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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Apr 30. 2024

행간을 못 읽은 남자

살다 보면, 두 눈 멀쩡히 뜨고서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군을 떠나고는 연락이 없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반갑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난 그때 전기 분야로 방향을 정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전역 후 사업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알려주면서 한 번 방문해 주기를 간청했다. 오랜만에 만나 자기 사무실 구경도 하고 주변에서 식사도 하면서 옛날이야기나 하자면서. 난 옛정을 떠올리며, 전화를 준 그가 고맙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냥 순수한 마음이 되어, 그가 어렵게 사업 시작한 걸 응원해주고 정도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찾아갔다.


옛날 얘기 하면서 술도 거나하게 먹었다. 중간에 한 여자가 합석을 했고 그는 여자 친구라며 소개했다. 분명히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여자 친구라니 황당했다. 본인이 털어놓지 않는데,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다 집에 왔다. 적잖게 먹은 술 때문에 머리는 아팠지만, 그가 군에 있을 때 나를 중심으로 생겼던 친교모임의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해 보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의미와 목적이 애매하기는 했지만, 소식 전하고 정을 나누는 것쯤이야 어떻겠나 생각에 동의를 해준 것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다음날 그가 단체 카톡방을 개설했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가 개략적인 이유를 언급했지만, 갑자기 초청된 사람들은 어정쩡, 떨떠름한 분위기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인사말 겸, 카톡 방 개설 필요성의 의미를 더했다.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는 쉬 가시지 않았다. 그 이후 모임 관련 의견을 묻는 투표가 진행되었으나,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러다 그가 딸 결혼 청첩장을 올려놓아 몇몇 사람이 축하한다는 댓글이 달리다가 뜸해졌다. 얼마 전에 열어보니, 그 이후 진행된 것은 없고 나가기 행렬만 이어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에게 톡톡히 쓰임을 당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는 이혼을 했고 현재의 입지를 이용해서 재혼을 시도 중이었다. 나에게 소개했던 여자가 재혼 대상이었던 것이다. 카톡방에 초청된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가정사를 알고 있고, 썩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모임에서의 나의 위치를 이용하기로 했던 것 같다. 그는 업체 대표로서의 달라진 위상도 알리고, 이혼으로 떨어진 이미지도 쇄신하고, 새로운 여자관계의 정당성을 부여받으면서 딸 결혼 청첩장까지 뿌리는 성취를 이루어 냈다. 반면에 나는 위치로 인해 부여되어 있던 권위와 신뢰마저 실추되는 계기가 되어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행간은 '쓰거나 인쇄한 글의 줄과 줄 사이. 또는 행과 행 사이'의 의미가 있고, 또한 '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아니하나 그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언급되는 행간은 모두 후자의 의미이다. '행간을 읽는다.'라는 것은 글이나 말에서 숨은 뜻을 알아낸다는 것이고, '행간이 없다.'라는 것은 숨은 뜻이 없이 솔직하다는 의미이다.


나는  행간이 없는 사람되어, 행간을 읽지 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솔직한 바보가 되어 그의 말에서 숨은 뜻을 읽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본래 행간이라는 말은 평소에 잘 쓰지 않았던 터라 생소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친해지기 시작했고, 행간의 의미 중 전자에 언급했던 것이 먼저다. 줄과 줄 사이의 행간을 달리 한다는 것은 글의 맥락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독서를 잘하려면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는 말에서 행간의 다른 의미에 접근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려면, 글에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나, 저자가 실제로 나타내려는 숨은 뜻을 읽어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글뿐 아니라 말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람을 이해하는데, 행간을 잘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까지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글과 말의 행간을 짚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글과 말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문맥 하나하나를 잘 파악하면서 읽어야 행간의 의미를 짚어낼 수 있듯이,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행간을 식별해낼 수 있다. 


나는 이런 명제 때문에 사람 관계에 있어 행간을 알아내는 데 집착하지는 않겠다. 내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매번 행간을 읽어내려면 여간 용의주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할 자신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비록 이번에 행간이 없는 사람되어, 행간을 읽지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겪었다 해서 행간이 있는 사람으로 급작스레 변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만약 행간이 있는 사람이 된다면, 솔직한 사람에서 사리분별이 분명한 영악스러운 사람으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 정나미 떨어지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씁쓸함을 떨칠 수 없으니 이걸 어찌할꼬?

행간이 없는 사람이면서도, 행간은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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