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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모 Aug 14. 2024

좀 어떠세요? 나를 데리고 살아가기

[시인이기] 01호 (2024.07.14)

* [시인이기]는 차재신, 연정모 두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 브런치에는 비정기 아카이빙 예정입니다.


매달 14, 28일 발행되는 [시인이기]를 바로 보고 싶으시면 메일리 사이트에서 구독해 주세요.

>> https://maily.so/beingapoet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습한 기운 속에서, 좀 어떻게 지내셨어요? 할말 없을 때 꺼내는 것이 날씨 얘기다, 그런 오해가 있기도 한 것 같은데요. 저에겐 진심을 다한 안부 묻기예요. 몸 안팎의 습기는 좀 괜찮으세요? 




저희는 7, 8월 동안 '멸종위기종'에 대한 시와 글을 쓰기로 했었지요. 첫 번째 보고를 드립니다. � 차재신은 이전에 썼던 시에서 '멸종'의 이미지를 찾아왔고(⟨숲⟩이라는 시로, 저도 아주아주 좋아해요) 저는 '장마 때의 몸'에 대한 시를 쓰며 감각한 것들을 담았어요. 기웃기웃 기워 왔어요. 쓰고 보니 둘 다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얘기더라고요.




1호를 준비하며 사실 좀 걱정도 됐는데요. 제대로 써서 보내드릴 수 있을까 하는 맘에서요. 그런데 원고를 쓰는 과정은 전혀 괴롭지 않았어요. (재신의 말을 빌리면) 즐거웠고 (저대로 표현하자면) 자유로웠습니다. 읽으면서 그 감정이 느껴지신다면 그것으로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차재신



순철이가 나오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순철은 공룡이다. 공룡이니까 어쨌든 멸종에 관한 시다. 어쩌다 공룡을 가지고 썼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쓰는 동안 꽤 즐거웠던 것 같다. 시를 쓸 때 쓰는 나도 재미있어야 본전을 찾고, 나조차도 재미없으면 망할 확률이 높다.


생각해 보면 요즘 시를 쓸 때 재밌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재미를 찾지? 시를 쓰는 게 재밌으려면 조건은 간단하다. 쓰는 나조차도 이 시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야 한다. 그러면서 좁은 길을 계속 뚫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쓰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거나, 막힌 길에 계속 머리만 박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모는 내 시를 보고 “오빠는 시를 어른처럼 써!”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어른이란 고지식하고 딱딱한, 점잖은 체하는 유연성 떨어지는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체 같은 어른. 그렇다. 내 시에서 정말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시는 성격대로 쓰는 건데, 내 성격이 그런가? 하고 자문해 보면 특별히 그렇지도 않다. 나는 개초딩이다.


아직도 엄마가 해준 스팸케첩볶음을 좋아하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을 좋아하며 아빠를 꼰대라고 구박한다. 쓰고 나니 이건 초딩이 아니라 패륜 문제인 것 같다. 철이 일찍 든 초딩은 얼마든 있을 테니.


슬프다. 철이라도 들었으면 시가 딱딱하더라도 덜 억울할 텐데. 해석하자니 철은 철대로 안 들고 어른 흉내만 내는 찌질이가 된 것 같다. 심지어 인격적인 결함까지 있어 보인다. 학교 다닐 때 김언 선생님은, 시를 쓸 때 내 목소리를 내려면 나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다듬는 게 아니라 모난 부분을 더욱 모나게 벼려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난 왜 시에서 어른 행세를 하지? 아마 그건 내 삶에서 어른이었던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어서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자꾸 되지 못한 채로 있으니까.


시를 써야 하는데 첫 원고부터 자꾸 반성문을 쓰고만 있다. 반성을 많이 하면 어른이 되나요? 아니 그렇지 않다. 내 삶은 반성의 연속이었다. 반성만 할 뿐 반영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이 되지 않은 채 있을 수 있었다.


햇수로만 따지면 시를 한 지 10년이 넘는데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동안 시를 어른처럼 포장해서 쓴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어른처럼 보이려고 포장하는 것 자체가 내 결핍인 거다. 어른 흉내를 멈추려 할 게 아니라, 어른 흉내를 내느라 발버둥치는 찌질이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반성할 거리가 또 하나 생긴 밤이다. 그것을 시에 어떻게 담아낼지는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다. 슬플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기뻐진다.




연정모



*


몸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스스로 인지하는 것보다도 훨씬 자주, 오래도록요.


특히 지금 같은 장마철이나 추위가 색채 없이 이어지는 겨울에 그렇습니다. 이럴 때 몸은 붓거나 굳고, 팔과 다리가 짐처럼 무겁게 느껴집니다. 정신이 내 몸덩이를 들어 옮기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기능성을 높여 보고자 카페인을 섭취하기도 하는데, 몸이 안 좋을 땐 역해서 삼키기도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두통과 두통)


반대로, 쏟아지는 모든 감각이 축복 같을 때에도 몸을 생각합니다. 자전거 타는 이마에 바람이 달려들 때, 뜨거운 해가 팔뚝을 데우고 속눈썹에 빛이 엉겨 비칠 때, 손가락이 수영장 무거운 물을 부드럽게 가르고 넘길 때. 물질인 몸이 있기에 자유롭다고 느낄 때.




그러므로 몸은


        나를 어디든 갈 수 있게 하거나


    나를 이 자리에 묶어 둔다.




* * *


방 청소하는 시를 썼습니다.




최근 날을 잡고 제대로(어디까지나 제 기준) 청소를 했어요.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선반과 창틀, 방바닥을 닦았습니다. 먼지가 까맣게 묻어나와서 좀 (혼자 있는데도) 민망했고요. 아무렇게나 쌓인 옷가지들을 착착 개고 옷걸이에 걸었습니다. 쓰레기까지 싹 내버리려고 종량제 봉투를 들고 현관 밖으로 나섰는데요.


왼손에 든 봉투에서 축축한 냄새가 나더라구요. 악취는 아니었고 오히려 아주 달콤하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며칠 전 버린 복숭아 씨앗에서 풍기는 것 같았어요. 물가에서, 무르기 직전의 열매를 크게 베어먹을 때에만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저는 며칠 동안 그 복숭아 씨앗과 함께 방에서 지낸 겁니다. 미생물에 의해 조금씩 분해되며, 그럼으로써 더욱 진한 단내를 풍기는.




*


장마는 종말을 떠올리기 참 적당하지 않나요.




* *


얼마 전엔 연희예술극장에서 유지영 안무가의 공연 ⟨고통의 입기⟩를 보았습니다. 세 명의 퍼포머가 흰 무대에서 몸을 움직이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들은 몸을 포개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두드리고, 종내에는 엎드린 채 아― 하는 소리를 연속적으로 내뱉습니다.


무대는 바닥과 단차 없이 흰색으로만 구획되어 있고, 가장자리에 관객석이 높게 설치된 구조였습니다. 관객은 위에서 아래로 몸들을 내려다봐야 했는데요… 그것이 왠지 조금 괴로웠습니다.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서 비명을 지르는 몸들을 보는 것이요.


내 몸의 고통을 관망하는 무정한 주인이 된 것 같았다고,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깨달아봅니다.


⟨고통의 입기⟩ 포스터와 팜플렛의 일부. ⓒ유지영게더링


*


몸을 갖고 있다는 것은 수치심과 맞닿아 있지 않은지
거의 확실히 믿게 됐습니다.




* * *


이 원고를 쓰던 날들 중, 어느 저녁 땐 축축한 솜 같은 몸을 끌고 요가를 하러 갔습니다. 비가 정말 많이 내리던 날이었고요,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운 경로였는데 하필이면 버스정류장에 지붕이 없었어요. 우산을 두드리는 비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고 버스 도착 알림은 한참 뒤였습니다. 겨우 탄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탓에 수업에 늦을 것이 확실해 보였죠. 밖으로 나서기 전부터 한계다, 한계다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요가를 마치고 말끔히 괜찮아졌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떠올리며 몸을 움직이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날의 단어는 '미안'. 편안하지 않음. 며칠 내내 몸과 마음의 이질감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 이 단어를 듣고 조금 반가웠습니다. 여기에서 나를 맞이해 주다니, 의아하기도 했고요.


편안하지 않은 나의 몸을 바라봐 주기. 그런 걸 했습니다. 


몸을 애써서 비틀거나 버티지 않고,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단어와 요가 @_candlelightworks


* *


⟨고통의 입기⟩를 본 날로 되돌아가 보자면, 공연이 끝나자마자 저는 빠르게 밖으로 나섰습니다. 조금 힘들어서요. 바깥은 환했습니다. 아침부터 비 예보가 있었지만 계속하여 미뤄진 날이었고요. 구름이 잔뜩 꼈지만 그 너머에 거센 빛이 있는지 눈이 부셨습니다. 끈끈한 바람이 거리를 요란하게 훑고 나뭇잎들은 이곳저곳에 날아가 붙었어요. 축축하게.


그것이 제가 절규 속에서 나와 마주본 풍경입니다. 실재하던 소음들이 일순간에 가라앉았습니다. 내 안의 것들이 나를 요란스레 나를 뒤흔들어도, 바깥에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


오늘입니다. 해가 뜨지 않는 날들은 이미 지났고, 저는 부드러운 소재로 된 상의를 사려는 참입니다. 명치를 조이거나 어깨를 누르지 않는 유연한 옷, 푸른 계열이면 좋겠어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색이어도, 진한 바다색이어도 좋아요. 다만 탁하지 않을 것.


한 겹만 입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요.



⟨고통의 입기⟩ 보고 연희동 내려오던 길. 나무가 펄럭펄럭하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 드리고 싶군요.



�생활기


차재신: 게임 기획자가 되기 위해 직업훈련을 받은 지 딱 한 주가 지났습니다. 군대만큼 힘든 일을 또 겪게 될지는 몰랐어요. 세상 살며 이제 잔뼈 좀 굵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개박살 날 일이 많습니다. 화이팅이에요. 살아남기 위해 / 우리는 피를 흘리고 / 귀여워지려고 해 ㅡ 이근화 ⟨엔진⟩에서


연정모: 일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왜인지 7월로 접어들고부터는 사람들을 만날 일도 늘었고요. 진득하게 앉아 시 쓸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 맘이 조금 불편한데요. [시인이기]를 위해서는 시를 써야 하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내고 있어요. 아침마다 줌을 켜 두고 한 시간씩 글을 쓰는 모임에도 합류했습니다. 다행히 시들이 조금씩 완성되고 있어요. (마감이 되어 주신 여러분 덕분!) 50편 모으는 것을 목표로…�





(추신) 차재신 시인 북토크 소식입니다! 



차재신 시인의 첫 시집 ⟪영원이 되어 가고 있다⟫ 북토크가 열립니다. 

인터뷰 시집인 만큼, 시로 소개된 분들도 자리해 주신다고 해요. 조금 더 편안하고 가뿐한 북토크가 될 예정이니, 시간 되시면 점몽님도 놀러 오세요! 함께 읽고 떠들어요.


일시 : 2024년 7월 18일(목) 19:30-21:30

장소 : 스페이스도모(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677-11, 3층)

참가비 : 없음(간단한 음식과 음료 제공) 



• 매달 14, 28일에는 시 쓰는 과정을 담은 글이, 매달 말일에는 그렇게 완성한 시를 한 편씩 보내드립니다.  

• 시 완성본은 매달 말일, 멤버십 전용으로 발송됩니다. 오늘 본 글이 어떻게 매만져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구독료는 한 달에 1,900원입니다. (구독


✉️ 차재신: js2yam@naver.com | 연정모: 3337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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