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서랍 - ③
"엄마가 집으로 오래요."
하원하는 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아이는 평소에 말이 없는 편이었다. 가끔 축구화를 놓고 오거나, 축구양말을 빼먹고 안 신고 오는 아이였다. 가방을 놓고 다니는 가 하면, 한창 수업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른 한 곳에 가서 딴짓을 하고 있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아이는 다른 친구를 괴롭히거나, 심한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친구들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활동에 빠져있을 때가 많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한쪽에 가만히 앉아 구경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들춰 업고 뛰거나 손목을 잡고서 함께 하기도 했다. 아이는 그 순간을 엄청 좋아했다. 아이는 그저 손이 더 많이 가는 애였다.
오후 5시에 시작한 수업은 1시간을 꽉 채우고 6시에 마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온다. 어떤 부모님들은 미리 와서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 아이는 학원차를 타고 집이 아닌 어린이집으로 하원했다. 여러 이유를 추측해 본다. 집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걸 좋아할 수도.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어떤 선생님을 좋아한다거나. 아님.. 아이가 내게 건넨 말을 듣고는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아이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가는 걸 좋아했다. 아이가 건넨 말이라, 몇 번이고 다시 되물었다. 자칫 아이와 엄마의 동선이 달라지거나 하면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에. 엄마는 바쁜 저녁이었는지 전화를 받지 못했다.
"욱아! 오늘 어린이집이 아니라 집으로 하원하는 거 맞아요? 늘 어린이집으로 하원했는데."
"엄마가 그랬어요!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아, 그랬군요! 욱이 집이 어디드라.."
분주한 아침이었을까. 엄마는 아이의 아침을 차리고, 등원준비를 하던 중에 아이에게 말했겠지. 오늘은 집으로 오라고. 아이는 다른 어떤 말보다 그 말을 꼭 기억해두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내게 명확하게 말했다. 평소에 히죽히죽 웃고만 있던 아이가.
아이와 나만 남은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욱아. 축구하는 거 좋아요?"
"좋아요."
"그렇구나."
아이는 축구가 좋다고 했다. 나는 아이 대답에 조금 놀랐다. 아이는 훈련을 하다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어도 좋았나 보다. 다른 친구들이 경기에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닐 때 한쪽에 앉아 히죽히죽 웃고 있어도 그마저도 좋았나 보다. 엄마가 보내서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었다. 조금 느리지만 그 클래스에 속해 있는 게 좋았고, 딴짓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질 때가 있었지만 자기 손을 잡고 뛰어주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좋았나 보다. 축구에 대한 아이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수업 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분명해졌다. 조금 더 기다려주고, 한번 더 손목을 잡아끌어주고, 때론 업고 뛰어다녀 주기로. 엄마와 둘이 사는 집에서 그런 경험이 잘 없을 테니.
아이 집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아이가 외쳤다.
"어! 이모다!"
"욱이 이모예요? 이모랑 같이 갈래요?"
이모랑 같이 살고 있었나 보다. 아이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아이를 이모에 맡겼다. 이모는 엄마에게 전해준다고 했다. 출발하려던 찰나, 아이가 급히 다시 왔다.
"내 선풍기, 선풍기"
아이는 손에 쥐고 다니던 선풍기를 차에 놓고 내렸다가 용케도 다시 생각했다. 괜히 기특했다. 그날 아이의 저녁은 어땠을까. 오래간만에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다음번 '엄마가 집으로 오라고 했던 날'에는 되묻지 않고, 즐겁게 하원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