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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Jan 26. 2022

하루키가 쓴 탐정소설인가?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챈들러를 알게 된 건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 모음집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보면 하루키는 직접 번역에 나설 정도로 레이먼드 챈들러를 좋아했다. 아마 숭배한다고 표현 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하루키의 독자라면, 챈들러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랄 것이다. 마치 하루키가 쓴 탐정소설 같다. 하루키는 챈들러를 ‘나의 영웅’이라고 칭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미권에서는 셜롬 홈즈만큼이나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한 영드에서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 ‘필립 말로’를 탐정의 대명사처럼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호기심은 더해졌다. 챈들러는 대공황이 휩쓴 미국의 1930년대에 주로 작품을 발표했다. 챈들러 역시 일자리를 잃었고 당시 유행하던 저렴한 소설 잡지 ‘펄프 매거진’을 읽다가 자신도 글을 써보겠다는 열망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챈들러는 실제로 ’ 펄프 매거진’에 소설을 연재해 돈벌이를 했는데, 그 완성도가 상당했기에 문학적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고, 상당히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도 있다. 챈들러의 작품은 자신의 소설을 발표한 펄프 매거진에 유래해서, 펄프 픽션이라고 불리게 된다.


챈들러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이미지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그는 손으로 문을 잡은 채 반짝이는 갈색 눈으로 담담히 실내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탄탄한 체구에 얼굴이 갸름하고 입매가 단정한 미남이었다. 갈색 상의 주머니 밖으로 하얀 손수건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왠지 긴장을 했으면서도 자못 냉정해 보였다. “ -<은 바람> 중


챈들러는 등장인물이 어떤 양복을 입고 눈동자는 어떤 색인지, 그가 무슨 색깔 자동차와 소파에 앉는지, 그가 머무는 집의 외관은 어떤 모습인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생각은 알 수 없다. 그저 독자는 담백하게 묘사되는 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상황을 유추해낼 뿐이다. 작가가 스토리보다는 스타일에 상당히 무게감을 둔 듯한 느낌이다. 총기가 흔했던 미국 사회답게 살인의 도구로 주로 총기가 등장하고, 살인 역시 한 남자와 다른 남자가 만나서 악수하듯 쉽고 빠르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하드보일드 장르라는 설명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추리소설에서 탄탄한 스토리와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반전, 치밀한 구성 같은 조건을 떠올리는 독자라면, 챈들러의 소설에는 새롭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의 소설에는 영화 <신세계>에서 볼 법한 남자들의 거친 몸싸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서로를 탐색하는 건조한 말 몇 마디, 쉽고 빠르게 일어나는 살인 들이 주를 이룬다.


아쉬운 것은, 작가가 당시 주택가의 모습이나, 등장인물들이 입은 옷 묘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미국 문화가 낯선 독자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반전이 있고 탄탄한 구성과 복선을 가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반하고 말았다. 특히 <은 바람>의  도입부는 너무나도 완벽하다.

 

"그날 밤 사막바람이 불었다. 고온 건조한 샌타애나의 전형적인 열풍이었다. 이 바람이 산 고개를 넘어 내려오면 머리카락이 곱슬곱슬 말리고 피부가 가려워지고 괜히 초조해진다. 그런 밤이면 어느 술판이든 한바탕 싸움으로 끝난다. 유순하고 가냘픈 아낙네들은 식칼의 날을 만지며 남편의 목을 노려본다.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칵테일 바에서 거나하게 맥주를 걸칠 수도 있다."


 읽는 내내 그 뜨겁고 습한 바람이 내 코 언저리에도 감도는 것 같았다. 무심하지만, 늘 약자의 어려움을 외면치 않다가 커다란 사건에 말려들고 마는 필립 말로처럼 작가는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이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려내준다.


이후에 챈들러의 작품이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영화보다는 글로 읽는 챈들러가 훨씬 좋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나는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세계문학 단편선 <레이먼드 챈들러>를읽었다. 후기에 보니, 역자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웬만한 고전 명작보다 번역이 어려웠는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비속어와 통속 어법이 많아서였다고 한다. 아마 이 책을 읽다 보면, 번역자에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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