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재활용 쓰레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배달음식은 잘 안 먹는 편이고, 생수 사 먹는 대신 보리차를 끓여 먹는다. 그러다 보니 플라스틱 재활용은 2-3주에 한 번 버린다. 그렇다고 샴푸 대신 샴푸바를 쓰고, 화장품도 리필해주는 매장을 찾아가 구입하고, 대나무 칫솔을 쓰는 그런 적극적인 유형은 아니다. 가급적이면 리필제품을 선택하고 외출할 때 텀블러에 물을 담아 다니는 정도다. 텀블러를 챙기는 것은 생수병 사용을 줄이자는 생각과 경제성 두 가지 고민이 만들어낸 습관이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갖고 있지만, 막상 일상생활에서는 쉽지 않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플라스틱 포장이 없는 제품을 사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장품, 세제들이야 장기간 사용하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채소 과일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파는 것이 많다. 고기류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들은 견고해서 발로 밟아도 잘 눌러지지 않아 부피도 크게 차지한다. 제품의 손상을 막기 위함이겠지만, 이러다 보니 식재료에서 나오는 플라스틱도 꽤 많다.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많아졌을 텐데 여전히 플라스틱 없이는 살기 어렵다.
그래도 이젠 환경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 더 고민하는 것 같다. 분리수거가 편해진 부분도 있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변화가 있었다. 페트병 라벨이 쉽게 떨어지게 바뀌었고 참치캔 뚜껑이 달라졌고, 스팸에 불필요하게 있던 노란 뚜껑이 사라졌다.
분리수거할 때마다 가장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커피 같은 음료가 들어간 알루미늄 캔이다. 이런 캔들도 캔을 감싼 라벨을 떼어낼 수 있게 만들기는 했다. 쉽게 떼라고 한쪽에 작은 점선을 그려주기도 하지만, 손만으로 하기엔 어렵다. 칼이나 가위를 사용해야 쉽게 뗄 수 있다 보니 번거로운 일이 된다.
그날도 나는 현관 분리수거함에서 캔을 꺼내 라벨을 떼어내고 있었다. 캔에 붙은 라벨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손톱을 사용해 뜯어내려고 했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라벨을 뱅글뱅글 돌리며 조금씩 뜯어내고 있었다. 한 번에 뜯어지면 좋을 텐데, 라벨이 조각조각 뜯어지며 내 인내심을 시험했다. 나는 인내심을 긁어모아 라벨을 뜯다가 순간 분노에 휩싸였다.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면 도대체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
나는 커피캔을 만든 제조사를 찾아보며 분노를 뿜어냈다.라벨을 뜯다 과몰입한 내게 옆에 있던 남편이 한 마디 건넨다.
“자식도 없는 사람이 무슨 지구 걱정이야?”
맞다. 나에겐 지구를 물려줄 아이가 없네. 순간 내가 잊고 있던 현실이 떠올랐다. 모두가 열심히 분리수거하고 플라스틱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애쓰는 이유는 우리의 자녀들,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물려줄 자식이 없는 나는 왜 플라스틱을 줄여야만 할까. 왜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야 할까. 모두가 한 약속이니까 지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서 환경을 걱정하고 지구를 걱정하며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일회용 사용에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품을 수 있을까. 외출할 때 귀찮아도 텀블러를 챙기고, 리필과 플라스틱 용기 사이에서 고민하며,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근원적인 동기부여를 어디서 받아야 할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강원도 일대에, 해외에선 하와이나 호주에서 장기간 산불이 이어졌다. 엄청난 넓이의 땅과 나무 거기 사는 모든 동식물이 화재로 생명을 잃었다. 나를 포함한 이 땅에 사는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렵다. 더워진 지구, 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환경의 변화도 부쩍 크게 와닿는다. 폭염과 한파, 잦아진 태풍으로 우리는 이미 재난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있다.
태풍 때문에 채소와 과일값이 급등할 때마다, 영화에서처럼 식량 재난에 시달리는 미래를 잠깐씩 떠올려 본다.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까지 할 필요도 없다. 이미 지금 나는 그 변화로 여러 가지 불편과 위험을 느끼고 있다. 이 지구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는 충분하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지구에서 모래알 같은 존재지만, 나 역시 지구가 맞이하는 위기의 원인 제공자다. 라벨 떼어내는 정도로 화를 내어선 안 된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이미 뿌린 대로 거두고 있다.
미세먼지는 갈수록 심해지고, 계절 변화는 널뛰기가 심하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벌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이 발견되는 세상이다. 지구는 고통받고 있다. 그냥 무심코 보아 넘길 일들이 아니다. 우리가 먹었던 채소나 과일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미래에도 마음껏 먹으며 살 수 있을까. 이러다가 사과를 매일 먹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식 없다고 대충 살 수는 없다. 지구에 모래알만큼의 해라도 끼치게 된다면 그건 무척 미안한 일이다. 아무 수고 없이 받은 지구를 이만큼 누리며 살아왔는데 함께 누릴 자식이 없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별로 아껴주지 않았던 내 몸의 일부가 어느 순간 폭주하며 고장을 일으키고 관심과 보호를 요구하듯이 갑자기 지구가 그렇게 돌변할까 두렵다. 분리수거나 플라스틱 줄이기 같은 별것 아닌 일들이 지구가 망가지는 속도를 손톱만큼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다. 자식이 없어도 지구 걱정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