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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May 12. 2020

경영자는 뭐하는 사람인가?

LV 1 경영자의 일기_1

저번주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하게 되었다.

계약을 땄고, 그 계약 딴 것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흔쾌히 도와주신다는 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경영자는 뭐하는 사람일까?'

'이 사람이 마케팅을 잘하고, 이 사람이 영업을 잘하면 둘이 조인해서 하면 되지, 운영이 왜 필요한가?'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회사를 들어가기 전에도, 나와서도 계속 1인기업만 했었지 사람 여러명과 함께 일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경영자는, 사장은 뭐하는 사람인가? 에 대해 궁금해졌고, 여러가지 책을 검색해봤다.

사장의 일, 경영자의 일, 경영 등등 검색해봤지만, 경영자는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라는 설명을 명쾌하게 해주는 곳은 없었다.


'사장의 일' 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답이 조금 근접했는데, 경영자는 자신과 관련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역시 애매했다.


그러다가 스승의 날이라 김진기 대표와 함께 신태순대표님을 뵈러 갔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거기서 더욱 근접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자는 '판을 까는 사람' 이다. 플레이어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판을 깔고 남의 능력을 빌리는 사람' 이다.

플레이어란,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 '영업을 잘하는 사람' 등 각 역할의 전문가를 말한다.

'판'을 편의상 놀이터라 부르겠다.

놀이터를 만들고, 플레이어를 모신다. 놀이터를 만드는 것은 먼저 일할 바탕(계약)을 만들고, 그리고 조직도를 그리는 것이다. <초격차>에 따르면, 사람을 쓰기 전에 조직도부터 그리는 것이 순서다.

어떤 역할이 이 조직에 필요한지 명백히 한 후, 그 역할의 전문가(플레이어)를 모시는 것이 채용의 과정이다.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그를 모시는 것이다. 그가 나보다 전문가이거나, 전문가가 될 소질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는다. 그렇기 때문에 뽑은 사람 대하기를 스승 대하듯 해야 한다.


경영자는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다.

플레이어와 경영자는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 마케팅을 잘 하는 플레이어는 그 역할이 마케팅이다.

하지만 경영자는 질문하는 것과, 놀이터의 장기적 존속을 고민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함정에 빠지기 쉽다. 나는 마케팅을 공부했어서,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묘한 감정이 있었다.

어떤 승부의 마음? 같은 것. 하지만 경영자는 플레이어의 능력에 대해 경쟁심을 느껴서는 안된다. 옳지 못하다.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이런 경쟁심은 사라졌다.


그래서 경영자의 덕목은 임원이나 직원이 해당 분야에서 나보다 나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겸허함이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힘이 필요한 역할이 경영자다.

뒤로 물러나는 힘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정 욕구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역할이 다르다고 인지하더라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게 사람이다.

혹은, 자신의 권위를 맛보고자 이미 잘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둘 다 경계할 일이다.


경영자가 모든 일에 앞서서 나서게 된다면, 조직도를 그린 뒤 사람을 거기 모셔다 놓은 이유가 없다.

A라는 사람이 그 조직도상 역할의 전문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함께 일하게 된 것인데,

처음에 일하는 것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경영자가 그 일을 주도하면, A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일은 A가 해야 한다.

하지만 A가 하는 일이 처음부터 퀄리티가 높을 가능성은 적다.


그렇기 때문에, A가 한 일에 대해 경영자는 질문해줘야 한다. A의 업무내용을 바탕으로, A가 도달할 지점을 명확히 해주고(그마저도 나중에는 A가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하는 듯하다) 거기 도달하기 위해 지금의 결과물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A에게 묻는다. 경영자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가 판단하는 순간, 경영자는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일에 대한 책임은 A가 져야 한다), 플레이어가 된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경영자는 '남의 능력을 빌리는 사람'이다. 피드백조차도 남의 능력을 빌려서 해야 하는 것 같다.

사람은 지성이 있기 때문에,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문제를 가져온 사람(A)와 도달할 지점에 대해 논의하고, 부족한 점에 대해 A에게 묻는다. 그리고 A의 대답을 이용해, A를 개선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경영자가 책임질 것은 없어야 한다. 경영자가 A의 업무 중 뭔가를 책임지는 순간, 그는 플레이어가 되며, 경영자의 위치를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의 의사소통은 질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대답과 의견을 이용해 상대를 이끌어야 한다. 결국 실무를 제일 잘 아는 것은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자는 '인정하는 사람' 이다. 남의 능력을 빌리는 사람이 경영자라고 했다면, 빌린 남의 능력에 대한 칭찬과 인정도 경영자의 몫이다. 물론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도 경영자의 몫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는 못 봤지만, 생각보다 칭찬을 많이 하지 않나보다.

어떤 일을 성사시킨 것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는 플레이어들의 공을 자신의 공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교만해지기 쉽다. 경계할 일이다. 

경영자가 겸손하다고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는데, 자기를 내세우려는 것은 바보짓일 뿐이다.

공도 과도 플레이어의 것이어야만 한다. 과는 플레이어에게 돌리고 공은 자신이 가지려는게 기본적인 사람 심리라 무섭다. 일본 통일의 직전까지 갔던 노부나가조차 이걸 못해서 반란으로 망했다.



경영자는 판을 까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판을 유지해나갈 의무와, 거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경영자는 현재를 플레이어에게 맡기고, 가깝고 먼 미래를 봐야 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놀이터의 존재를 위협할만한 문제를 알아채고, 거기 미리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경영자는 남의 능력을 빌려서,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뒤에 있으며 앞으로 나서지 않고, 하는 일 없이 모두를 조화시킨다.

그가 해야 하는 것은 남의 능력을 지혜롭게 빌리는 것이다. 남의 능력을 지혜롭게 빌림으로써, 원래 80%의 역량을 내던 사람이 120%의 역량을 내도록 한다. 그리고 놀이터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모두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놀이터다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조직도를 그리고 또 다시 남의 능력을 빌린다.


경험하면서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의 능력만 지혜롭게 빌려도 세상을 사는 게 훨씬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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