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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Jul 07. 2019

무더위의 초입에서

2019년 7월 7일의 딱 한 장

  큰일이다. 여름이 기어코 왔다. 더위와 습기에 유난히 약한 편이라 여름이면 늘 지치고 약해져 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귀와 목 안이 가렵다. 머리는 지끈거린다. 이럴 때면 나의 몸 안 액체들이 어떤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느껴진다. 더위 먹었을 때의 감각은 오열하고 난 후와 비슷하다. 온몸이 간질간질하고 부어있는 느낌. 코가 맹맹하고 목소리도 잠겨있으니, 심할 땐 눈도 빨개지니 오해하기 딱 좋다.

  아무튼 그런 상태로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힘이 없는데 종이 가방 속엔 집에서 챙겨 온 과일까지 담겨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주 고행길이다. 보신해야 한다며 점심에 오리 백숙까지 챙겨 먹고 왔는데 낮 동안 쨍쨍 햇빛 아래서 돌아다니고 오니 말짱 도루묵이다. 

  기운이 없으니 거의 이 주에 한 번 마주하는 고속터미널 풍경도 쓸쓸해 보인다.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고향 집에 한 달에 한 번만 갈 거라고 굳게 다짐했었는데, 아직은 무리인지 한 주 걸러 엄마와 아빠와 동생을 보러 간다. 원래는 모든 금토일을 청주에서 보냈으니, 많이 발전한 건가.

  더우니 불 앞에 설 엄두가 안 나네, 입맛도 없으니 내일 도시락으로는 채소만 씻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집에 들어가기 전 마트에 들러 요거트와 생채소만 샀다. 그러면서 주말 동안 주방에서 칠리새우를 만들고 두부를 굽고 국수를 삶은 일을 떠올렸다. 나누어 먹을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건성으로 장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더위는 이래서 나쁘다. 나를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몸 상태가 울고 난 후와 비슷하니 괜히 감상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내 서울 생활도 나름대로 사랑스러운데 말이야, 툴툴툴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팔이 더 무거워져 계단을 올라오는 내내 한 걸음 걷고 한 걸음 쉬었다. 더운물로 씻고 푹 자야지. 내일 아침 요거트와 과일을 먹으며 기운을 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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