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주 음식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그녀의 에세이를 우연히 온라인 서점에서 발견했다.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잊고 있던 것들을 잊은 줄도 모른 채, 나는 잊고 있었다는 사실. 섬에서 나와 살면서부터 섬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없었다. 이곳에서 처음 맛본 음식과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어느새 그것들이 내 피와 살이 되어 나의 몸을 지탱해주고 있다. 오래 맛보지 못한 음식들은 이제 먹고 싶다는 생각의 겨를에도 가 닿지 못한다. 맛보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에 생각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책에 나와 있는 음식들의 이름을 나는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자리젓에 싸 먹는 콩잎, 멜 볶음, 옥돔으로 만든 미역국, 식으면 더 맛있는 호박잎국. 채 썬 오이에 된장을 풀어 만든 여름 냉국, 몽글몽글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콩국. 식당이 없고 배달 음식이 불가능한 작은 마을에서 오로지 가능했던 엄마의 음식. 그 음식들을 먹고 자라는 동안 도시의 먹거리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유년의 음식. 제삿날에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는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작게 썰어 넣은 미역국을 해주셨었다. 외가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음식.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돼지고기 미역국은 영원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섬에서 나와 해 먹는 음식들은 맛이 없다. 이제 나도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섬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섬의 맛을 알지 못한다. 엄마의 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살아온 지 오래 되어버린 나는 섬의 미각을 잃어버렸다. 내가 만든 음식에 섬은 없다. 나는 이제 섬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