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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피스토 Dec 01. 2021

오롯이 나만의 것인 시

섬, 정현종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여기 두 행의 시가 있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섬>은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익숙한 시이기도 합니다.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지요. 어려운 단어 하나 없지만,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없어 보입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볼까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 시행에는 ‘사람’과 ‘섬’이라는 두 단어만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한번에 잘 와닿지 않는다고요? 아마도 모순적인 표현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니, 막연하게나마 그림이 그려질 수는 있지만 왠지 비현실적이지요. 일상의 언어라면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시에서는 가능합니다. 이것을 ‘시적 허용’이라고 부릅니다. 왜 시에서는 가능할까요? 시는 짧은 형식 안에서 시인의 상상력과 생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면 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라는 형식 안에서는 상징이나 은유와 같은 표현을 빌려 시인의 마음을 함축적으로 노래하는 것이지요. 이 시의 한 줄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도 비문과 같은 문장에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는 항상 우리에게 상상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 상상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섬’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따라 이 시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내가 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이 시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거나, 외로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섬’은 일반적으로 외로움을 상징합니다. 언제나 바다 한가운데 혼자 떨어져 있고, 접근도 쉽지 않습니다. 섬을 뜻하는 한자인 ‘섬 도(島)’자 역시 “떠 있다”는 뜻의 ‘새 조(鳥)’자와 ‘뫼 산(山)’자가 합쳐, 바다 위에 떠 있는 산을 형상화한 글자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 섬을 꼭 ‘외로움’의 상징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외로움이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는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으며, 즐거움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오늘은 기쁜 날일 수 있고, 내일은 슬픈 날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슬픈 날, 이 섬은 ‘슬픔’으로 읽힐 수 있고, 내가 행복한 날, 이 섬은 ‘기쁨’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란, 어떤 의미에서 시인의 것이 아닌 오롯이 읽는 이의 것이기도 합니다. 문학에서는 독자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을 두고 “열린 텍스트(Open Text)”라고 부릅니다. 열린 텍스트는 이제 시와 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시도되고 있지요. 


시에서는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여러분이 가고 싶은 그 섬은 어떤 곳인가요? 여러분이 상상하는 나만의 섬은 무엇인가요? 시인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시를 선물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선물의 크기는 오직 읽는 이에게 달려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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