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berge Nicolas Flamel
미식가는 아니지만 확고한 입맛을 가진, 때로는 괴랄스러운 사람의 여행 <음식점> 탐방기.
열한 번째, 프랑스 파리.
올해 9월은 나에게 파란만장한 달이었다. 유학을 포기했고,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나를 위해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뚱땅거렸고 울기 싫어 산책을 나갔다. 마음을 위해 만다라를 그렸다.
코로나 때문이었다는 말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유학을 포기한 것. 나에게는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은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해주었다. 위로가 되면서도,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 때문에 그 말을 의심했다. 나는 용기가 있었을까? 도망친 그것도 용기일까. 지금에서야 뒤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선택을 했고, 뒤돌아 설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다.
엄마는 유학을 간다는 그 선택도, 유학을 가지 않겠다는 그 선택도 잠잠히 존중해 주었다. 엄마는 묵묵히 듣고, 받아들였다. 나는 엄마의 태도와 나에 대한 잔잔한 믿음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고 감사한 것인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것임을 나는 이제 깨닫는다. 불안함을 이기고 너를 믿는다는 마음을 내보이기까지 엄마에게 어떤 마음의 풍랑이 있었을지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그 풍랑에 감사한다.
엄마가 나를 만나러 프랑스에 왔었다. 엄마는 혼자 오는 것을 무서워했다. 국제공항에서 미아가 되면 어떡하냐고 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위해, 엄마만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공항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문구를 보고 나가야 하는지, 어디에 내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적었다. 엄마는 두려움을 이기고 긴 휴가를 내어 나에게 왔다. 그렇게 우리는 파리에서 만났다.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다. 엉트레, 쁠라, 데쎄까지 나오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을 예약했다. Auberge Nicolas Flamel.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곳은 코스요리를 주는 곳이었다. 먼저 식전 음식으로 빵과 신기한 한입 요리 3개가 나왔다. 세 가지 다 익숙지 않은, 처음 먹어보는 맛의 요리였다. 부드럽고 크림 같고, 계란 맛이 났다. 빵과 함께 나온 버터가 아주 맛있어서 버터를 한 두 번 더 가져다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프랑스에서 버터를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
식전 요리로 선택한 것은 계란을 튀긴 요리였다. 부드러운 크림과 함께 나왔는데 어마어마한 맛은 아니지만 밀도가 높고 보들보들했다. 본 요리로는 우리 둘 다 어린 오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후무스와 비슷한 소스가 접시에 발라져 있었고 튀긴 채소가 가니시로 함께 나왔다. 요리에 조예가 깊지 않아 이 튀긴 채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조화로웠다. 부드러운 고기 한 점, 묵직한 소스, 바삭한 튀긴 채소에 톡톡 터지는 석류알을 한 입에 먹으면 입 안에서 다채로운 식감의 향연이 펼쳐졌다. 먹으면서 약간씩 곁들이는 감자의 포슬 거리고 짭짜름한 맛도 일품이었다. 단연코, 내가 알던 오리의 맛이 아니었다. 오리를 이렇게 풍미가 가득한 스테이크로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후식으로는 안에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초콜릿 볼과 치즈 플래터를 주문했다. 음식이 서빙된 후 앞에서 따뜻한 초콜릿을 부어주었다. 치즈는 무화과 잼과 함께 나왔는데 굉장히 향이 강한 치즈들이 섞여있어 엄마는 어떤 것은 드시지 못했다. 각각이 어떤 치즈인지 알았다면 더 재밌었을 테지만 알지 못해 아쉬웠다.
여행을 하며 소통을 도맡아 할 때, 이제는 곧 내가 엄마를 돌보아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건 어떤 막연한 슬픈 마음과 동반해서 나에게 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가 이전에 했던 말들-잔소리-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엄마가 하는 흔한 걱정의 말을 나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이해하지는 못했다. 때가 되지 않아 나는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들의 일부가 마음속 깊은 곳에 와 닿기 시작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많이 고맙다. 나는 엄마를 계속 이해하고 있다. 엄마의 약해짐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큰 나를 향한 애정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에서 나갔을 때 "딸~"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뭉클할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나도 딸이 처음이라, 우리 서로에게 더 잘하자며, 다짐하는 아침이다.
Auberge Nicolas Flamel
주소: 51 Rue de Montmorency, 75003 Paris,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