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윤미 Nov 13. 2021

오늘의 구름




   이상한 망상에 빠지게 되는 밤이 있다. 외로움 때문이다. 그렇게 핑계를 대야 할 것만 같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육아로 한동안 못 썼던 글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나는 친구였다. 다른 브런치 글에도 썼었던, ‘랭보’를 알던 곱슬머리 친구.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랭보를 알려줬고, 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을 따라 그린 그림을 내게 줬던 친구. 친구가 시를 특별히 사랑하고, 시를 몰래 썼었고, 그림을 유난히 잘 그렸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내게 예술적 감성을 일깨워준 유일한 친구였던 것만 같다. 나는 그땐 학창 시절을 무척이나 즐겁게 보내느라 바빴던 때라 작은 목소리의 친구만 붙들고 있지 못했었다. 그 친구 말고도 친구가 정말 많았던 내 인생의 유일한 때였으므로. 영화 이야기, 그림 이야기, 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지금의 내게, 그 친구가 이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림과 시를 사랑하고 있을지, 내 기억 속에서만 그런 기억으로 남았을 뿐, 그 친구는 깊이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같기만 하고, 정말 잘 모르겠다. 대학 때 교류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 연락이 끊겼다. 영화와 음악과 시와 그림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이곳에 나를 두고 멀리 떠나버린 것만 같다. 아이들만 생각하는 동안 시간은 내게 외로움과 견뎌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사람들과 다시 연락할 용기를 빼앗아 버렸다. 그날 밤, 나는 포털 사이트에 아무 생각 없이 친구의 이름을 적어봤다. 섬에서 활동하는 같은 이름의 화가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그럴 거라 단정 지었다. 그럼직한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 믿기 시작했다. 메일 주소가 나와 있었다. 메일 주소로 편지를 썼다. 별 고등학교를 나온 달 반의 당신이 맞나요? 혹시 맞는다면 이 주소로 답장을 주실래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나는 별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어요. 달 반도 아니고요. 저는 그림을 그리지만, 당신이 찾는 그녀는 아닌 것 같군요.” 이제 내 친구는 어디로 가서 찾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