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쌓여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어서
집에서 쉬며 명상을 했다.
요새 드는 생각은 나의 우울함과 비관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울과 비관도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내가 낙관적이었다면 이런 탐구 자체를 안 했겠지.
어쨌든 세상 모든 일이 두렵게 느껴져서 견딜 수 없어
앉아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마음이 느끼는 것을 입밖으로 말했다.
두려움.
두려움.
두려움.
이렇게 하다 보니 두려움은 또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노.
불안.
초조함.
질투.
부러움.
부러움.
부러움.
왜 부러워하지?
무엇 때문에 부러워하는가?
조금 생각하다 생각은 그만두고
계속해서 입밖으로 감정을 내 봤다.
마음이 콕콕 찔리면서 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러다 다시 두려움이 돌덩이처럼 주먹을 쥐고 있는,
그 최후의 두려움에 도착했다.
다시 여기구나.
몇 번이고 왔지만, 이 너머를 어떻게 갈 지 알지 못했지.
모든 분별의 원인.
삶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하지만 그것이 너의 잘못은 아니다.
너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의 대상이 뭔지 모르겠지만.
거기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감정을 입밖으로 내 봤다.
한참 동안 부러움. 이었다가
어느 순간 사랑받고 싶음. 을 내뱉게 됐다.
사랑받고 싶다.
여태까지와 다른 통각이 마음에서 느껴졌다.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이미 사랑받고 있지 않는가?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알고보니,
그 두려움의 움켜쥠은 사실은 내 마음이었고,
그건 움켜쥠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을 받지 못해
쩍쩍 갈라진 황무지였다.
사랑받고 싶어서 가물어버린 마음이었다.
갈증으로 죽어가는 환자마냥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거의 원념처럼 뿌리박혀 있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것은 아니다.
그럼 왜 이렇게 메말랐단 말인가.
그냥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알아차려주지 못했나?
이렇게까지 메말랐다면 사랑을 줘야지.
하지만 어떻게?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렇게 해보았다.
백만 평이나 되는 황무지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커다란 물길을 끌어와서
잔뜩 물을 줘야 할 것 같은데.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랑이라면,
이 황무지에 다 물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무엇을 접하더라도 그게 사랑이라면,
이 땅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물을 줄 수 있을 텐데.
실제로 사랑이 없어서 메마른 게 아니라,
사랑을 받는데, 사랑 안에서 사는데
그것이 사랑인지 몰라서 메마른 건 아닐까.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이 가물어버린 마음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흘러넘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분별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걸.
나는 끝까지 갈 거란 것을.
일단은 너무 귀엽지만
물뿌리개로라도 물을 줘야지.
물을 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의 마음도 이렇게 가물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고통은 사랑이 없음에서 나오는 것일까.
마치 경전처럼 여겨질 것 같아 다른 책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나이에 이런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했다.
왜냐면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싶었기에.
사랑 안에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없는 상태를 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길 원한다.
사랑 안으로 돌아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