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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Mar 25. 2021

어린 시절을 원망한다면

일을 하다가도 가끔씩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원망이다.



나는 어린 시절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거부는 음악에 대한 거부였다.

전후 맥락을 따져보면 부모님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충분했고,

나는 그걸 하고 싶었으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 음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 때부터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있었을까. 같은 것들.



그 원망의 정도가 아주 심할 때는 인생을 리셋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자살의 방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려 하기도 했다.

자기파괴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정신과 약을 먹기도 했지.



그렇지만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오히려 그 거부당하는 경험이 완벽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레슨을 받으러 가면 참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내게 영감을 주었던 경우는 이런 경우였다.



이미 좋은 대학의 실용음악과를 나온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물론 노래를 잘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단해보니, 스스로가 원하는 수준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미 배웠던 것들을 하나씩 다 풀어내야 했다.

쉽게 말해, 잘못 배웠다. 잘못된 쿠세(습관)가 들어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몇년씩이나 잘못 배워서, 혹은 잘못된 습관이 들어서

레슨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그런 걸 보면 내가 당시에 부모님이 허락해서 음악을 시작했더라도,

오히려 더 먼 길을 돌아가게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잘못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때 거부당했기 때문에, 나는 공부도 해봤고 사업도 하고 있고

동시에 노래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거부당한 게 아니라, 삶이 그렇게 완벽하게 계획을 짠 게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이런 게 깨달아지는 것은, 정말로 그런 것이었다는 증거일까,

그게 아니면 그냥 나의 자기합리화일까.

모를 일이지만, 삶이 자신의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원망하지는 않아야겠다.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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