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좋아한다. ‘좋아한다’라는 표현이 거창한가? 아무래도 좋다. 아무튼 나는 상자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내가 말하는 ‘상자’라는 사물의 범주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이 포함된다. 안경 케이스, 꿀과 쨈이 들어있던 선물 상자, 화장품 세트 상자, 원두 커피통, 쿠키가 있던 틴케이스……. 무언가 올망졸망 담겨 있던 그것들을 나는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여쁜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좋아하는 색이라도 칠해져 있는 거라면 무조건 곁에 둔다. 간혹, 내용물보다 상자가 더 마음에 들기도 한다. 이탈리아어가 적힌 원두 커피통은 아이들 색연필 통으로 쓰고, 화장품 세트 상자는 머리끈이나 손목시계를 놓는 소품 상자로 활용한다. 선물로 들어온 홍삼 상자는 튼튼해서 아이들의 인형 놀이용으로 쓰면 그만이다. 침대와 책상이 있는 인형의 작은 방이 되는 것이다. 유난히 모양이 독특해서 버릴 수 없는 유리로 된 음료수병은 꽃을 꽂아둔다. 그것들은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내게 말을 걸고 표정을 지어 보인다. 모른 척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