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시집 제안이 왔었다. 하지만 거절했다. 서울에 있는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도전할 예정이었으므로, 아직 내 갈 길은 멀었다 생각했다. 서울에 있는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나서 또 다른 곳에서 시집 제안이 왔었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저귀를 갈고,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일 뿐이었다. 시집에 정성을 쏟을 자신이 없었다. 이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나는데, 나는 이제 시에서 영영 멀어진 것만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했다.
어느 날 새벽부터 남편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점, 한 점이 모여 백 점의 왼손 그림이 되었다. 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그저 그린 것일 텐데, 뜻하지 않게 전시도 하게 됐다. 전시하다 보니 이제 그림은 그리다 말면 안 될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남편이 매일매일 만들어가는 작은 일상의 기적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쓴 시에 남편이 그림을 그린다면 더없이 좋을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내 시를 가장 많이 훔쳐 읽어 본 사람이고, 우리는 시 덕분에 만난 ‘시시’한 사이니까. 그래서 큰딸의 이름도 ‘메타포’니까. 그리고 음악을 덧붙였다. 시는 어쩌면 말로 하는 음악일 테니까.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시의 공기를 감싸준다면 좋아서 내가 폴짝폴짝 뛸 것만 같으니까.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월간 그리움>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화가의 작품에 시인이 노랫말을 붙이고, 작곡가가 멜로디를 만들면 가수가 노래를 불러 유튜브에 올린다. 지난여름에 내가 작사를 하게 됐는데 내가 쓴 가사에 노래를 만들어주신 분이 계신다. 그 일을 계기로 이번 시집의 음악을 만들어주셨다. 이렇게 해서 시와 그림, 음악이 함께하는 시그림 아트북이라는 것을 출간하게 되었다. 남편의 왼손 그림을 눈여겨보았던 출판사 사장님의 배려로 남편의 100점 왼손 그림 시화집도 동시에 출간하게 되었다. 남편이 그림을 그리게 될 줄, 내가 이런 형태로 시집을 내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 하려고, 그동안 내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다. 시를 모르면 그림을 보면 되고 그림이 마음에 들면 시를 읽어주면 좋겠다. 큐알코드로 음악을 듣다 보면 시가 그리워질 테고, 그림을 무심히 보다 보면 당신을 따스하게 껴안아줄 음악이 흘러나올 테다.
시골의 작은 빵집을 개조해서 만든 문화공간에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모여 시를 낭송하고, 그림을 그려보는 행사를 했단다. 나는 미처 가지 못했지만, 참석했던 남편이 톡으로 동영상을 전송해왔다. 동영상에는 할머니 한 분이 내 시를 낭송하다 울컥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내 시를 할머니·할아버지가 읽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전혀 해보지 못했다. 시를 읽는 젊은 사람도 좀체 찾아보기 힘드니까. 내게 시는 비밀 같아서, 시를 모를 것 같은 사람에겐 “사실, 저는 시를 쓴답니다.”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 시를 읽는 그 장면은 내게 설명할 수 없이 정말 아름답게 다가왔다. 평생 시를 읽어보지 못한 그분들에게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는 시가 그분들의 삶과 만나 작은 물결 하나를 만들어냈으니, 나는 이제 시 쓰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아주 깊고, 고요하게 드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