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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Sep 20. 2021

나는 왜 엄마의 일기장이 되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그 사람과 싸우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분한 일이 생기면 일기를 쓴다.

대게 잠 못 이룰 정도로 나를 아프게 하는 이들은 내가 오랜 친구라 부른 이들,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들, 내가 존칭을 써야  하는 관계의 우위에 있는 이들이다. 화를 낼 수 없는 관계도 있고 섣불리 감정을 쏟아냈다가는 관계가 깨질까 두렵기도 하다.

나는 주로 참는 법을 택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는데 타인을 향한 분노는 결국 나를 향했고 나를 상하게 했다. 그렇게 오랜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알게 된 것이 바로 일기 쓰기다. 일기는 내 감정을 묻어두거나 참아내지 않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지도 않는 안전한 감정 배출법이다.


그래서 내 일기장은 학교 다닐 때 쓰던 빽빽이 같다. 어떨 때는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몇 장씩 써 내려가며 감정을 쏟아냈다. 내 일기장은 최소한의 띄어쓰기 에는 여백이 없었다. 얼마나 극심한 분노가 타올랐던지 어떤 날의 일기는 내 글씨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일기 덕분에 나는 내 감정을 안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물론 써도 써 도 흘려보내 지지 않는 감정도 있다.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엄마와 더 친밀했다. 다른 형제들이 나가서 친구들과 놀 때 친구가 없던 나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내 또래 아이들이 흔히 하던 고무줄놀이에 나는 깍두기로도 초대받지 못했다. 운동신경도 부족했고 사교성도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넋두리에 익숙했다.

엄마는 늘 나를 앉혀놓고 넋두리를 했다.  엄마의 혼잣말 같은 넋두리를  내가 듣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넋두리는 대화가 되었다. 엄마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엄마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가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엄마는 가난한 집에서 오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 시절 드물지 않았던 일로, 엄마는 유복했고 아이가 없었던 큰아버지댁의 수양딸로 들어가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에 입하나 줄이기 위한 어른들의 결단이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낯선 어른들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엄마에겐 분명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또 엄마는 평생 넉넉지 못했던 아버지의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내느라 늘 전전긍긍했다. IMF가 터지고 엄마는 반찬값이라도 벌겠다고  부업에 뛰어들어 수년간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이런 엄마의 평탄치 않은 삶의 이야기는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때문에 나는 엄마의 속상하고 사나워진 마음을 여과 없이 만났고 들었다. 내가 모르거나 뒤늦게 알게 된 사건들은 매우 드물었다. 엄마는 혼자만의 비밀을 내게 자주 꺼내놓곤 했다.  엄마와 나의 친밀감은 이런 식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그 친밀감이 따듯함이나 안정감이 아니라 엄마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공감해야 하는 길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변덕스러워진 걸까. 최근에 나는 이런 엄마의 넋두리가 버겁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게 읊어대는 분노와 욕지기들이 이제는 힘들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귀를 닫을 때가 많다.


아마 엄마는 내게 일기를 쓴 것이리라. 엄마의 속상하고 힘들고 분하고 아픈 일들은 모조리 내 마음에 새겨졌다. 그런 일들의 오랜 반복은 나와 엄마의 친밀감을 산산조각 냈다.

  또 명절이다. 이제는 친정에 가는 게 반갑지 않다. 무슨 이야기를 또 듣게 될까 불안이 앞선다. 엄마의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이입해야 될까 두렵다. 엄마는 왜 나를 일기장으로 삼았을까.

나는 왜 엄마가 나를 일기장으로 삼는 일을 허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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