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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Nov 26. 2024

프랑스 영화 엑스트라 출연

오드레 디완 Audrey Diwan 감독과 노에미 메를랑 Noémi Me

딸아이 광고 촬영 글에 이어 이번엔 내가 프랑스 영화 엑스트라로 참여한 글을 쓰려고 한다.


촬영은 근 일 년 전 2023년 12월 13일이었다.


2023년 9월 경  즈음, 페이스북에 아시아인 엑스트라 모집 공고가 계속 다.

"나랑 상관없는데 왜 이렇게 광고가 뜨지?"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들 관련 그룹에 글을 쓴 것도 모자라 프랑스 한인 사이트에도 글이 올라왔다.


여기서 내 눈에 확 들어온 건 감독의 이름이다.

나는 오드레 디완 감독의 마지막 작품 "레베느멍 L'événement"을 인상 깊게 봤다.


이 작품은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최고 영화상, 연출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이태리 베니스 황금 사자상과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페미니즘 영화이며 1960년대 배경으로 기숙사에 사는 자유분방한 여대생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는 고충을 보여주고 있다. 쇠 꼬챙이를 몸에 쑤셔 넣어가며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그 당시 시대를 반영했다 (참고로 현재 프랑스는 낙태가 합법이다)


영화 시나리오, 음악, 의상, 카메라 구도 등 인상 깊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여운까지 남긴 작품이다.


https://youtu.be/eKvA9DORGOA?feature=shared


'오드레 디완 감독 이름을 떡하니 쓰고 사기를 치겠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 돼도 그만이고) 메일로 엑스트라 신청을 하고 나니 영화사 쪽에서 답장이 왔다. 촬영을 위해 아시아인 300명 필요하다고 한다. 1980년대 홍콩 배경을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일, 문자, 전화로 여러 차례 캐스팅 담당자 두 명과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의상 체크를 위해 파리 10구에 위치한  프로덕션을 방문했다. 내 이름 확인하고 의상과 신발을 받았다.


"나는 무슨 역할이야?"

"호텔 하우스 키퍼야"


자라 검정 바지와 자라 신발은 편안했다. 차이나 카라가 있는 상의 쟈켓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슴이 부해보여서 안 입는 스타일의 의상이었다.


엑스트라의 의상 꼼꼼히 줄이고 늘리고 열심이다.

'잠깐 나올 텐데 뭘 이렇게까지 하지?"


이날 의상 체크비 수당은 25유로였는데 영화 촬영 후 한꺼번에 지급받았다.

프로덕션 건물과 의상

다음 단계는 급여 명세서를 위한 서류 등록 절차였다.

메일로 접수하라고 알려준 ' 관계자들을 위한 전문 사이트'에 직접 내 체류증, 보험증, 은행 계좌 등 총 8단계에 걸쳐 저장하면 등록이 완료된다.


 최종 계약서 사인은 촬영 바로 전날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복잡하다. 하루 촬영을 위해  달을 신경 써야 했다.



두둥~ 드디어 촬영 당일.

나는 평소처럼 회사에서 17시까지 근무를 하고 18시에 6구 럭셔리 호텔 루티시아로 이동했다.

야간 촬영이라 다음날 하루 휴가를 냈다.

12월이라 노엘 분위기

조용한 로비를 지나 컨퍼러스홀로 들어가니 의상팀과 분장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선 내 이름을 리스트에서 확인 후 도착 시간을 적고 사인을 한다. 의상을 찾아 갈아입고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면 된다.

고데기만 십 여분 공들여하고는 결국  끈으로 질끈 묶어서 웃음이 터졌다.

메이크업 붓은 이 사람도 쓰고 저 사람도 써서 냄새나고  더러워 죽겠.


매니저를 맡은 여자는 진한 얼굴과는 달리 팔에 커다란 문신이 있어서 '팔에도 화장을 해야 하나, 의상을 바꿔야 하나 사람을 교체해야 하나' 시끌시끌했다.

결국 팔에 화장하고 촬영.


잔~ 내 이름은 리 자리안~~

화장은 내가 하는 게 더 낫았을 듯.

영화 배경 1980년대라니 이해하기로 했다.


이렇게 립스틱까지 바르고 20시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스텝들을 위한 임시 식당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서로 인사하고 인스타, 페북 친구 맺고 번호 교환하고 금세 친해졌다.


식사 후 바로 스텐바이, 립스틱 시 발라주고, 묶은 머리를 다시 고데기 말아주고..

엑스트라 담당 에디뜨가 바쁘다.

에디뜨가 인원을 세어보니 이날 모인 사람은 33명에 불과했다.

'왜 300명이 필요하다고 했지?'

 알고 보니 12월 초부터 호텔 수영장 씬. 나이트클럽 씬에서는 하루에 150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날 오드레 감독이 직접 엑스트라 한 명 한 명에게 "네가 할 액션은 뭐니?" 물으며 액션을 정해줬다. 20여 명의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다 말이다.


재밌는 건 감독이 오시 전에는 카메라 감독이 액션을 정해줬고 엑스트라들을 담당하는 에디뜨는 우리에게 '아침에 피곤하고 지친 듯. 짜증 난 듯 힘듦'을 표현하라고 했다.

근데 오드레 감독 '아침의 상쾌함, 분주하고 액티비티 한 분위기를 연출하라며 행동을 빨리빨리 하라'라고 요청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계속 수정의 수정을 하면서 리허설을 했다.


어쨌든 나는 오드레 감독에게 내 액션을 설명하며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촬영은 밤 10시에 시작되었다.

주인공 노에미와 호텔지배인의 대사가 한 줄 있는데 바로 내 앞에서 이루어졌다. 카메라의 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다.


나오미 키가 176 cm에 구두까지 신었으니 나는 난쟁이처럼 화면에 지나가리라 확신했다.

여주인공 나오미. 그녀 왼쪽은 나. 새벽 4시 경
나는 뒤늦게 나오미를 발견하고 뒷통수만 찍음. 맨 뒤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오드레 감독. 감독도 178정도.
영화 속 두 여배우

촬영을 하면서 옆에 있는 여자분과 이야기를 하다 서울 이야기가 나왔다.

화들짝 놀라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나에게 프랑스어로 묻는다.


'떼 꼬레엔느(너 한국사람이야)?'

'위(응)'

'므와 오씨(나도)'


우리는 한 5초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시간 동안 내내 불어로 말했는데 같은 한국 사람이라니...

이날 한국인이 딱 두 명 있었다. 반가웠다.


새벽 2시가 넘어 2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간식과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내내 구두 신고 서 있어서 다리랑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의자에 으니 살 것 같았다.

같이 저녁을 먹었던 가수 역할의 여자들이 멋지게 분장을 했다. 원래 전문 가수들이다.

우리가 촬영하는 동안 다른 장소에서 공연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영화 속 플로리스트들. 실제로 꽃집 운영 중
영화 속 호텔 매니저 역할의 배우 마틴. 이날 아시아 언어 다 배워감.  오른쪽은 티도 안나는 우리 의상 팔. 소매 허리까지 일일이 다 수선해 준 의상 담당자


다음 씬 촬영도 현장에서 '넌 이렇게 해 넌 이렇게 하면 좋겠다. ' 촬영팀이 즉흥적으로 액션을 정해줬다.


다른 장소에서 두 번째 촬영이 이루어졌다.


나는 두 장면을 찍고 세번째 촬영이 끝나길 기다렸다.

새벽 4시가 넘어갔다.

의상이고 뭐고 다들 구두를 벗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들 나이가 많아서 체력이 안된다.

'꾸뻬 COUPÉ (컷)'

드디어 OK  떨어졌다. 

다 같이 박수를 쳤다.

드디어 퇴근이다.


옷을 갈아입기 전 다 같이 사진으로 추억을 남겼다.

일본, 중국, 한국, 말레이시아, 라오스,인도,베트남 등등 국도 다양했다.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풀고 나오는데

'넌 누구야?'

'어머 네가 아까 그 애니?'

사복을 입으니 못 알아보겠더라.


엑스트라를 담당하는 에디트와 뽈린은 우리들이 새벽 5시에 돌아갈 차편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나와 같이 식사하던 사람중에 같은 동네 사람이 두 명 있었다. 그중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친구 차를 탔다. 그녀는 라오스인으로 보험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프랑스 남편 사이에 두 아이가 있다. 그녀도 나처럼 회사 생활이 지루해 바람 쐬러 나왔다고 한다.

 나를 데려다준 사람은 분에 급여 정산 시 교통비를 10유로를 더 받게 됐다.


우리는 왓챱에 그룹방을 만들어 다음에 있을 영화 엑스트라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지내고 있다.


 촬영이 새벽 5시에 끝나기 때문에 회사에는 미리 휴가를 낸 상태였지만 나는 바로 아침 9시에 치과 약속을 잡았고 이날 딱 2시간만 자고 오페라 쪽에 나가 여러 일을 보았다.


나는 이 한 번의 촬영으로 인해 생활 리듬이 깨져서 일주일 고생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두통으로 진통제를 먹었고 무릎에는 근육통 패치가 붙여져 있다.


회사 일당에 비하면 일당도 적고 몸도 피곤한 일이지만..  회사만 다니 지루한 삶은 싫다.

더 늙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을 뿐.


새벽 5시 호텔을 떠나며

2024년 9월 드디어 영화가 개봉했다.


50년 전 같은 이름의 프랑스 포르노 영화가 대박을 쳤다. 이번에 오드레 감독이 현대판으로 재해석해 만든 영화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면 프로덕션 측에서 포르노가 아니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 영화기 포르노던 아니던 별로 상관없다. 오드레 감독만 보고 촬영한 거다.

https://youtu.be/3dDlBbEJRDE?feature=shared

주말에  파리 13구 영화관에 갔다.

원래는 엑스트라 동료들과 다 같이 보고 싶었으나, 누구는 촬영, 누구는 여행 중, 누구는 근무 중 등등 이유로 시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 그냥 혼자 갔다.


야한 영화를 여 혼자 와서 보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어찌나 뻘쭘하던지...

가장 중요한 점! 내 얼굴이 1초라도 나왔는가????


우리가 촬영한 부분 대부분이 편집되어 30여 명 중 한 두 명 뒤통수, 옆모습 정도 보였을 뿐이다.

내 앞에서 여배우와 호텔 매니저가 대화하는 부분은 통편집됐다.

노래하는 가수들도 통편집, 플로리스트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한국 여자분 뒤통수가 보이길래 바로 왓챱으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참고로 그녀는 통역 업무로 리옹에 있다고 한다.


느낌은 전 영화 레베느멍과 비슷하다. 자기의 (성) 정체성을 알아가고 자유롭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생활을 즐기는 그런 모습.

근데 대사는 영어요, 자막은 불어라, 언어가 딸리는 나로서는 대충 화면 보고 이해하는 수밖에..


그냥 남자들을 위해 영화다.

영화 개봉 전후로 티브이 여러 프로그램에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평은 좋지 않다.


영화 개봉 이후 노에미가 루이뷔통 패션위크 때 스타급으로 초대받는 모습을 보고 '영화가 이슈가 되기는 했나 보다'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나오미는 매년 루이뷔통 행사에 초대됐던 배우였다. 그렇다. 나만 몰랐다. 그녀가 유명하다는 걸..

나오미와 오드레의 영 홍보 인터뷰 영상으로 글을 마친다.


https://youtu.be/RLOUrVXrfWw?feature=shared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도전은 쉽다.

다음 도전은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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