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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Jun 30. 2023

신은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만드는가

내가 종일토록 네게 내 손을 벌렸다

오랜 철학과 문학의 역사를 거쳐 삶에 대해 인간이 낸 결론은,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의미와 가치는 ‘죽으면 끝인데?’ 라는 여섯 글자 앞에 전부 무장해제됐습니다. 

인류 역사 내내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발견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

인간은 삶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공허나 허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본질적 허무 앞에서 인간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이 세계관에서 삶은 마치 주사위놀이처럼 무작위로 일어날 뿐입니다. 

인간은 다만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을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마치 방 안에서 신나게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와 같습니다. 

게임 안의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게임 안에서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고, 

그 안에 있는 강력한 적을 무찔러서 보상을 얻습니다. 



이 아이는 게임에 푹 빠져서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를 받고 싶어하지 않고, 

실제로 아무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 내 맘대로 사는 거니까요.



하지만 게임을 며칠 하다 보니 좀 질리고, 그래서 방문을 열고 나갑니다. 

나가면 거실이 있는데, 거기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다시 게임을 하는 것 뿐입니다.

아이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게임 속에서 아이는 매우 강해집니다. 

하지만 점점 게임 외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게 됩니다. 

우리가 단지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에 그는 혼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게임 안에서 왕국을 세워보기도 하고, 

세운 왕국을 무너뜨리고 대량 학살을 해보기도 하며, 부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거지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친구를 사귀기도 하며 배신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엔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는 결국 이 질문에 부딪힙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데?”



아이는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게임 안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혼자입니다. 어쩌면 수명이 다한 뒤에도 혼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다만 아무도 모르게 존재했고, 또한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갈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처한 현실입니다. 인간이 처한 현실을 너무 공허하고, 고독하게 표현한 것일까요?



저는 이런 사람을 종종 보았고, 또한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몇백억씩 버는 대표가 있습니다. 이 분은 ‘자살하고 싶다’ 고 합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그는 모든 걸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공허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도, 여자로도, 술로도 채워질 수 없기에 그는 계속해서 목표를 세워나가고 그걸 달성합니다. 

하염없이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이 삶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탈출구는 죽음뿐입니다. 그게 진짜 탈출구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사고에 매우 큰 영향을 준 니체는 신을 배제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데?” 라는 질문 앞에 내린 결론은 

‘영원히 회귀해도 좋을 만큼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살자’ 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한 세상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잘 놀다 가자’ 라는 결론입니다. 



멋있습니다. 

마치 극복할 수 없는 높은 파도에 온 몸을 부딪히는 결기마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결론으로는 제가 품은 본질적인 공허를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죽으면 어차피 끝인데, 뭐하러 살아야 합니까?



아까의 비유로 돌아가봅시다. 아이는 방 안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게임이 좀 질리자, 아이는 밖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이번엔 밖에 나가니 놀랍게도 부모님이 있습니다.



아이에겐 선택지가 생깁니다. 곧바로 다시 게임을 하러 갈 수도 있고, 

부모님과 게임에 대해서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이 잘 안 풀려서 찡찡댈수도 있고, 게임이 잘 풀려서 기쁨을 함께 나눌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게임을 다시 하러 갈 때, 부모가 없었던 아까의 아이와는 다르게, 

언제든 나가면 부모가 있다는 안심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가 게임을 하는 걸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는 언제든 게임을 중단하고 나가서 부모와 따뜻한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아까는 선택지가 없었는데, 이제 아이에게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저는 위의 비유를 삶으로 체험했습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심각한 우울증을 달고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높은 지붕을 보면서 ‘떨어지면 한번에 죽을까?’ 를 고민했고, 

큰 차가 달려오면 ‘여기 치이면 한번에 죽을까?’ 를 고민했습니다. 



당시에 만났던 여자친구는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엄청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 우울을 낫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마틴 셀리그만의 낙관성 학습을 포함해 수많은 책을 읽고 적용해보기도 하고, 

명상을 해보기도 하고, 정신과를 가보고, 약도 먹어보고, 연애를 해보고, 돈을 벌어보고, 

취미를 경지에 올려보기도 했습니다. 심리상담도 받았습니다. 



온갖 짓을 다 했으나 우울은 낫지 않았고 자살 고위험군 판정까지 갔습니다. 

제 본질적 공허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저는 방 안에 갇혀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였습니다. 제게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저는 세상에 내던져졌으며,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을 살아가다가 죽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럴 거면 지금 죽는 게 낫겠는데, 죽음을 선택할 용기는 없으니 그냥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방법뿐이었죠. 저는 ‘갇혔다’ 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저는 삶 속에 갇힌 존재였습니다.



삶을 살면서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면서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러면 대체 서울이라는 장소는 실존하는 것일까? 

서울이 뭘까? 내가 미친 건가?



시중에 나온 거의 모든 영성 도서를 섭렵하고, 도덕경을 보고, 불경을 좀 주워들어도

이런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명상센터의 마케팅까지 해주면서 그곳의 실상도 다 봤으나 

거기에도 제가 찾는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명상을 해서 잘 살게 되는 방법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뭘 어떻게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방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제 삶을 뚫고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정말 거짓말처럼 10년간 앓던 모든 우울증이 사라지고, 

2주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자살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어야 끝나지’ 라는 제 생각을 없애신 뒤, 

그 자리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채워넣으셨습니다 ::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이루고야 말 것이다. 

그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으로 말이다. 그러니 나는 결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그분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나도 나를 포기할 수 없다. 



저는 이제 압니다. 인간은 결코 허무나 운명 속에 버려져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허무나 운명 속에 버릴지, 

하나님께 돌아갈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는 인생이 만족스럽고, 

아직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면 억지로 돌아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공허나, 허무나, 

도대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갖고 계신 분은 단지 그분께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그분께 돌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건, 내가 무슨 삶을 살아왔건 그 분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처럼 애타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들고 기르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롬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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