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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승리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유소년축구클럽 스토리-①

by Tov

나는 유소년 축구 클럽에서 일한다. 선출(선수출신)은 아니지만, 축구를 좋아했었고, 특별히 유소년 아이들과의 소통이 재미있어 무난히 일하고 있다. 내가 사는 포항은 축구 특화도시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곳답게 유소년 축구 클럽도 여럿 있다. 부모님은 각자 다른 이유로 아이를 클럽에 보내는데,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 집의 아빠가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에게도 축구재미를 느끼게 해 주려는 것이다. 이런 아이는 어려서부터 공을 가지고 놀아 공과 친숙하고, 주말이면 아빠를 따라 경기를 보러 간다. 집에 사인볼이나 포항스틸러스(지역 연고지 축구팀) 유니폼이나 세계적 클럽의 유니폼 한 벌 쯤은 가지고 있다. 유니폼에는 자기 이름 대신 유명한 축구선수 이름이 등뒤에 새겨져 있다. son(손흥민)이 많이 보인다. (나 때는 단연 Ji Sung Park이었다.) 두 번째는 남자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풀만한 곳을 찾다가 축구를 선택하는 부류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마음껏 땀 흘리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으로 아이도 엄마도 만족해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이에게 남다른 재능이 보여 클럽을 찾는 경우다. ‘얘는 꼭 축구시켜봐!’라는 주변의 권유가 한몫한다. 이 아이는 지기를 싫어하고, 저돌적이며 축구가 삶의 전부다. 클럽에서의 훈련 경기 중 자기가 몇 골을 넣었는지, 실수를 얼마나 줄였는지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결정되곤 한다. ‘각기 다른 이유로 모인 이 아이들에게 나는 무얼 남기려 하는가’ 이곳 클럽의 핵심가치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이기는 법이 아니라 승리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경기장 안에서 이기고 지는 승패 경험을 넘어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싶다. 팀원이 실수해서 우리 팀이 실점했지만 그럼에도 격려해 줄 수 있는 승리,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기보다 경기규칙을 준수하고 페어플레이를 해보려는 승리, 코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지만 그 권위 아래 순종하고 승복하는 승리, 몸싸움이 거칠어져 상대와 다툼까지 났지만 먼저 손 내밀어 사과를 할 수 있는 승리, 넘어져 있는 상대를 일으켜 세워주는 승리, 오늘은 졌지만 다음 경기를 기대하는 승리, 남보다 못한 내 모습에 위축되기보다 내가 오늘 해야 할 훈련의 양을 소화하고 어제보다 나아지는 내 모습을 긍정할 수 있는 승리가 그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작은 경기장을 넘어 일상이라는 커다란 경기장에서 맞이할 숱한 상황들에 승리를 선택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승리의 승자는 이길 승(勝) 자이다. 朕(나 짐) 자와 力(힘 력)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나 짐자는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여서, 물살을 힘차게 저어 건너가는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한자를 파자해놓고 보니, 승리는 ‘결과값’이 아니라 ‘과정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살을 저어 목적지에 도달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젓는 과정, 그 행위, 물살이 내 앞을 가로막더라도 그걸 헤쳐서 어떻게든 나아가보려는 의지, 힘이 부쳐 잠시 노를 젓지 못하더라도 노를 잡고 있는 손은 끝까지 움켜쥐어보는 행동 그 모든 게 승리다. 목표한 지점에 가는 동안 아로새겨진 경험의 흔적은 진하게 남아 다음번 물살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나는 클럽에 처음 등록한 아이의 부모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오늘 저와 수업하는 첫 시간인데, 낯선 장소, 낯선 친구들, 낯선 환경에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수업을 끝낸 부분에 대해서 듬뿍 칭찬해 주세요.”

첫 수업에서 그 아이가 몇 골을 넣었는지, 그 아이가 속한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수업에 참여했던 과정, 낯선 마음을 이겨내고 코치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려는 마음, 처음 만난 친구들과 부딪혀가며 경기에 참여했던 순간들 모두 승리였기 때문이다. 첫 시간을 함께한 부모님에게 그날 아이가 무얼 이겨냈는지 짚어주고 나면 아이를 향한 온도가 변하는 걸 느낀다.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까 꼭 칭찬해 줘야겠어요.”

아이들은 경기결과와 상관없이 그날 수업에서 잘했던 것 한 가지는 꼭 있다. 나는 수업을 마칠 때즘이면 루틴처럼 하는 게 있는데 바로 ‘피드백타임’이다. 클래스가 끝나기 약 5분 전 뜨거웠던 경기를 마치고 중간선에 다 같이 둘러앉는다. 아이들은 헐떡이던 숨을 고르고 내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미 어떤 아이는 내가 무얼 하려는지 알기에 내 무릎을 먼저 차지하려고도 한다.

“선생님. 오늘은 저 어떤 거 잘했어요?”

“그래! 자, 선생님이 한 명씩 오늘 잘했던 부분 칭찬해 줄게요! 오늘 우리 친구는 공을 가지고 드리블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도는 동작이 너무 좋았어요. 다음 우리 친구는 수업 중간에 그만하고 싶었지만 선생님 이야기 듣고 끝까지 수업에 참여한 모습 멋졌어요. 다음 우리 친구는 태클하면 안 된 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한 모습 선생님이 봤어요. 다음 우리 친구는 같은 팀 친구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패스를 해주는 모습이 멋졌어요. 모두 잘했어요.”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집중도가 가장 높다. 오늘은 어떤 칭찬을 듣게 될까 궁금해서 그런가 보다. ‘피드백 타임’은 경기 결과로 승자와 패자는 이미 결정이 나버렸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이겼다는 기쁨, 졌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다른 걸 가지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 그날 수업에서 아이들 각자 힘차게 노를 저어봤던 한 가지는 있으니까. 성취감이 아이를 살게 하니까. 뿌듯함이 아이의 하루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줄테니까.


“아! 골 먹혔다. 아..”

골키퍼 역할을 하던 아이의 표정이 울상이다. 자기가 잘 막지 못해 자기팀 실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괜찮아. 괜찮아. 다시 해보자!”

같은 팀 다른 아이가 격려한다. 그 아이는 나름의 승부욕이 있어서 이기고 싶어 하는데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걸 선택한다. 그날의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같은 팀 친구를 격려하는 모습, 그 과정값을 향해 노를 저었던 아이의 모습이 진하게 남는다. 네모난 경기장 안에서 땀흘렸던 아이들 마음에도 가득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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