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인연은 삼십칠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해의 최전방 섬들을 오가며 연안경비와 대침투작전을 수행하던 고속정에 같이 근무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부장, 그는 기관장이라는 직책으로 근무하였고, 모든 것이 열악했던 근무환경에서 동고동락했었다. 공대 출신이었던 그는, 공학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장비 관리로 장비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모든 지휘관들은 임무수행 중에 장비 고장으로 정해진 기간을 준수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했는데, 그는 장비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만큼 지휘관인 정장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배의 살림살이 전반을 맡고 있던 나에게 그는, 많은 도움을 받으며 의지했던 전우이자 친구였다.
고속정 근무를 마치고 다른 근무지로 떠나면서 헤어진 우리는, 십 년 후 잠수함 부대에서 다시 만났다. 비록 같은 잠수함에서 근무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만나서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지냈다. 병과가 다르다 보니 계급이 올라갈수록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급기야 우리의 인연은 옛 추억으로만 남아있게 되었었다. 이후 군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었고, 이제는 모두 전역을 하고 인생 2막의 길을 개척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가 전화를 해와서 이루어진 만남은, 그동안 곰삭았던 정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더구나 인생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같은 입장에서 공감대는 더욱 커졌다. 다음에는 부부 같이 만나는 기회를 가져 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지만, 또 많은 시간을 뒤로하고 한 움큼의 그리움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가 먼저 연락을 했다. 날짜를 지정해서 부부 모임이 가능한지를 물어왔다. 마침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때라 가능하다고 답했다. 만나기로 한 날 오전에 시간과 장소를 상기시키는 문자가 다시 왔었는데, 오후에 전화를 해서 장모님이 위독해 오늘 만남을 일단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빨리 가서 잘 보살펴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날,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짜를 몇 개 주면서 부부 모임 가능한 날을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장모님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왜 부고를 띄우지 않았냐는 나의 물음에 장모님의 유언이었다고 했다. 자세한 것은 만나서 물어보기로 하고 날짜를 지정해서 알려주고 부부 만남을 확정했다.
등촌역 부근 고깃집에서 두 부부가 만났었다. 남자들이야 친구의 정이 있었지만, 부인들끼리는 이런 만남이 처음이었다. 약간은 서먹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친한 친구들 같은 분위기로 금방 전환되었다. 분위기를 봐서 미리 준비해 간 부의금 봉투를 내밀었는데, 장모님의 유언이었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절대로 받지 않았다. 워낙 말투나 표정이 완강해서 머쓱하게 도로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장모님과 친했던 교인 몇 분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친구 부인의 표정은 결연하면서도 엄숙해서 더는 토를 달 수 없었다. 한동안 멍하니 그들 부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지인들의 경조사에 수많은 축의금과 부의금을 내고 지냈을 텐데, 장모님의 유언을 내세워 일절 부고를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은연중에 주면 돌려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과감하게 탈피했다는 것에, 나는 경외감 마저 느껴졌다.
그들 부부와의 대화는, 자리를 한 번 옮기고도 길게 이어졌다. 그는 나보다 더 전역시기가 빨랐고, 더 이른 시기에 인생 2막 전선에 뛰어들었다. 전역할 시기에 근무한 방위산업 특기를 살려 한동안은 관련 업체를 전전했었고, 마지막 근무지에서는 인도네시아 출장을 육십 번 이상을 오가는 강행군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소방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벌써 두 번째 근무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겨우 전기 분야 초보 티를 벗은 것에 비하면, 그는 대화 내내 소방 분야에 노숙한 티를 느낄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머물러있지 않고, 더 큰 걸음을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방 분야 최고 자격증인 소방시설관리사의 필기시험은 이미 합격했고, 실기시험을 보고 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합격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겸손의 말속에서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 것만큼 귀한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친밀한 관계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려면 서로에게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대게 나와의 만남에 이르는 사람들은 두 부류이다. 그것은 시간을 내서 오는 사람과 시간이 나서 오는 사람이다. 나를 찾아준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 고마운 사람이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는 사람에게 더 정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고달프고 힘든 위관장교 시절 같이 근무하면서 쌓였던 정이, 결국 관계를 이어주었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 정이 많이 남아있어 가능했다. 나의 수동적 마음 만으로는 어려웠는데, 그 친구의 더 절절한 마음이 만남을 만들어냈다. 기꺼이 시간을 내서 만남을 청해준 것, 한 마디를 천금같이 여기고 행동한 친구에게서 또 한수 배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것, 정말 맞는 말이다.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살아가지만 다른 방식도 있다는 것을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된다. 내 생각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탈피하게 해 준다. 관행을 과감히 탈피하고 고인의 뜻을 받드는 무거운 심지, 안주하지 않고 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분명 만남이 있었기에 얻어지는 배울 거리이다. 다음 모임은 온전히 내가 주도해서 계획할 것이고, 더 깊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