 살아있는데도 더 이상 자력으로 밥을 먹을 수 없으니 밥을 치워야 할 때 너무 가슴이 아팠었다.


루비가 많이 보고 싶다. 방문을 열면 어떻게 알고 문 앞의 스크레쳐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미처 잠이 깨지 못했으면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던 모습이 생생하다. 루비~ 뭐하누웅? 하고 불러주었는데 이제 불러줄 대상이 없다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루비가 떠나는 순간 마지막으로 불러주었다.


2달 정도 함께 생활을 했는데 재택근무라 정이 찐하게 들었다. 10년 이상 키우다가 떠난 경우는 어떻게 버티는 걸까?


요즘처럼 동물의 사후세계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옷에 붙은 털을 정리하면서 예전에는 떼어보았자 또 털이 있구나 싶었지만, 이제 이 털도 볼 날이 없겠다 싶어 약간의 털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털이 더 이상 내 물건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진짜 이별을 실감할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루비의 행동이나 스쳐 지나갔던 일들이 새롭게 보이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다가 발톱의 일부가 보였는데, 놀다가 조금 깨진 거겠거니 생각을 했었다. 어디 발톱인지 찾으래야 쉽지도 않고 살펴본다고 발을 조몰락 대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와서 보니 점차 앞다리 마비가 오면서 어딘가를 오르내리거나 스크래처를 할 때 어려움이 조금 생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내 침대로 올 때 사뿐하게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손을 먼저 점프해서 올리고 발톱을 갈고리 삼아 이불에 긁으면서 올라왔는데, 나는 루비가 보호소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점프 실력도 떨어지고, 아직 미숙해서 그런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그것 역시 신호였다. 사진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분명 첫 1주일 즈음에는 오히려 높은 곳을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거나, 숨겨왔던 것이다. 평소 캣타워 등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고양이가 아프다는 신호라는데, 루비는 평생 경험이 없어서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라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루비와 비슷한 상황에서 탈출한 녀석들을 ''보호소 동기'라고 하는데, 똑같은 1살 정도의 고양이들은 전부 루비와 다르게 활발하고 건강하다. 혹시나 루비의 케이스를 보고 속단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평소 사진을 부지런하게 찍는 사람이 아니라서 사실 임시 보호로 시작하여, 루비의 사진을 많이 남겨줘야 할 어떤 의무가 없었다면 거의 가지고 있는 사진이 없었을 것이다. 빨리 입양하여 임시 보호 상태로 살다 가게 한 것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임시 보호자로서 사진을 남기고,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이 시기를 견디게 된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이거 해줄걸.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나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겨우 2달 정도라는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전혀 예상도 못한 시기에 훌쩍 가버린 루비.


학교에서 강의를 맡게 될 때, 이 돈은 기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결국 마련한 돈은 대부분 보호소 출신였던 루비에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루비가 참 착해서, 보호소에서 강아지 봉사를 하는 다른 분들도 기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루비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돈을 모아주었다. 신약은 내가 부담하기로 했지만, 치료비도 그 정도 액수만큼 들 예정이었다. 삼삼오오 도와주신 덕에 힘도 나고, 감동을 받았었다. 루비는 결국 자기의 장례 비용도 자기가 모으고 간 셈이 되었다. 보통 보호소 아이들을 구조하더라도 모든 아이들을 전부다 장례를 치러주긴 어렵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다 보니 장례 비용이 꽤 나가기 때문이다. 루비는 예쁘고 착해서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슬퍼해주었다.


가엾다, 미안하다, 아쉽다 등의 긍정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부정적인 감정도 아닌 감정들이 모이니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루비가 나에게 일으킨 많은 변화가 있다. 루비를 돌보면서 점차 아침에 기상하는 시간이 당겨졌는데,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다. 마지막에는 걱정으로 잠을 깊게 자질 못했고 누적이 되니 자연스레 저녁 시간에 잠드는 시간이 당겨지고, 아침에는 빨리 돌봐줄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이것도 습관이 되어 한 10년 만에 기상시간이 바뀐 것 같다.


루비가 나에게 오면서 고양이가 얼마나 귀여운 생명체인지 알게 되었다. 발바닥, 코, 배 부분이 정말 예쁜 핑크 새였는데 인형도 아니고 살아 있는 동물인데 이런 색이 가능한 걸까? 하고 볼 때마다 신기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확실히 사람의 선호에 따라 귀엽다고 느끼는 부분이 다를 테지만, 발만큼은 고양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 발보다는 고양이 발이 털이 많아서 약간 하찮아 보이면서도 정말 귀엽다.


아직도 보호소에는 도움이 필요한 생후 며칠 된 아기부터 루비와 똑같은 처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다. 아른 거리는 걸 보니 귀여움이라는 이 감정은 정말 강력한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가, 루비를 굳이 다른 아이로 대체하여 잊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번 다시 봉사가 필요하면 자원을 할까 싶기도 하다. 루비를 잊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환경을 바꿔주기 위해서라면 루비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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