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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Jun 15. 2022

시간


여자가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


남자가 물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여자가 답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


남자가 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시간이 흐른다니? 인간 지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 본래의 원초적 시간에는 순서나 질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한 흐름이 없어.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 좀 더 엄밀히 말해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에 나타나는 양상인거야. 그래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여자는 떠났고, 이 남자의 이름은 카를로 로벨리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상징되는 20세기 물리학은 우리에게 '현재주의'라는 방식으로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이 세상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세상의 사건들은 과거-현재-미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순서만 있을 뿐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집요하게 계속되는 착시이며 사람들은 시간을 물화시켜 이를 고정시키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게 아이슈타인의 설명이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범세계적이고 절대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관찰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상대적인 현재일 뿐이다. 상대적이라고 했으니 나와 너의 실제는 다르다.  '실제로는 말이야~'라는 문구에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그 '실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세상과 시간이 현재와 현재가 연속적으로 흐르는 강물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는 그저 환상일 뿐.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상대적으로 똑같은 실제이고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걸 영원주의라고 부른다. 


시공간 전체가 아무런 변화없이 온전히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 컨택트(Arrival)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원형 언어를 배운 주인공이 미래를 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시간은 강물이 아니라 고요한 호수다.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우주의 시간 구조가 우리가 지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시간에 쫓기거나 시간 위를 달려가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호수 위의 돛단배처럼 시간의 이곳저곳을 유람하면 될 일이다. 


우리는 어차피 각자 자신만의 호수 위를 유람하면서 다른 시간을 살아갈테니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 당연한 소리를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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