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일단 이곳에 오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면 지하철을 묘사해보라고 했다. 어떤 이의 설명은 일단 누가 탔고, 몇 명이 탔고였다.
나에게 가장 처음 떠오른 생각은 둥근 직사각형의 모양과 푸른 색감이었다. 나는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나에게 묘한 위로를 느꼈다. 가장 처음 내가 묘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생각이 형태와 색감이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계속해서 예술을 동경해왔다. 나는 어쩌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예술대를 다닌 것도 결국 그 노력의 일환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나의 묘사에 묘한 자부심마저 느끼기에 이르렀다. 부끄럽고 참으로 부질없게도.
예술이라는 것을 특권의식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배웠고, 지금껏 우리 가까운 역사에서-근대 역사에서- 상위 예술이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얼마나 예술이 일상과 그리고 대중과 괴리되어 왔는지를 알면서도, 나는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결국, 나의 고백이고 자백인 셈이다.
예술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삶이 곧 예술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곧 예술 같은 일이다. 표현하지 않는 예술을 우리는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있는 이 예술 같은 하루를 누군가는 표현해내는 것이고, 그것이 문학이나 미술이나, 음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현실을 껴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대부분은 말로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말들은 기록되지 않고 대개는 부유하거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 것으로 그 생을 마감한다. 우리가 형식을 취해 그것을 기록하면, 예술이 된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글이기도 하고, 나의 예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