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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 May 23. 2018

기업의 CEO [07. 한진 : 조중훈]

신용을 중시했던 CEO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1945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화물들이 부두에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본 조중훈 회장은 그동안 모은 돈을 자본금 삼아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화물량이 많아질수록 이를 내륙으로 운송하는 수요 또한 늘어날 거라는 판단에 따라 운송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수탈로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되어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해 사용해야만 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한진상사를 설립된 지 5년 만에 트럭 30여대와 화물선 10여척을 보유한 건실한 운송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발발한 한국 전쟁은 한진상사에게 위기이자 기회를 제공했다. 전쟁으로 인해 회사의 건물은 물론 회사가 있던 인천이 모두 폐허로 변해버렸지만, 미군과의 수송계약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은 한국인 운송업자들이 전시상황을 핑계로 물건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아 국내기업과는 운송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지만, 한진상사는 운송도중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피해금액을 배상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미군과의 운송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어렵게 따낸 미군과의 계약인 만큼 조중훈 회장은 미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발생했다. 미군의 점퍼를 운송하던 한 운전기사가 트럭에 실려 있던 점퍼 모두를 남대문 시장에 팔아넘기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물건을 빼돌린 사람은 수령처로부터 물건을 받았다는 담당자의 사인을 갖고 있었다. 미군 담당자가 물건을 확인하지 않고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한진상사는 이 사건이 물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인을 한 미군으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대신에 직원들을 시켜 남대문 시장에 운전기사가 빼돌린 점퍼들이 유통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물건을 변상할 책임이 없다고 해도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신용이라고 생각한 그는 직원이 빼돌린 점퍼들을 찾아 미군에게 인도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의 결정대로 한진상사의 직원들은 남대문 시장을 찾아 판매되고 있던 점퍼들을 모두 구매했고, 이렇게 회수한 점퍼들을 아무조건 없이 미군에게 양도했다. 이로 인해 한진상사는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미군은 한진상사를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신용을 바탕으로 이후 한진상사는 미군으로부터 더 많은 운송계약을 따낼 수 있었고, 이렇게 거둬들인 수익은 오늘날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한진그룹의 기반이 되었다.


[참고 도서] 내가 걸어온 길(1996), 조중훈,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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