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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Aug 02. 2020

5분

하루의 기억

포르투의 수도 뚜껑














하루는 5분 안에 결정된다. 더 정확히는, 내가 하루를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지는 5분 안에 결정된다. 

바르셀로나를 거쳐 포르투에 도착했을 때 쓴 글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체리와

여행을 하며 친구랑 나눈 대화가 이것이다.

우리의 하루가 결정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열심히 외운 한 문장으로 소통에 성공했을 때, 하루는 결정된다.

수업시간에 배운 프랑스어로 가게에서 직원과 깔끔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하루가 결정된다.

길을 잘못 들어간 곳에서 예상치도 못한 풍경을 발견했을 때, 그것으로도 하루가 결정되는 것이다.

 

Porto, Portugal

그 짧은 시간들은 언제나 살그머니, 골목길을 돌았을 때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마주치듯 생겨난다. 계획하거나 예상한 대로가 아니라 항상 툭,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된다.


힘들던 날들이 있었다. 이방인으로서의 기분이 좋다가도 힘들 때였다. 소스와 섞이지 못한 파스타 같은 기분이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리옹에서 어떤 날의 나는 <too good to go>라는 앱으로 브리오쉬 도레의 빵을 샀다. 이 앱은 오늘까지의 기한을 가진 음식들을 마트의 떨이상품처럼 음식점이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있게 해주는 앱이었다. 빵이 아니라 음식이라면 음식을 담아올 통을 가져가면 된다. 앱을 통해 미리 결제를 하고 매장으로 갔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빵을 넣어주었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류의 빵을 3개, 디저트 빵을 3개 정도를 받았다. 어차피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겠다 생각하며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기숙사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 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한 노숙자가 다리 끝에 앉아있었다. 마음을 먹고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노숙자가 눈에 보였던 순간에 수차례 할 말을 마음속으로 연습한 뒤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현금은 없지만 빵이 많아요, 괜찮다면 이 빵을 좀 나눠드릴까요?" 이 짧은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고 마침내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리고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내 하루가 결정되었다. 거절하면 어쩌나, 혹시 기분 나빠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고 나는 빵을 나눠준 뒤 돌아왔다. 온기가 내 마음에 차서, 기억마저도 따뜻한 날이었다. 


Lyon, France

오늘의 하루는 이 글을 쓰는 동안 결정되었다. 온기가 더해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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