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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May 15. 2023

보호소 출신 고양이, 루비의 일상

보호소에 있던 루비를 집으로 데려와 임시보호를 시작 한지 이제 2달이 지났다. 우리 집에 와서야 좁은 케이지 밖을 나가본 루비는 걱정과 다르게 적응을 잘해나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먹을 곳이 어딘지, 화장실은 어딘지 척척 알아냈다. 


아직도 루비는 처음 보는 물건들을 신기해하고 탐색한다. 얼마 전에는 사료나 간식을 담아두는 쇼핑백이랑 열심히 눈싸움을 하더니 이내 슬금슬금 피하기도 하고, 그렇게 무서워했던 청소기도 (로봇청소기만 아니라면) 내가 방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중성화 수술이나 예방접종이 다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래도 입양을 꺼린다고 하고, 루비에게 필요한 수술이기도 하여 지난달에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얼굴 근육이 없고, 확실히 표정 변화가 확연하진 않는 편인데 수술을 마치고 루비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 아픔이 절로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여하튼 수술을 받게 되어 집에서의 생활을 적응을 끝내가던 차에 다시 루비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서서히 사냥놀이라는 것을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루비의 정서적 암흑기가 잠시 찾아왔을 때는 눈앞에 장난감을 흔들면 잉! 하고 싫다는 거절의사를 내비쳤다. 요새는 츄르(강아지 간식)를 주면서 사냥감에 터치하면 한입씩 주는 훈련을 해보고 있다. 츄르도 처음에 루비는 하나를 다 먹지 못했고, 가끔은 뭐지? 먹는 건가? 하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 츄르는 매우 좋아한다. 


루비의 사냥놀이 중에 조금 황당한 것은 사냥감을 잡으면 혀로 그루밍을 해주는 것이다.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유치원 같은 곳이라도 보내고 싶다. 


돌이켜보니 내가 루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봉사자가 루비의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급하게 봉사처를 찾았던 상황인지라 나 역시 루비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양이의 특성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루비의 특성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루비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직업상 여러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해야 하는데도 SNS만큼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내가 루비를 위해 자주 포스팅 하려고 애쓰고 있다. 먼저 임시보호를 시작했던 친구를 따라 만들어보니 훨씬 수월했다. 대충 찍어 올려도 루비가 예뻐서 사람들의 영상 조회수가 1천 회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우리 집 스타라고 불러주고 있다. 루비가 움직임이 크지 않아서 다양한 포즈와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다.


루비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올 때부터 지금까지 잠은 정말 많이 자는 데, 밤새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베이비 캠을 방에 설치했다. 한두 번 정도 자리에서 나와 밥을 먹고 그루밍을 하고 물을 먹고 다시 자리로 간다. 


루비로 인해 내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거나 감사의 인사를 듣는 일도 많아졌다. 약간 이게 그 정도로 칭찬을 받을 일인가 싶어서 어색하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동물을 키우게 되면 무조건 갈 곳 없는 애들을 돌보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루비가 올 수 있었다. 딱히 어떤 품종에 대한 선호도 별로 없었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루비의 안부를 많이 물어본다. 그동안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는지, 만약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내가 루비를 그 집으로 보내도 괜찮을 거 같은지 말이다. 루비의 행복을 위해 직접 집에 찾아와서 루비를 봐주기도 하고, 간식을 보내주는 사람도 많았다. 그 어린 아깽이 시절부터 8개월을 갇혀 살아서 고양이식 올드보이 인생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루비에게는 복이 많다고 말해주고 있다.




루비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ruby_cat_cheese/


첫 번째 글 :

https://brunch.co.kr/@siwa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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