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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모 Sep 27. 2024

살아 있니? 황금두더지

[시인이기] 02호 (2024.07.28)

* [시인이기]는 차재신, 연정모 두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 브런치에는 비정기 아카이빙 예정입니다.


매달 14, 28일 발행되는 [시인이기]를 바로 보고 싶으시면 메일리 사이트에서 구독해 주세요.

>> https://maily.so/beinga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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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아주 습한 날들 속에 있어요. 비가 내렸다 갑자기 환해지고, 요란한 날들의 반복입니다. 휴가 계획을 세울 엄두도 안 나더라고요. 가까이서 바다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종종 휙 튀어나오긴 하지만요.


이럴 때는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게 가장 평화로운 피서겠지요. 이번 주에는 책을 읽고서 쓴 글을 가져왔어요. 제가 강력 주장한 건데요. 최근 읽은 책들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마침 재신도 좋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며 흔쾌히 수락해 주었어요.


그리고…! 양해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7, 8월 동안은 멸종위기종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렇게 큰 주제를 정해 놓는 방식은 잠시 접어두려고 해요. 매주 겪고 느끼는 것들이 휙휙 바뀌는 데다가, 써야 할 것을 정해놓으면 시가 쉽게 시작되지 않더라고요. '시를 쓰며, 그 과정에서 생각한 것들을 적어서 보내준다'는 초기 기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매주 다른 주제의 글을 전해드리려고 해요! 8월부터는 좀 더 창작 노트에 가까운 글을 전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멤버십 구독자 분들께는 오늘 하나의 메일이 더 도착할 거예요. 재신과 제가 쓴 시 한 편씩 담았습니다. 시도 산문도 즐겁게 봐 주시기를! �



차재신


요즘 읽는 건 김언 시론집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와 임승유 시집 ⟪생명력 전개⟫. 시론집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는 임승유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데, 시집이 나올수록 '과연 시라는 게 어디서 시작되는지' 연구하는 모습이 보여서 더 좋다. 시 자체를 탐구하는 태도.


예컨대 "식탁에 앉은 사람을 그라고 하자/나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와 같은 문장들(시집에 나오는 문장은 아니고 대충 내가 쓴 거다). 화자가 문장을 쓰는 게 아니라 문장이 화자를 부른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시가 시를 했다’고 생각된다. 만들어지거나 짜인 느낌이 아닌, 언어가 언어 그대로를 부르는 순간. 문장이 먼저 사람을 흔드는.


내 경우 그런 문장들은 보통 의식한다고 해서 써지지도 않고 미리 근사하게 써 놓더라도 결국 나중에는 쓰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어도 현장성이 없으면 제대로(정확히) 쓸 수가 없다. 언어는 늘 과거이지만, 현장 또한 오로지 과거를 통해서만 구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를 지나고 나서야 우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시를 쓰는 사람은 오직 시로써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를 쓴다. 여름이 너무 덥고 끔찍해서 죽고 싶을 때, ‘너무 덥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충족되지 않는 사람이 시를 쓴다. 즉, 지가 느끼는 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머저리가 시인이 된다. 나는 늘 여름을 죽이지 못했다.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현대문학 2018

 내게 오랫동안 남아 있는 임승유의 시다. 마지막 문장이 나를 계속 맴돌게 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죽이지만 않는다면’ 살아서, 여전히 있다. 



연정모


지난 메일을 발송하던 날, 나는 정혜윤 피디가 쓴 ⟪삶의 발명⟫을 읽고 있었다. 이 책이 얼마나 멋진지 알려야 해… 하며 다 쓴 원고를 수정할 뻔 했다. 깊고 고요한 흥분감 속에 있었다. 감탄한 대목에서 몇 페이지 넘기면 또다시 감탄할 대목이 나왔고, 살짝 울 뻔 하기도 몹시 부끄럽기도 했다. 세계와의 연결감을 느끼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다는 감상. (다들 나처럼 온전히 감동받았으면 해서 내용 설명은 덧붙이지 않겠다. 읽어보시길!)


책을 읽은 후로 

⎨경이⎬

라는 말을 마음에 가지고 돌아다녔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에 읽은 책들에서 계속하여 

⎨경이⎬라는 두 글자 단어를 마주쳤다. 


그중 한 권은 ⟪살아있니, 황금두더지⟫. 이런 말로 문을 연다.


생일날엔 비가 아주 많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엄청난 기세로 벽과 창문을 와다다 두드리고 있었다. 이동이 어려운 수준이니 재택근무를 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주 드물고 무시무시한 비.


오전을 차근하게 보내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려 나갔는데, 가게에 들어설 때만 해도 온순했던 날씨가 곧 다시 요란해졌다. 창가에 앉아서 빵과 빵 속 내용물을 천천히 씹으면서 쏟아지는 비를 구경했다. 황금두더지 책도 가끔씩 읽어가며. 나 말고도 몇 명의 손님이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그러고 있는 서로를 조금 신뢰하고 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항 구경 하느라 밤을 새는 고양이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 하마터면 못 일어날 뻔 했다. 빗물이 면적 넓은 잎들을 두드리고 그 잎들 사이로 물방울이 뚝뚝뚝 떨어져 바닥에 닿아 부서지고. 고이고. 그런 것들 보고 있는데 세계가 너무도 거대하고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 기분에 내내 붙들려 있고 싶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은 끝났고(늘 이런 식이다) 다시 빗속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어째 빗줄기가 더 거세져 팔뚝과 종아리에 마구 들이닥쳤다. 빗방울이 살에 닿는 감각이 몹시도 강렬해서, 살아 있다는 게 참 멋지게 느껴졌다.


몇 달 전 받은 TCI 기질 검사에서는 ‘자기초월’ 항목이 평균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 ‘지구 반대편 사람과 종종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같은 문장을 보고 정말 이럴 수 있어? 하며 응답한 결과다. ‘우주 만물과의 일체감’ 항목이 특히나 낮은데 ‘전체로서의 자연 및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강렬한 유대감’을 측정하는 척도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종교를 가진 분과 대화하다가, 나보다 큰 존재가 있다고 느껴본 적 없기에 그것이 어떤 감각인지 궁금하다 말한 적이 있다. (혹시 실례라고 느끼셨음 어떡하지) 그 분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저는 제가 너무 큰 존재 같으면 힘들어요. 거대한 세계의 일부라고 느낄 때 편안해요, 라고 답했는데.

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다시 ⟪삶의 발명⟫ 이야기다. 위에도 언급한 '연결감'이 내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 이유는, 내가 그 감정을 쉬이 느끼지 못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정혜윤 피디가 만난 ‘사람과 자연과 자연 속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단히 통찰력 있게 엮여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형태로. 절망과 수치, 죽음 앞에서도 삶은 경이로울 수 있다는 발견이 있고.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다시 만져질 수 있는지, 발명의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저자의 물음 앞에서 숭고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사진 출처: Re:wild, JP Le Roux, 나는 뉴스펭귄 기사에서 가져왔다. http://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


친애하는 구독자님, 황금두더지는 이렇게 생겼다. 털 달린 고구마를 닮았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피부와 털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이 동물은 기본적으로 앞을 전혀 볼 수 없다고 한다. 다만 모래 속을 ‘헤엄치듯’ 움직일 줄 안다. 두더지를 닮았고 삶의 형태 역시 유사하나 종간 유사성은 없다.


비 오는 생일, 황금두더지(와 그린란드 상어와 기린과 웜뱃 등등의) 이야기를 읽으며: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며: 몸에 달라붙는 물기의 감각들을 느끼며: 왜 경이롭다 느꼈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서 사는 이 동물을 만나본 적이 없고, 활동 반경이 조금도 겹치지 않으니 아마 평생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서교동에 앉아서 사하라 이남에 사는 황금두더지를 상상한다. 장마 끝난 후 반짝 비치는 도시 중앙의 햇빛에 그들의 털이 챠르르 빛나는 모습을.


황금두더지의 몸을 빽빽히 뒤덮고 있는 털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무지갯빛이다. 곤충의 몸 표면에서 종종 발견되는 금속성 색. 청록 보라 남색으로 변하는 색. 그러나 말했듯 이 동물은 앞을 보지 못한다. 자기 몸에서 어떤 빛이 나는지 확인할 수 없다. 빛나는 몸을 가진 이유도 없다. 짝짓기를 위한 것도, 신호를 주고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얘네는 그냥 우연히 무지갯빛으로 태어나 시원한 굴 속을 헤엄칠 뿐이다.


귀여워서 한 장 더..

생활기

차재신: 세상을 살아가려면 공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 깨닫는 중이네요.

연정모: 스터디 카페에서 글 쓰는 분 계신가요? 저는 요즘 글 쓰는 장소를 고민 중이에요. 원래는 좋아하는 카페에서 환기하며 글을 쓰는 편인데요. 글 쓰는 시간을 오래 확보할 필요성을 느껴서 고민 중에 있어요. 학생 때도 독서실은 답답해했던 성격이라 어떨지 모르겠네요. 다녀오고 후기를 또 남겨 보겠습니다! 



• 매달 14, 28일에는 시 쓰는 과정을 담은 글이, 매달 말일에는 그렇게 완성한 시를 한 편씩 보내드립니다.  

• 시 완성본은 매달 말일, 멤버십 전용으로 발송됩니다. 오늘 본 글이 어떻게 매만져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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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재신: js2yam@naver.com | 연정모: 3337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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