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7년, 10년 간의 인문학 공부를 버릴 결심을 했어요.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과 만나는게 너무 좋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좋았던 저에게, 혼자서 깊은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압박으로 다가왔어요. 결국 어떠한 결과도 내지 못했고, 부담감에 남들이 읽어야 하는 글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 했어요.
1. 나름 인문학을 배신(?)하고, 2018년부터 살길을 모색했어요. 늦은 나이에 학원 강의, 샐러드 가게 알바, 다양한 사이드프로젝트를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공부만 한 저를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자격이 없었거든요.
2. 2019년 1년 간, 수백장의 이력서를 써서, 단 하나의 인턴에 붙었어요. IT 기업이었죠. 하지만, 역시 저는 자격이 없었어요. 인턴 11명 중 저만 전환에 실패했거든요. UX 라이터의 언어에서는 실패는 쓰면 안 되니까, '정규직 전환을 하지 못 했어요.'
3. 2020년, 절망하지 않았어요. 독기도 차올라, '안 받아주면 내가 하지'라는 생각으로 친구와 공동 창업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저는 자격이 없었어요. 1년 반 동안 영업, 사업기획, 전략계획, 마케팅, 서비스 기획, 정부지원사업 등을 모두 시도했는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4. 하지만 2020년부터 나와 맞겠다라는 직무를 발견했어요. 바로 UX 라이터였죠.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 심리 그리고 Literature라는 글쓰기 역량을 곁들이면 나도 IT에서 쓸모가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조금의 자격을 발견했어요.
5. 그때부터 문투를 바꾸기 시작했어요. 제 문투는 저기 저, 서점 구석에 쳐박혀있던 철학책의 한 문단과 닿아있었거든요. 한 마디로 문장이 복잡해, 읽기 쉽지 않고, 재미도 없었어요.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 2년 간 쉬지 않고(?), 글을 썼어요. (그래도 아주 가끔은 쉬었어요... 저도 일이란게 터질 수 있잖아요.)
6. 결국 2021년 온전한 UX 라이터는 아니지만, 초기 스타트업에서 UX 라이터 직무 위에 마케팅과 사업계획을 얹어서 직무를 전환했어요. 8개월 동안 치열하게 살았어요. UX 라이팅 가이드라인도 만들어보고, 마케팅 글도 쓰고, 아는 분에게 가서 사업계획서 보여주고, 우리 투자나 사무실 얻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죠. 덕분에 반 정도는 자격이 생겼어오.
7. 2022년 드디어 온전한 자격이 생겼어요. 초기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접으면서 길바닥에 내앉게 된 제 앞에 UX 라이터 직무를 뽑는 공고들에 명함을 내밀어 볼 수 있게 됐거든요. 결국 제 마음의 안식처 야놀자에서 UX 라이터로 살아갈 수 있게 됐어요.
8. 저를 다그치고 자책하고, 검열하고 성장시키면서 결국에는 UX 라이터라는 아비투스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이 동력이 그대로 휘발되는게 아쉬워서 2023년부터 <UX 라이팅 컨퍼런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번이 4회째인데, 벌써 2년이 됐네요.
9. 이 컨퍼런스는 제가 자격을 얻어내는 과정 속에서 발견한 인사이트를 어떻게 전파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Index UXer라는 팀을 꾸리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모으긴 했지만, 일개 팀원으로 살아가면서 의견을 주고 받고 하면서, 재미나게 컨퍼런스를 꾸리고 있달까요? 저는 매번 갈굼 받으면서 업무를 배우고 있어요.
10. 세 번째 행사까지 저를 포함한 총 11분이 연사로 서주셨고, 235분이 참석해서 강연을 즐겨주셨어요. 이번 행사에도 3분의 강연자가 서주실 예정이고, 80분을 모집할 예정이에요.
11. 강연자분들은 각자의 자격을, 각자의 시선에서 풀어내다보니, 같은 직무라도 '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 달라요.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까요? 저는 매번 신기하면서 재밌게 보지는 못하는데요.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하느라..ㅠㅠ 참석자분들은 재밌게 참관하실 수 있어요.
12. 가장 중요한 참가 신청서는 곧, 저희가 재정비해서 올릴 예정이에요. 간식과 먹거리 그리고 이번에는 네트워킹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