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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Apr 09. 2021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감각

고통의 글쓰기 시간

"다음 주는 '고통의 글쓰기'를 할 거니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도록!"

"아아아아악!"

"싫어요!"

"결석할 거예요!"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1시간에서 1시간 반 동안 글만 쓰는 '고통의 글쓰기' 시간을 가진다. 내 수업을 아무리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도 이 시간만은 반길 수가 없다. 재미있어서 다니는 글쓰기 수업인데, 진지모드로 줄창 글만 써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지루하고 끔찍하다.


보통 글쓰기를 할 때는 이런저런 팁을 준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쓸 게 없다거나, 마무리를 못하겠다거나 할 때,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하고 힌트를 준다. 또는 "아까 네가 이런 이런 말을 했잖아. 그거 거기 쓰면 되겠네."라고 해준다. 그러나 '고통의 글쓰기(이하 고글 이라고 하겠다)' 시간에는 팁을 주지 않는다. 다만 분량을 줄 뿐이다.


"노트 세 바닥 꽉 채워야 해."

"어떻게 세 바닥이나 써요~~!"

"전 한 바닥도 겨우 쓰잖아요!"

"와, 진짜 나쁘다!"

"선생님 올해부턴 착한 선생님 된다고 했잖아요!"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어오지만 협상은 없다. 미리 예고했던 대로, 스스로 개요를 짜고, 무슨 짓을 해서든지 정해진 분량을 채우도록 한다. 일단 20-30분 정도 글쓰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문단 짜기나 비문 고치는 법, 자주 틀리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알려준다. 이미 백 번 정도는 말해 준 것 같지만, 아이들은 늘 그런 소리 첨 듣는다는 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동안, 기본적인 글쓰기에 대한 질문과 관련된 예시를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답을 해주지만, 다른 질문은 못하게 한다. 다른 이의 글쓰기를 방해할 수 있는 잡담, 한숨, 칭얼거림 등도 금지다. 오로지 들리는 것은 연필 사각대는 소리와, 지우개질 소리, 머리를 쥐어뜯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 고요한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즐기는 시간이다. 우헤헤.


아이들의 웃음소리, 명랑한 표정도 좋아하지만, 진지하고 고민하는 모습 또한 사랑스럽다. 저마다 찡그린 미간 속에 어떤 생각이 숨어있을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잘 쓰고 싶어 고민하고, 누군가는 칭찬받고 싶어 고민하고, 누군가는 도통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자신의 머릿속에 대해 고민한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오롯이 내 힘으로 긴 글을 완성하는 그 순간을 향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모습이 때로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꼭 글을 길게 써야 할까? 노트 세 바닥은 A4용지에 10 point로 글을 썼을 때 1.5장이 못 된다. 원고지로 12~15매 정도다. 나는 이 정도는 긴 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의 분량이다. 짧은 글이라도 내용이 좋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짧은 글 안에 좋은 내용을 쓴다는 게 과연 쉬울까? 아니 가능이나 할까? 독후감을 쓴다면 적어도 책에 대한 소개나 감상, 평가, 인상적인 부분 등이 들어가는데 그걸 원고지 5매로 쓸 수 있을까? 책 소개하다 끝날 분량이다. 


짧은데 감동적이고 웃기고 큰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굳이 글쓰기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고수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평범한 사람의 글은 친절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자기도 이해할 수 있고, 남도 이해할 수 있게 쓰려면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최대한 상세히 풀어써야 한다. 그럼 글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글을 길게 쓰는 편인데, 일단 글을 닥치는 대로 써 놓고 나중에 퇴고할 때 쳐낸다. 그 편이 덧붙이는 것보다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번 이만큼 글을 쓰게 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고, 매주 글 한 편을 완성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학생들에게 시킬 수는 없다. 또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말하기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은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2-30분 정도 글을 쓴다. 그러다 때가 됐다 싶으면 한 번씩 '고글'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과연 아이들이 잘 따라줄까? 의외로 불만 없이(있어도 말 못 하는 거겠지만) 글을 쓴다. 중간중간 잘못 쓴 부분을 고치라고 피드백을 해주는데, 힘들 게 뻔한데도 군말 없이 수정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 같으면 "에잇 못 해 먹겠네! 그럴 거면 쌤이 쓰덩가욧!"하고 연필 던지고 나갈 것 같은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선생님 말이니 억지로 따르는 게 98%겠지만, 끝까지 해보겠다는 오기도 2% 엿보인다.


평소 글 쓰기를 정말 싫어하는 아이 J가 있다. 몇 줄 쓰지도 않고, "뭐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다. "그럼 아까 네가 말한 거 써." 하면, "생각 안 나요."라고 말한다. 한 말을 그대로 읊어주어도 쓰지 않으려 할 때가 많은 녀석이다. 당연하게 글씨도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진창, 줄 맞춰 쓰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그런 아이다 보니, '고글' 시간을 견뎌낼까 걱정이 되었다.


먼저 한 문단을 쓰게 한 뒤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게 했다. 눈으로 볼 때 보이지 않던 이상한 문장이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드러나기 마련이다. 잘 읽히지 않거나 고개가 갸웃해지는 지점이 생기면 고치도록 한다. 어떤 아이들은 한 문장 안에서 몇 번이나 멈칫 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안타깝지만 고쳐 쓰게 한다. 내 문장이 이상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바르게 고치는 과정에서 글쓰기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J가 읽을 차례가 다가왔다. 녀석도 긴장, 나도 긴장. J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숨죽여 가만히 듣고 있다가 J가 읽기를 멈췄을 때, 이렇게 말했다. 

"완벽하다. J야!"

정말 그랬다. 입에 발린 칭찬이나 격려의 말이 아니라 정말 완벽했다. 한 문단 안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빠짐없이 썼고, 문장도 자연스러웠다. 글씨는 여전히 삐뚤빼뚤 했으나 깨끗하게 쓰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무엇보다 쓰라는 대로 쓰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려 한 점이 훌륭했다. 여러 면에서 정말 완벽했다.


이후 수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무려 석 장의 노트를 빽빽하게 채운 J는 스스로 감탄한 듯 "쌤, 저 이렇게 글 많이 쓴 거 처음이에요.", "야, 나 봐라. 노트 세 바닥 다 채웠어." 하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을 했다. 누군가의 칭찬이 필요 없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경험, 그것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J야. 해보니까, 해내니까 기분 좋지?"

"저는 정말 이런 적 처음이에요."

"이번에 했으니까 다음에도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다."라는 감각보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감각을 익히기를 바란다. '맘먹으면'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 본 적이 있으니' 또 할 수 있다가 되면 좋겠다. 어렵고 귀찮은 일이라도 한 번 성취를 하면 다음에 도전하는 게 쉬워진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실력도 꽤 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실력이 늘면 재미가 생긴다. 재밌으면 또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숙련하고, 숙련된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게 된다. 거창한 체험보다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해내면서 나를 사랑하는 감각을 깨우길 바란다. 


글쓰기도 나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꽤 괜찮은 도구다. 크게 힘이 들어가지도 않고,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도 적은 편이다. 물론 잘 쓰기는 참 어렵다. 이 글을 혹시 아이들이 볼까 두려운 이유다. "뭐야! 쌤도 쓰면서!"하고 혼날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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