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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Sep 04. 2020

예술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만

삶을 살만하게는 해주잖아요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다른 여러 영화와 더불어 소위 말하는 나의 '인생영화' 목록에 들어가는 영화다. 


1984년의 독일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동독의 한 비밀경찰의 삶이 타인의 삶을 엿보며 변화되는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 비즐러는 비밀경찰의 임무를 가르치는 일을 맡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그는 어떻게 도청을 하고, 심리적 압박을 통해 사람들의 자백을 받아내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당국이 수상쩍다고 생각하는 극작가인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일을 부여받게 된다. 그는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의 삶을 감시하며 중대한 내적 변화를 겪는다. 그는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예술이 삶을 뒤흔들고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시를 읽는다. 그는 브레히트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라는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드라이만은 이 곡을 연주하며 "이 곡을 듣고도, 이 곡을 진심으로 듣는다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즐러는 이 곡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비즐러에게 정말로 비밀경찰이냐고 묻는다. 비즐러는 "너 그게 뭔지 알아?"라고 묻고, 아이는 "아빠가 그건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을 잡아넣는다고 했다"라고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비즐러는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비즐러는 아이의 이름을 통해 그 부모를 알아낼 것이고, 그 부모가 비밀경찰에 대해 불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그 부모에게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내 비즐러는 말을 덧붙인다. "네 공의 이름 말이다"


그는 이미 변화했다. 영화는 그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제 자신이 위험에 처할 것을 감수하고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감싸고 돕기 시작한다. 그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 달했을 때 결국 둘을 남몰래 돕다 상관의 의심을 사고 비밀경찰이 아닌 감옥에서 우편을 분류하는 직무로 옮겨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드라이만은 그 옛날, 자신이 도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누군가 자신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청을 했다면 그가 동독의 사상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알았을 텐데도 자신이 잡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도왔던 누군가를 위해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색과 같은 일상을 살던 비즐러는 우연히 서점을 지나가 책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책을 구입한다. 책을 선물로 포장할 것인지 묻는 직원에게 비즐러는 답한다. 

"이 책은 저를 위한 겁니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이다. 



시각예술을 공부하면서 죽은 듯한 미술관에서 지칠 때가 많았다. 예술에 힘이 있다고 믿다가도 아무도 찾지 않는 미술관이 죽은 공간 같아 보일 때 체념과 무기력이 나를 찾아왔다. 작품이 말을 하지 않고 나에게 침묵만을 보일 때 나는 계속 그 앞에 시위하듯 서 있곤 했다. 책도 읽지 않았고 음악도 그저 귀에서 귀로 흘려만 보냈다. 그때 이 영화를 보았다. 


아, 이것이었다. 내가 느꼈던 것이. 

이 힘이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은. 


나는 시각예술의 현학성과 그럴듯함에 갇혀 내가 이미 새장 안에 갇힌지도 모른 채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다. 언제든지 내 사고가 날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허황된 믿음이었다. 나는 이미 갇힌 자였다. 나는 어느새 시각예술의 우위라는 거짓된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단어를 자주 미술과 혼동해서 사용하였으며 음악과 문학을 예술의 범주로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예술이 가진 힘에 대해 희미해지게 되었다.


예술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파장을 우리의 몸에 일으킨다. 그것은 때로 아주 강력해서, 삶이 받은 어떤 영향보다 더 클 때가 있다. 삶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는 있다. 누구나 예술이 주는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당신의 마음만 열려있으면 된다. 마음이 힘들 때 우연히 보게 된 문구를 통해 위로를 받거나, 울적하다가도 어떤 음악을 듣고 몸이 움직인다거나,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그 노래의 이름을 궁금해한다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림 같다고 생각한다거나, 인터넷을 보다가 재미있는 시 한 구절에 웃음을 터뜨린다거나,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한다거나 하는 경험들을 다수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물에 물감 한 방울이 떨어져 확 색이 퍼지듯이 마음 한편에 따뜻함이 떨어져 온기가 퍼지는 느낌을 당신은 알 것이다. 그 따뜻함들이 지속되지는 않지만 우리 인생 군데군데 퍼져있어 결국 우리의 삶을 좀 더 살만하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우리는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예술도 필요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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