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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May 16. 2022

생리에 대한 짧은 생각

얼마전 아기인줄만 알았던 둘째가 초경을 시작했다. 

초등 6학년이어도 막내여서 늘 어리광 피우는 아기같은데 벌써 초경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정말 모르는건지 아이는 왜 생리를 하는지, 배란이 뭔지 하나도 모른다고 했다. 학교 성교육시간에 배우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런건 안알려주었다는 딸. 그럼 뭘 알려준건지... 코로나 덕분에 집콕만 하는 아이는 또래성교육도 받지 못한것 같았다. 

우선은 생리대 착용법, 뒤처리방법, 생리대를 교환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주어야하나 고민하다가 간단히 나팔관이 달린 자궁의 모양을 그려서 설명해주려니 아이는 관심이 있는건지 없는 건지, 대답에는 영혼이 없다. 

아이눈높이에 맞는 책이라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우선 축하받을 일이니 아빠에게 이야기해서 저녁에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싱글벙글, 자기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겠다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방방 뛴다. 에공... 누굴 닮아서 저렇게 맑은지...


아이는 약간 들뜬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시절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은근 기다렸던것 같다.

말로만 듣던 피가 어떻게 나온다는건지, 정말 나한테도 그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생리를 하면 왠지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무언가 훈장같은 걸 다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는 첫 생리대 착용 후 언제 생리대를 교체해야 하는지 30분 단위로 물어보고

생리를 시작하면 이제 키는 안크는 거냐고, 지금 키에서 멈추는 거냐고 물었다,

그래도 또래보다 좀 늦게 하는거니 괜찮다고, 생리를 시작한다고 바로 키가 멈추는 건 아니라고,

지난번 언니를 상담한 의사가 앞으로 2~3년은 더 크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녁에 우리는 약속대로 막내가 좋아하는 치킨파티를 했다.

막내의 초경을 축하한다고 소박한 축배를 들었다. 드디어 우리 막내가 진짜 여성이 되었다고...

이렇게 해서 우리집 여자들은 모두 피를 흘리는 사람이 되었으며, 생리하는 날은 모두 예민해지니 

서로 배려해주고 도와주자고 이야기하며 세 여자는 모두 아빠를 바라보았다.

왠지 어색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완전 나의 기우였고, 막내는 마치 생일인양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오늘은 자기때문에 치킨을 먹으니, 자기에게 고마워하라나 뭐라나...

이후로 아이는 매순간 생리중임을 재차 가족들에게 알리며 자신은 배려받아야 할 사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생리가 무슨 벼슬이냐'라고 말하려다 정말 벼슬처럼 생각해주면 여성들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이와 웃고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생리를 내가 시작한것도 아닌데,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이 힘들고 귀찮는 일을 너도 매달 하겠구나. 조심하며 신경쓰는 일이 많아지겠구나. 한달은 왜 이렇게 금방 돌아오는지, 생리혈이 샐까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겠구나. 밑이 빠질듯한 통증에 구르는 날도, 이유없이 밀려오는 짜증과 우울을 감당해야겠구나. 나는 생리혈이 묻은 손빨래감이 더 늘어날테고 물놀이나 산행 등 세 여자의 생리일을 피해야 하는 날들로 이제 가족여행은 쉽지 않겠구나. 


나는 천생리대를 쓰고 있으나 두 아이의 생리대마저 손빨래를 할 자신이 없어 애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쓰고 있다.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매달 일회용품을 써대는 것이 찜찜하게 마음에 늘 걸렸다. 더군다나 얼마전에 시판용 일회용 생리대의 97%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뉴스를 보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천생리대를 쓰자라고 하자니 애들몫까지 한달내내 손빨래를 할 자신이 없었다. 

생리대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규격별로 구비해놓으려면 매달 목돈아닌 목돈이 들어간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저소득층 아이가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했다는 뉴스가 이해되기도 했다. 언젠가 tv 생리대 광고를 보면서 '생리대는 정말 국가가 안전하게 만들어서 무상으로 공급해야 된다고 생각해. 이 나라는 여성을 아이낳는 기계로 보면서 기계 기름칠은 하지도 않네!'라고 불평하니 큰아이가 엄지를 높이 치켜든다.




나는 중2 때 초경을 시작했으니 30년이 넘도록 피를 흘린 셈이다. 그도 곧 멈추는 날이 올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긴 시간동안 눈이오나 비가오나 매달 꼬박꼬박 생리를 치르다니 참 대단하다 느껴졌다.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을 잘 견디며 보내왔을까. 조심하던 하루하루가 쌓이고 한달 두달, 1년 2년 그렇게 시간이 흘렀겠지.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여성들은 피를 흘리고 묵묵히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폐경은 정말 완경이라 부르고 축하받을 일이구나 싶다. 사람들은 자궁적출수술을 받거나 폐경이 되면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우울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갱년기 호르몬의 변화로 몸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시기이니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성을 아이낳는 도구로 보는 시각을 내면화했기 때문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일에서도 몸에서도 은퇴가 가까이 오고 있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는 생각보다는 

그 어려운 걸 해냈고 수고했다는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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