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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티피컬레이디 Nov 20. 2022

신체적공감(Body Empathy)과 상호의사소통 1편

우리가 몰랐던 육감, 아스퍼거 증후군 남편과 살며 느끼는 결핍

 인간에게는 흔히 오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감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고, 따로 생각하거나 의지를 통해 끌어내는 것이 아니죠. 강아지의 복슬하고 따뜻한 온기, 신선한 숲의 냄새, 푸르게 눈부신 바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 풍미가 가득한 와인 한 모금... 살아가며 우리는 매일매일 끊임 없이 오감의 자극을 받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후각과 미각을 한 달 정도 느낄 수 없었는데 그야말로 인생의 큰 낙을 상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고, 일상의 일부분이 무감각 상태가 되어 삶이 밋밋해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오감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없어지거나 결핍되면 그 상태에 도통 적응하기 어려운 감각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신경학적으로 전형적인 발달을 한 뇌를 가진 사람들, 즉 정형인들의 경우, 오감처럼 느끼는 또 하나의 감각이 있다고 합니다. 지난 다른 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던 뉴로다이버시티 관계 코칭, 연구 및 저술활동 등을 하고 있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Anne Janai는 그러한 육감이 바로 신체적 공감각(Body Empathy)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공감 능력을 타고 납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경전형인 (정형인)들의 경우 이 공감 능력은 마치 오감처럼 우리가 생각하거나 의지를 통해 끌어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 타인의 특정 감정이나 상태를 보고 그 기쁨이나 아픔 등을 마치 내 몸에서 느끼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 상대방이 되어 그 상황에서 있는 것처럼 그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딸아이가 마당에서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 것을 보면 저는 마치 제 무릎이 아픈 것처럼 느껴 온 몸이 찌르르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남편이 요리를 하다가 뜨거운 것에 손을 덴 것을 보면 저는 제 손이 덴 것마냥 온 몸의 세포가 긴장되고 심장이 빨리 뛰기도 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체적 공감'은 오감처럼 우리가 '공감을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육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Anne은 어릴 때 유치원에서 우리에게는 오감이 있다고 배우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신체적 공감각'이라는 또 하나의 감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신체적 공감각'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은 아니고, 뇌신경학적으로 전형적으로 발달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몸으로 느끼는 감각'인 '신체적 공감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마음 이론의 부재', '공감 능력 부족', '거울 뉴런의 미발달'과 모두 연결되는 부분일 것입니다. 나아가 더 많은 뇌신경학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뇌의 회로가 다르게 짜여지고 다르게 발달된 자폐인들이 오감을 신경전형인들과 다르게 느끼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자폐인들은 특정 감각을 훨씬 더 예민하게 느끼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둔하게 느끼는데 감각과 관련된 뇌의 회로나 발달이 전형적인 경우와 다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신체적 공감각이 없는 아스피인 제 남편의 경우, 제가 크게 다치는 상황에서도 제 모습을 보고 정형인들이 느끼는 것처럼 '신체적으로'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실제로 커피 플런저로 커피를 만들다가 플런저 안의 물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듯 튀어서 손과 팔 전체가 크게 데인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함께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뜨거운 커피물이 튀어서 와이프가 뜨겁고 아프다며 놀라는 모습을 보았기에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정형인이 다른 사람이 화상을 입을 것을 보고 마치 자신이 다친 것처럼 아픔을 느끼게 되는 '감각으로 느끼는 공감'은 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깜짝 놀라며 괜찮은지, 아프지 않은지 물어보는 반응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제 남편은 제 상태를 묻거나 아픔을 공감하는 단계는 거치지 않고 페이퍼타월을 가지고 와서 흘린 커피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때에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싸움이나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내가 괜찮은지 물어보고 내 아픔에 공감하며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정형인들이 기대하는 배우자의 반응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스피 남편의 입장에서는 제 아픔을 신체적 공감각으로 느끼는 것도 아니고,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쏟아진 커피이기 때문에 그것을 치워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제 남편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로 싸우지는 않지만, 섭섭한 마음과 외로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물에 데인 팔과 손목이 타는 듯 욱신거려 숨도 쉬기 어려운데 남편에게 차분하게 얼음팩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편으로 이 상황에서 남편이 감각 과부화로 멜트다운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만약 제가 뜨거운 물 때문에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왜 나에게 괜찮은지 묻지도 않고 커피가 뭐가 중요하냐면서 소리를 쳤다면 남편은 시끄러운 소리들이나 정신없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껴(감각 과부화) 제 옆에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거나 오히려 제게 화를 낼 (멜트다운 혹은 셧다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더더욱 외롭고 섭섭한 마음이 들겠죠. 이런 부분들이 정형인 배우자로서 느끼는 신체적 공감각이 없는 아스피 남편과 함께 살아가며 느끼는 결핍인 것 같습니다.


 흔히들 남자들의 경우에는 여자들에 비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정형인이라면 공감능력이 좀 떨어질지언정 신체적 공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소 무뚝뚝하고 무심해 보이는 경우라고 해도 상대방이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을 보면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스피들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스피들이 공감능력이 없거나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여기서 '차분하게'라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너무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등의 태도는 셧다운, 멜트다운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상황과 입장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인지적으로 납득이 되면 아스피들도 상대방의 고통이나 상태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즉, 신체적 공감각을 통한 공감이라기 보다는 인지적 이해를 통한 공감에 가까운 것이지요. 


 하지만 말이 쉽지, 아스피 배우자가 의도치 않게 정형인 배우자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한 상황에서 내 감정을 모두 억누르고 차분하게 내 입장에 대해서 아스피 배우자에게 설명을 하고, 상대방이 이를 인지해서 이해하고 공감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위에서는 신체적으로 상해를 입은 경우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실제로 뉴로다이버스 관계에서는 정형인 배우자가 겪는 정서적 상처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 때 아스피 배우자는 상대방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이를 '신체적 공감각'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상대방의 슬픔, 분노, 서운함, 실망감 등과 같은 '감정'에 대해 차분한 설명을 듣는다고 할지언정,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 역시도 어렵습니다. 신체적 상해로 인한 고통이야 설명하면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이해하고 인지적 공감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받은 정서적 상처에 대한 경험에 있어서는 정형인과 자폐인 사이에 큰 온도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형인 배우자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정형인 배우자의 정서적 고통이 전혀 와 닿지 않는 상황, 즉, 아스피의 입장에서는 전혀 경험해 본 적도, 이해되지도 않는 상황이 많다는 것입니다. 

 정형인들 간의 부부 싸움에서는 서로 입장이 달라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크나큰 정신적 타격을 입고 상처를 받은 것을 보게 되면(가령 배우자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경우) 그 슬픔이 느껴지고, 자연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를 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스피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이런 상호 작용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싸우다가 정형인 배우자가 울어도 아스피 배우자에게 무언가가 '느껴지거나' 감정적인 동요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이 어떤 면에서 왜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지 모르고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지나치게 솔직한 아스피들은 착한 거짓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직접적으로 적나라한 사실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또,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내용에 대해서는 대꾸도 안 하고 배우자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핸드폰만 본다거나 할 수 있겠죠. 어찌 되었건 의도치 않게 친밀한 관계에서 기대되는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실망과 상처가 될 수 있는 언행을 자주 하지만, 상대방이 그로 인해 슬퍼하거나 화가 나면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상대방의 감정 표현에서 '신체적 공감'을 하지 못해서 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다가,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떤 기분이고 왜 그렇게 느껴야 하는지 '인지적 공감'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스피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반대로 정형인 배우자가 기쁘거나 신나는 일이 있을 때 이에 대해 적절한 상호작용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신체적 공감각' 결여로 인해 상대방의 기쁜 얼굴이나 들뜬 목소리, 신이 난 몸짓 등을 보더라도 그 기쁨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스피 배우자가 정형인 배우자의 행복이나 기쁨을 바라지 않거나 무가치 하다고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느껴서 반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형인 배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호 작용이 다소 실망스럽거나 불충분하다고 있겠지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상호작용이 성인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인 결혼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한 사람의 삶에 더욱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뉴로다이버스 관계에 있는 많은 정형인들은 이와 같이 정형인의 필요와 욕구에 부합하는 적절한 상호 작용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 속에 계속적으로 노출 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약한 정도의 트라우마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초래하게 되죠. 전문가들은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이러한 부분을 '지속적인 트라우마적 관계 증후군(Ongoing Traumatic Relationship Syndrome)'이라고 일컫습니다. 


 때문에 '신체적 공감각' 결여가 뉴로다이버스 관계에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그로부터 정형인 배우자가 받을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줄이거나 인식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인식하고 영향을 덜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면 어느 순간 참을 수 없이 괴로워지는 상황이 오곤 합니다. 제 남편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제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럽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더더욱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지요.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정형인 배우자에게 많은 전문가들이 'Don't take it personally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조언을 합니다. 오늘 이야기했던 신체적 공감각에 대해 이해한다면, 뉴로다이버스 관계에서 매순간 발생하는 문제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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