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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May 20. 2023

루비야, 잘 가

루비와 함께 아침을 맞는 마지막 날입니다. 어젯밤 루비는 저를 떠나 사람들이 말하는 고양이 별로 소풍을 갔어요. 오후에는 루비의 장례를 치르러 갈 예정입니다.


루비는 갑작스레 앞다리 마비 (이것을 '전지마비'로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와 췌장염으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밤 사이 밥도 하나도 먹지 못했고 그대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게 '건식 복막염'이라는 걸 알아채고 신약(gs-441524 )을 투여해 본 건 그 뒤로 3일째 점심였고 분명히 한 번의 시도만으로도 호전이 있었습니다. 전해질과 혈당 수치가 정상이 되었었습니다. (네이버 '고양이 복막염 뽀개기' 카페를 정말 추천합니다.)


이 날 저녁에 루비와의 눈 맞춤입니다. 그 전날보다 눈이 총기가 생겼고, 얼굴 근육은 확실히 편해졌었습니다. 갑자기 루비가 이 날 밤 저와 이별을 하게 된 이유는 루비를 돌보면서 결론적으로는 루비에게 맞지 않는 방법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루비처음 고양이를 맡아본 저로서는 어디서 다 주워들은 지식을 조합하여 루비에게 맞는지도 잘 모르면서 돌봐줄 때마다 생각을 해했었습니다. 강제 급여 이야기를 듣고 다른 봉사자에게 한번 해주십사 부탁을 했는데 이때 먹은 음식물 등의 일부가 폐로 들어가 유인성 폐렴을 가지게 되었고, 완전히 마비가 된 루비를 번갈아가면서 눕혀주라는 다른 분의 조언대로 하다가 돌리고 나서부터는 기관지의 방향이 조금 답답했는지 유인성 폐렴 특유의 그릇그릇 하는 소리를 내었는데, 거기에 네뷸라이저를 가져다 대어 더 숨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힘든 몸으로도 발버둥을 치는 것을 보고 중단하고 쓰다듬어 준 뒤 안정을 취하는 것 같아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고 자면 되겠다고 또 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뒤 돌아왔을 때 루비는 자리를 벗어나 조금 벽 쪽으로 몸을 스스로 이동했고, 아마 숨이 답답해서 마지막 발버둥을 쳤던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으켜 세웠고, 목을 가누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앉는 거 조차 부담되었겠지요. 그래도 똑바로 일으켜 세우니 잠시 괜찮았던 것 같고 숨을 잘 쉰다고 생각했던 방향으로 눕히면서 큰 한숨처럼 힘이 탁 풀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놀랐고,  다시 안고서 루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어디선가 또 주워들은 대로 사람의 임종을 맡는 그 과정과 비슷하여 분명히 루비가 이 생에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보거나 움직이지 못하고 숨이 멈추어가는 순간에도 귀는 제일 마지막까지 들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계속 말을 해주었습니다.


귀가 잘 안 들릴까 봐 작게도 말하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기도 하고 울기도 했는데 아침이 되어 생각해 보니 듣기 편안하진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한다, 내가 빨리 임시보호가 아니고 가족으로서 맡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어. 너도 몰랐지. 내가 너 아픈 거 못 알아봐서 미안해. 내가 너 두고 가서 미안해. 


너한테 억지로 뭘 주려고 해서도 미안하고, 괜히 중성화한다고 그 짧은 기간 동안 고양이가 한다는 건 다 시켰어. 그리고 나한테 마음의 준비하게 며칠간 시간 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집으로 꼭 다시와 우리 가족으로 와도 좋고, 고양이로 다시 와도 좋고, 손님이나 친구로 와도 좋아. 뭐든 루비야 꼭 만나자. 먼저 가서 있어. 나중에 우리 만나자. 

너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용서해. 그리고 너를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기억하고 가


너에게 미안한 것만 기억하고 상처로 남으면, 네가 트라우마가 되는 건 안되잖아. 나는 너를 그래서 최대한 행복했던 생각하고, 너를 좋은 기억으로 남길 거야.  




처음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냥 눈물이 홍수처럼 났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고 치료 방안을 마련하고 장기전으로 가니 나도 돌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입맛 없는 나를 위해 밥도 먹고, 과일도 먹고, 잠시만 쉬고 오자는 것이 또 저만의 생각였습니다. 긴 병 앞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절실하게 깨달았거든요. 하루를 아예 잠을 못 자고 그 뒤로 계속해서 너무 많이 신경 쓰고 고민하고 걱정하다 보니 제가 좀 빨리 지쳐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제가 계속 울고 불고 하면 분명 별로 안 좋아할 겁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애였으니까요. 눈치도 빨라서 지금 집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다 알던 아이입니다. 


루비의 죽음을 보고 고양이도 의로운 죽음, 의미 있는 죽음이 되면 그래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루비 같은 병을 얻은 고양이를 보호자가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최대한 자료를 많이 남겨서 정리해주려고 합니다. 저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알아차린 것 이거든요. 


그리고 루비가 이렇게 힘들어지게 된 이유를 세상 사람들에게 더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품종묘만 더 골라서 홍보하고, 어린 2개월 루비와 같은 코리안숏헤어 종들은 8개월 이상 케이지에서 방치한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알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 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루비를 알게 해 주고 처음 고양이 키우는 저를 도와주신 많은 봉사자 분들, 루비 며칠이라도 더 살 수 있게 치료해 주신 병원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 그리고 멀리서도 루비 아프다고 후원 릴레이 해주신 분들까지.


제가 루비야 넌 참 복이 많다라고 해줬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니 살짝 민망하긴 합니다. 너무 궁금합니다. 루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분명 호기심이 좀 많은 편이라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과감하게 고양이 별로 가는 길을 가고 있을 거라는 예상이 됩니다.


루비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앞으로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려동물을 그렇게 잘 키우는 걸까요. 그 가슴이 먹먹하고 아픈 것을 어떻게 안고 가는 걸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어릴 때부터 8개월을 케이지를 견디고, 건식 복막염, 췌장염, 오인성 폐렴과 싸우던 루비를 기억합니다. 사랑한다 루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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