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 이야기 - 지방
찾아가는 영화관은 전국의 영화관이 없거나, 문화 소외지역에 찾아가 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취지에 더 좋은 점은 국가에서 무료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3만km가 넘게 전국을 돌며 먹고,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점을 공유하려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아, 제 이름이 ‘이용감’이라 Brave Yi입니다.
<팔도강산>이라는 1967년도 영화가 있습니다. 김희갑 – 황정순 배우가 시집을 보낸 아들 · 딸들과 만나려 팔도를 돌아다니는 내용입니다. 지금으로 바꾸면 60년 전 만들어진 1박 2일 극장판이라고 할 까요.
지방차별과 관련해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67년도 영화에서 나타나는 전국 팔도는 활기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충북 단양의 시멘트 공장, 전북 김제의 간척사업장, 부산의 항만, 울산의 석유화학공장에서처럼 영화는 산업 역동성이 넘치는 전국 팔도를 표현했습니다. 산업뿐만이 아닙니다. 충북 보은의 속리산, 전북 남원의 춘향전, 제주도의 자연 풍경, 경주의 불국사까지 전국 명승지조차도 활기가 넘칩니다. 이 영화에서 딱 한 지역, 한 장소만이 힘이 없습니다. 강원도 속초인데요, 이건 뒤에서 더 언급하겠습니다.
두 번째 지점은 이 영화가 경상 – 전라도 지역감정의 시작이 된 영화라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당시 ‘국책영화연구소’, 지금으로 치면 K-TV 즉, 국가에서 제작한 국정 홍보영화입니다. ‘국책영화연구소’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대한 늬우스’를 만든 곳입니다. 이외에도 ‘기생충 박멸’ 등의 국정 홍보 영상을 만든 곳입니다.
68년도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68년도에는 커다란 사건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에 침투한 사건입니다. 이를 다룬 영화들로 <효자동 이발사>가 있습니다. 설사 때문에 꼬맹이가 간첩으로 오해를 받게 되는 내용입니다.
다른 한 가지 큰 사건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경합을 벌인 이들은 두 명.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박정희 –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팔도강산>은 다분히 정치적인 영화였습니다. 우선 제작비. 당시 이 영화 제작비는 1,800만원입니다. 당시 1,800만원을 비교하자면...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사카린 밀수 사건’(67년) 당시 사카린 밀수 규모가 1,800만원이었습니다. 엄청난 제작비죠. 서울 국도극장 개봉 당시 관객 32만명이 들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대략 관객 수 500만 이상입니다. 영화 개봉이 잘 되자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팔도강산> 전국 무료 순회 상영회를 개최합니다. 군인이 집권해서 이렇게 사회가 역동성이 생기고, 잘 살게 됐다, 이런 홍보를 대놓고 하는 행태였습니다.
야당에서는 <팔도강산> 순회 상영회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합니다. 당시 선관위는 혐의 없음 판결을 내립니다. 결국 쿠데타 수장이던 박정희는 대통령이 됩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시한 전라도 차별이 숱하게 이어지고, 80년 박정희처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이 5.18일 호남 지역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이전 글(전국을 내달리는 영화관)에서도 밝혔듯이 경남 하동군 주민들이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전남 구례군으로 갑니다. 경상도 – 전라도는 거리상으로 그리 먼 지역이 아닙니다. 68년 <팔도강산>이 개봉한 시점부터 나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만든 구호 때문에 ‘분열’이 일어난 겁니다. 나쁜 대통령이 시작했고, 지금은 나쁜놈(일베, 그리고 일베와 비슷한 국회의원)들이 이용해먹는 구호입니다.
물론 저처럼 지역적 혜택(경상도 출신 – 서울 상경 – 거기다 말빨 쎄고 덩치가 큰 남자)을 받고 살아 온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보상을 줄 수도 없는 위치에서 단지 차별을 받아 온 지역이 있고, 혜택을 받은 지역이 있다는 인식만 있어도 경상도 – 전라도 지역감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인식만 있어도 아직도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나쁜 정치인, 나쁜놈들이 잘못됐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불과 20년 전에 국가 권력이 가족 · 친지 · 친구를 죽여나간 ‘광주민주화운동’이 아직도 빨갱이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정치 세력에 표를 던지지 않는 걸 두고 지역 몰표 운운하는 행태가 억지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경상도-전라도 지역감정에 대한 반박은 이쯤하겠습니다. 지방차별 1탄, 첫 글의 주제가 ‘경상도 사투리는 권력의 언어다’는 말에 대한 반박으로 사투리 자체가 남아 있지 않는데 무슨 권력이냐고 말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주장합니다.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Lived in 서울’이 권력입니다.
이제는 지역감정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지방감정이 대두 할 거라 예상합니다.
작년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동계올림픽 이전만 해도 서울에서 강원도 양양을 가려면 ‘한계령’을 넘어야 했습니다. 제가 2016년도에 찾아가는 영화관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이 일이 힘들다고 느낀 때도 ‘한계령’을 넘을 때입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이 10km 이상 이어지고, 자동차 풋 브레이크(발로 밟는 브레이크)가 아닌 엔진 브레이크(기어라고도 합니다)를 사용하라는 경고문이 한계령 도로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중간 정도 가니 ‘설악산 휴게소’가 나옵니다. 해발 고도만 920m. 서울에서 서핑으로 유명한 양양을 가기 위해서는 올림픽 이전에는 ‘한계령’을 넘지 않고는 멀리, 멀리 돌아가는 길 뿐이었습니다.
인면수와 수호랑 · 반다비가 멱살을 잡고 동계 올림픽 흥행을 만들었지만, 올림픽 이전만 하더라도 왜 올림픽을 하냐는 반대 여론이 많았습니다. 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근데 이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올림픽이 강원도에 인프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없었다면, 서울 – 양양 고속도로가 생길 수 있었을까, 광주(경기도) - 원주 고속도로가 개통했을 까, 서울 – 강릉 KTX가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요? 올림픽 이후 강원도 속초에서는 건설 경기가 살아났습니다. 제2의 제주도 이미지를 등에 업고 휴양지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속초에 자주 가는 모텔 사장님 말에 따르면 올림픽 이후에 아파트(혹은 오피스텔) 분양이 호조를 이룬다고 합니다. 공실 분양이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토건족들의 국세 나눠먹기 등으로 비판하실 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토건족이 돈은 나눠먹는다 한들 건설노동자로 서울에서 사람들을 데려와 쓸까요? 67년도 <팔도강산>에서처럼 전국이 개발 호황을 누릴 때조차 불쌍한 취급을 받던 강원도 속초였는데요.
처음 이야기한 67년도 영화 <팔도강산>에서 전국 팔도가 활기를 띠나 단 하나, 강원도 속초만 활기를 띠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영화 속 속초에 사는 신영균 배우는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나갑니다. 정권 홍보를 위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만든 국정홍보영화에서조차 강원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도와야지”라는 말로 마무리 해 버릴 정도로 동계올림픽 이전 강원도는 인프라가 없던 지역이고, 인프라가 필요치 않는 깡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올림픽이 한 20년 됐나요? 아뇨. 불과 1년 전(2019년 3월 기준)에 개최했고, 2011년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네이버 지도에서 캡처한 서울 – 수도권 일대 도로망과 부산 일대, 전라도 광주 일대 도로망 이미지입니다. 그림에서만도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수도 서울과 제2의 도시라는 부산 근처의 도로망이 어떤가요? 더 나아가서 수도와 광주는요? 일부러 강원도의 가장 큰 도시인 춘천과 강릉 언급은 않겠습니다. 안 봐도 너무 뻔하니까요.
지난 2월, 정부의 지방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에 대해 한 정치인(?!)이 ‘지방 인프라는 넉넉하다’고 주장했다 몰매를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이 정치인(?!)에 대해서는 3탄에서 더 설명하겠습니다). 도로망은 모든 인프라의 기본입니다. 도로가 깔려야 집을 지을 자재를 실은 트럭이 움직이고, 집을 지어야 사람이 살고, 도로가 사람들을 연결해야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위에 제시한 이미지처럼 서울 – 다른 지방을 잇는 도로망은 넘쳐날 정도로 많은데(물론 인구 집중 때문에 저 도로망이 효율적이진 않습니다), 지방과 지방을 잇는 도로는 없습니다. 전라도에 사는 사람이 강원도 강릉, 즉 영동지방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는 게 훨씬 효율이 좋습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전국을 수도 없이 돌아다녔지만 강원도 – 전라도요? 그냥 비행기 타시는 게 건강에 좋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Lived in 서울’ 이었던 사람들은 지방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벗어나면 한국의 모든 지역들이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예타 면제를 비판한 정치인도 ‘힙’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에게 평창 올림픽은 예산 낭비이고, 지역 개발은 토건족들의 국가 예산 꿀꺽하기란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물론 무분별한 토건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합니다)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을 쓴 J 스티프글리츠는 책에서 주장합니다. 1%의 상위층과 99%의 나머지 계층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인식하고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법이라 말입니다.
이를 서울과 지방으로 바꾸겠습니다. 지방이 무너진다면, 서울로의 집중만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사는 다음 30년 뒤 세상, 한 세대 뒤 자손들은 영화 <저지 드래곤> 속 도시와 별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높은 타워 안에 사는 안락한 사람들, 타워 안에 들지 못한 빈민들은 타워 밖에서 노숙합니다. 그 이외 지역은 황무지입니다.
그런데 지방에 사람이 없고, 특히 젊은 사람이 없다고 한숨 쉬는 지방민들은 다 아는 사실을 Lived in 서울 사람들은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단박에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결혼식 비용을 비교해보십시오. 제가 결혼을 준비하는 비용과 부산에 있는 친지, 친구들이 준비하는 비용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전라도는 빨갱이, 전라도 사람들은 안 된다는 별 가당치도 않은 말, 지역감정으로 20세기 후반을 지내온 나라입니다. 그런 인식이 나쁘다는 걸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군사독재권력이 30년 이상을 해 먹은 나라입니다.
그런 인식은 없습니다(아니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적어도 이전에 비해 저런 생각이 쪽팔리다는 인식은 있습니다. 그래서 일베는 일밍아웃을 못하죠). 이제 향후 10년을 지나 30년은 ‘지방 차별’에 대한 인식이 시작 될 겁니다.
3탄에서는 지방 소외와 지방 차별에 대해 어떤 감정도 닿지 않는 서울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특히 서울 시가지에서 30km를 채 벗어나지 못하는 경기도 지역에서부터 ‘지방 소외’ 의식은 시작됩니다. MGGA(Make Gyung in Great Again, 메이크 경인지역 그레이트 어게인)는 향후 발생 할 지방 차별을 보여주는 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