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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Nov 05. 2024

마음과 시간에 대한 단상

나의 일상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전기 무제한 선임 자격에 필요한 실무경력을 다 채웠기 때문에, 하루 걸러 24시간 근무하던 회사를 퇴사한 것이다. 그야말로 찐 백수가 되었다. 퇴사하기 전, 백수가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계속 복잡했다. 나름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 배분한 계획을 수립해 놓았었지만, 한 달이 지나가며 느끼게 되는 큰 감정은 허탈함이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한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물론 그가 자신의 주먹을 믿고 상대 선수들을 폄하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나의 그럴싸한 계획도 여지없이 쳐 맞고 말았다.


나의 계획 중 굵직한 일정을 진행하는 것부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설정한 우선순위의 첫 번째는, 홀로 있는 아버지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예상했던 방향으로의 진행이 어려워졌다. 몇 번 아버지 있는 곳을 오가며 계획대로 추진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마음먹은 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이것은 우선순위 다음 순번인, 전문성을 높이는 것과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도 불가피하게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영향을 주었다. 그냥 계획은 계획일 뿐인 게 되어버렸다.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보내버린 시간을 한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보살피겠다는 계획을 하기 이전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세밀한 조율이 있어야 했다. 아버지와 자주 대화하면서 생각을 들어보고, 필요하다면 설득을 포함한 노력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보살펴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은 충만했지만, 시간을 두고 숙고하는 지혜가 부족했다. 마음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내가 말하려는 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이다.


타인에 대한 마음은 내가 주인이고, 이것은 살 수도 팔 수도 없고 오직 줄 수만 있다. 아버지를 보살펴 주겠다는 생각도 나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주는 것이다.  내 마음을 준다는 일방적 생각으로 아버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많이 조급했고 생각이 많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그러고 보니 마음과 시간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사람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알차게 채워나가기 위한 계획도 어그러졌다. 퇴사하기 전, 염두 구상했던 시간 관리 계획은 허술함 없이 똑 부러졌었다. 일 할 때 맞춰둔 다섯 시 반의 알람 소리를 그대로 듣고 일어나, 이십 삼층 아파트 계단을 두 번 걸어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루의 일정을 리스트화해서 쓸데없는 시간이 낭비되는 일이 없게 하기로 다짐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아내와 둘레길이나 야산을 자주 걷기로 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느슨해져 가는 마음, 날로 너그러워지는 시간 개념은 합리화의 구실을 찾기 바쁘게 만들었다. 마음과 시간은 내 것이지만 매 순간 일회용이라서 의식하고 부여잡지 않으면, 너무 쉽게 흩어져 버려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됨을 느꼈다. 


어디선가 보았던 '누구나 같은 시간을 바장이며 살지만, 시간의 촉감을 다르게 느끼며 산다.'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꼭 나의 경우를 예측하고 만들어 놓은 문장 같다. 부질없이 마음만 급해서 오락가락 하지만,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마음 만 앞선다고 시간이 알차게 채워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살아보니 시간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았는데도, 살다 보니 내 것인 양 함부로 쓰곤 한다.


순식간에 지나버린 한 달, 이제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은 마음의 짐이 되고 있다. 이런 처참한 모습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대한 시각 개념이 흐트러졌다. 이 개념이 명확하게 살아 있어야, 그 안에 채워지는 시간도 온전한 모습이 된다. 그러지 못하다 보니 계획에 맞는 시간 운용이 되지 않고, 시간 여유에 맞는 계획 붙여 넣기가 돼버리고 만다. 시작은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가 되었다가 어느새 일곱 시도 버겁고, 끝은 부질없는 시간 뒤쪽으로 한없이 밀려나고 있다. 사람들은 의미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고, 같은 시간이라도 길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니 기억에 남는 사건 없이 지루하게 보낸 시간은 훨씬 짧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실효성 있는 계획이 되려면, 간절한 마음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간절해도 절대 조급해지지 않는 마음과 충분하지만 온전히 생각에 쏟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마음과 시간은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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