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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Aug 24. 2019

나는 당신의 이름이 궁금하다

조해진, 『단순한 진심』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삼스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 이름에 담긴 뜻은 무엇이냐고. 염원과 애정을 담아 당신에게 그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을, 당신을 먹이고 살리고 살찌우고 그러므로 자라나게 한 사람들을 기억하느냐고.


소설집 『빛의 호위』에서도 「문주」가 가장 좋았는데, 문주의 이야기를 좀 더 오래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나는 암흑에서 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장에서 암흑은 무의미와 다름 아니다. 그러나 조등(弔燈)을 켜 두고 복희식당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그녀는 암흑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때, 암흑은 더 이상 허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자는 여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의 이름을 알게 된다. 두 글자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된다. 아이를 만난 순간, 그를 감싸 안은 이들이 아가에게 부여한 우주를. 우주는 암흑이되 암흑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가 그 안을 각자의 무늬로 채워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그 안을 채우려 해도 우주는 매 순간 맹렬히 팽창하고 있지 않은가.


지리하고 고독할지라도 생은 사랑으로써 유지된다. 그건 도저히 잠시로는 끝나지 않는 길고 긴 감정이라서, 길쭉한 꼬챙이처럼 일생을 관통한 채 지속되고.. 사랑이라니! 그 밀도에 비해 너무나도 단순하게 느껴지는 단어이기 때문에 작품 내에 직접 언급된 적 없는 거겠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거기에 가 닿고 있다.


조금 오만한 나는 가끔 저 혼자 스스로를 지켜온 양 굴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빚졌음을 알고 있다. 생선살을 발라내어 밥 위에 올려준 이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붕어빵을 사준 이들, 이별의 날이 다가오기 전까지 매해 내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여줄 이들. 무한정의 애정과 믿음으로 어린 몸을 어르고 달래며 키워준 이들.


빛나고 따뜻했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이 시대에 아직도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들이 이 틈바구니 속에서도 온기와 애정을 희구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부질없고도 아름다운 족속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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