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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Dec 19. 2022

일기를 에세이로 만드는 비법

흔하디 흔한 나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건 일기가 된다. 책을 쓰고 싶다는 글린이 예비작가들이 써 온 글을 보면 자신의 잔잔한 일상을 담았다고는 하는데 사실은 초등학생 일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글감을 일상에서 찾으라고 하니 자신의 하루나 하루 중 인상 깊었던 일들을 담아내기까지는 하는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지는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잊지 말자. 일기는 나만 보는 글이고 에세이는 독자와 함께 읽는 글이다. 지식, 정보, 경험, 감정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애써 쓴 글은 그냥 일기가 되고 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꾸준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글감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하루의 일기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을 찾아가는 시도부터 해보자.


평범한 직장인이 점심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나서 이걸 일기로 적었다. 아마 이 정도 글이 나올 것이다.


"오늘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점심 메뉴를 고르던 중 짜장면을 먹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 중국집으로 향했다. 나와 김대리는 짜장면, 과장님은 짬뽕을 먹었고 함께 먹을 수 있는 군만두도 하나 주문했다. "


당연한 소리지만 독자는 작가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작가의 그 경험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필요한 것이고, 작가는 그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고와 관찰의 폭을 넓혀 글에 담는 습관이 중요하다. 중국집을 갔으면 어느 중국집인지, 그 중국집에 특이한 사연은 없는지, 면은 수타인지 기계면인지. 짬뽕은 삼선짬뽕인지, 굴짬뽕인지, 군만두는 구운 만두인지 튀긴 만두인지 등등. 생각해보면 궁금할 법한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처음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라면 매사에 이런 생각의 확장을 훈련하면 좋겠다.


사례로 들었던 중국집의 경우에 딱 맞는 칼럼이 한 편 있었다. 그 유명한 ‘간장 두 종지’다. 조선일보 한현우 기자는 자신의 경험으로 짧은 칼럼을 한편 게재했는데 생각보다 파장이 컸다. 칼럼의 품질과 때아닌 갑을 논쟁, 한현우 기자의 정신건강 이상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4명이 앉은 테이블에 간장을 두 종지만 줬다는 대목에 착안한 글감 발견과 생각 확장의 측면은 인정할만하다.  


"어떤 경우에는 을이 갑을 만든다. 매식(買食)이 일상인 직장인들과 매식(賣食)이 생계인 음식점 종사자들은 항상 부딪힌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설렁탕을 주문했고 설렁탕이 나왔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먹은 만큼 돈을 냈는데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이 이상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Why] 간장 두 종지 - 조선일보 (chosun.com)


경험에서 의미를 끌어내야 하는 글의 종류가 또 하나 있다. 자기소개서다. 초보자들의 자기소개서 역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일생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입사지원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기보다 어떤 사람인지가 더 궁금하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 순 나열보다는 특정한 사건과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얻은 지식, 정보, 생각 등을 기술해야 한다.


글의 마무리가 힘들다면 짧은 한 문장으로 그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해보자. 다시 중국집 얘기를 해보자면, "내일은 뭘 먹지?" "오늘 짜장면은 어느 때보다 쫄깃했다." "이 집의 장점은 간장에 있다" 이런 식으로 짤은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면 왠지 모르게 여운이 있어 보이는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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