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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tbus Apr 11. 2022

전쟁이 쏘아 올린 안보리 무용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한 꺼풀 들춰보기, 첫 번째 이야기

 미래의 어느 날, 2022년 상반기의 국제 이슈 중 가장 무게감 있는 사건을 고르라 한다면 단언컨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을 택할 것이다. 소련 해체 후 ‘포스트 소비에트’를 이끌어 온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활용해 자국에 유리한 외교 정책을 수립하고 국제 질서의 재편에 나서고자 했으나, 푸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예상 밖의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러시아군의 허술한 면모는 전선의 교착상태에서 잠정적 휴전협상 논의가 지속하는 이 시점에서 더욱 대조되어 보인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군사충돌이 연일 지속됨에도 UN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끔찍한 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탄생한 국제연합(United Nation)과 UN의 핵심 기관인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 예방도, 전쟁 발발 후 민간인에 대한 피해도 막지 못한 채 무기력한 상태에 놓여있다. 물론 유엔총회에서 철군 요구를 결의하였고, 국제사법재판소 ICJ는 러시아에 군사작전 중단을 명령했으나 강제력 없는 정치적 메시지만 담겨있을 뿐이다. 오히려 명실상부한 패권국 미국의 주도하에 러시아에 금융·무역 등의 영역에서 실질적인 경제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새다.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엔데믹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2022년 초, 세계는 러시아가 촉발한 전쟁의 참화로 다시금 몸살을 앓을지도 모른다. 


 과연 UN은 그 존재 이유를 세계인들에게 다시금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인가? 냉전 시절부터 UN의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아 온,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폭주를 이쯤에서 막을 수 있을까? 안보리는 탈냉전 이후 지속해온 개혁 요구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받아들일 것인가?




Ⅰ. UN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 ‘이상주의적’ 한계에 도달한 LN의 작동 불능 


  UN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에 앞서, 이 국제기관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탄생했는지 그 배경을 먼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먼지 쌓인 세계사 연표를 꺼내 1920년으로 가보자.

 동맹과 비밀 외교의 세력균형 메커니즘이 작동했던 19세기의 질서는 1차 세계대전으로 종언을 고했고, 집단 안보와 법의 지배에 의존하는 이상주의적 국제정치질서가 득세한다. 특히,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평화 지향적인 국가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정치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에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고 보았고, 집단 안보체제인 '국제연맹(LN)‘ 창설을 주창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LN은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이상주의자들의 1차 대전 전후처리에 대해 E.H.Carr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어떠한 이상도 제도화되면, 그것은 더는 이상이 아니라 이기적인 이해관계의 한 표현으로 전락해버린다.” 즉, 현실적으로 각 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질서 하에서 LN의 기능은 원활하게 작동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1930년대 전체주의 국가들의 준동을 막지 못하자 각 국은 다시 동맹 등의 현실주의적 방식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Ⅱ.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로서 UN과 안전보장이사회


 1. UN의 형성과 안보리의 구성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접근으로 실효성이 없었던 LN과 달리, UN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이들의 더욱 많은 기여를 유도하는 등, 더욱 효과적인 국제기구의 형태로 창설되었다. 물론 LN과 UN 모두 유럽에서의 강대국 간 세력균형 정책이 두 차례의 대전쟁으로 이어졌다는 반성에서 ‘집단안보체제’를 구상했다. 홉스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적으로 규제되고 제도화된 체제를 통하여 국제 질서의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UN은 창설 과정에서 LN의 실패를 교훈 삼아 현실주의적 논리가 반영된 집단 안보체제로 형성되었다. 즉, UN의 핵심 기관인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5개국을 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영국·프랑스·소련 그리고 중국으로 구성하고, 이들에게 거부권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은 두 가지 국제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첫째, 국제 정치의 현실이 반영되어 의사결정에 있어 강대국의 역할이 인정되었다. 만장일치제를 채택했던 LN의 의사결정 구조상 결함을 개선한 것이다. 둘째로, 집단 안보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각각의 주권까지고 인정하는 성격을 가진다. 

    

2. 국제 정치의 두 패러다임, 현실주의/자유주의(신자유 제도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본 안보리의 형성

 

⑴ 현실주의적 시각 : 힘의 역학관계가 반영된 수단

 국가들의 ‘Power'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서는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패권 국가 혹은 강대국의 이익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특히, 5개의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되는 안보리의 경우, 국가들의 힘의 관계가 반영되는 대표적인 조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안전보장이사회의 핵심 업무인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유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후의 안정된 안보 질서 구축과 개입의 보장을 위해 UN 및 안보리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소련을 자국과 같은 안보리에 합류시킴으로써 제도권 내에서 그를 견제하려는 의도까지 내포했다고 볼 수 있다.     


 ⑵ 자유주의적 시각 (신자유 제도주의) : 국가들의 이익이 반영된 국제 레짐 

 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신자유 제도주의 이론에 따르면, UN 및 안보리는 국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는 각국의 이익에 근거하여 만들어지나, 형성된 후 국가들의 이익에만 따르지 않고 제도적 관성에 따라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진 채 운영된다. 특히, 안전보장이사회는 Stephen D. Krasner가 말하는 하나의 '레짐'으로서 역할을 하며 국가 간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해준다. 크래스너는 레짐을 국제관계의 일정 영역에서 행위자들의 기대가 수렴하는 일련의 원칙·규범·규칙, 그리고 정책 결정의 해결절차라고 정의한다. 안보리는 안보 분야에서 국제 평화 유지라는 UN 회원국들의 기대와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재’ 또는 군사행동 등의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안보리의 이러한 결정은 회원국들에 UN 헌장 상 의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적절한 조치가 가해질 것이라는 ‘미래 예상(shadow of future)'을 제공함으로써 안보리의 구속력을 강화한다.


Ⅲ. 탈냉전 이후 제기된 안보리의 개혁 필요성


1. 현실주의적 관점 : 안보리 이사국의 대표성과 거부권 문제에서 촉발된 개혁 논의


 냉전기 안보리의 운영 방식에 있어서 많은 한계점이 노출되어 개혁의 필요성이 오늘날 제기되고 있다. 미·소간 대립으로 기능이 마비되다시피 했고, 거부권이 남용되었다는 취약점이 존재한다.

 우선 안보리의 한계에 관해 대표성을 문제 삼는 경우가 생겨났다. 탈냉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세계대전 승전국이었던 5개국 이외에 어떠한 지위의 변동이 없었다. 또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들이나 모든 회원국으로 구성된 UN 총회의 다수 견해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신생 독립국들의 대량 가입으로 인하여 안보리 상임이사국 이외의 국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 남용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냉전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확산하여 제3세계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진 시점에서 특정 국가들의 특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모순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현시점에서 강대국들의 의미와 국가 간 세력 구도의 달라진 양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신자유 제도주의적 관점 : 레짐의 역할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다.

 미·소간 대립이 끝나고 국제 분쟁의 성격 변화와 안보리 자체 능력의 과부하로 인하여 레짐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성이 커졌다. 탈냉전 이전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은 국가 간 침략과 국제 전쟁이었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협요인이지만, 탈냉전 이후 치명적인 위협요인으로서, 내전·인종·민족·종교적 갈등에서 기인하는 비대칭적 안보위협이 급부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안보리는 달라진 위협 양상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앞선 크래스너의 레짐 정의 서술에 입각해볼 때, 기본적으로 UN 창설 시점보다 상당할 정도로 행위자들이 다양해졌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자들이 기대하는 이익이 다양해지는데, 초창기 형성된 안보리 레짐은 이처럼 확장된 기대와 이익을 제대로 수렴해주지 못하는 불완전한 제도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그러한 원칙과 규칙, 규범 및 정책 결정 절차가 어떠한 당면한 협력과 관련한 문제를 더욱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레짐 내부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보리 개혁의 필요성은 특히 그 대표성과 문제 해결 능력의 강화, 그리고 행위자의 다변성을 충분히 고려한 확장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UN의 개혁은 지난 2013년 외무고시 2차 시험 국제정치학 논술시험에도 나올 정도로 무게감이 있는 현안이다. 탈냉전의 세상이 30년째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는 다시금 전쟁과 냉전의 어두운 구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세계 평화와 각 국가의 안전 보장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 UN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의 반인도적 침략행위에 맞서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기구 전체가 재편될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한 국제 레짐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는 전쟁의 양상과 이에 대한 대응을 지켜보며 다시금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


# 참고문헌 
- 임갑수 윤덕호,『유엔 안보리 제재의 국제정치학』
- 조한승(2013), "유엔 개혁의 주요 쟁점과 도전과제", 평화학연구, 14:4, 53-87
- 금상문(1998), "해원 김용선 교수 정년퇴임 기념호 : 탈냉전시대 국제연합의 한계와 개조 - 부트로스 갈리와 한국정부의 시각을 중심으로",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8(0), 23-43.

@Brot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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