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축구클럽스토리-③
클럽에서 코치의 역할은 무엇일까? 단연, 축구를 잘 가르치는 일이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이 수업에 무던히 따라오도록 이끈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아이들과의 원만한 소통은 코칭에 필수적이다. 우리클럽은 코치들이 차량기사의 역할도 한다. 아이들과 스스럼없는 대화가 오가는 차 안이 소통의 장이 되곤 한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한데 태워 약속된 장소에 하차시키고, 동시에 다음 클래스를 기다리는 아이를 차에 태운다. 그날의 훈련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오늘은 어떤 수업을 받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차 안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떤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그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 바쁘다. 새로 산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선생님하고 끝말잇기를 해서 어떻게든 이겨보려 애쓰는 아이도 있다. 때로는 차 안에서 아이들이 무심하게 뱉는 말을 통해서 아이의 속마음이 느껴진다.
“엄마가 집으로 오래요.”
학원 차를 타고 하원하는 길, 아이가 내게 말한다. 아이는 평소에 말이 없는 편이다. 가끔 축구화를 놓고 오거나, 축구양말을 빼먹고 안 신고 오는 아이다. 가방을 놓고 다니는 가 하면, 한창 수업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른 한 곳에 가서 딴짓을 하고 있다. 아이는 다른 친구를 괴롭히거나, 심한 말썽을 부리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친구들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활동에 빠져있을 때가 많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한쪽에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한다. 나는 그런 아이를 들춰 업고 뛰거나 손목을 잡고서 함께한다. 아이는 그 순간을 엄청 좋아한다. 아이는 그저 손이 더 많이 가는 친구다. 아이는 정말 축구가 좋은걸까. 오후 5시에 시작한 수업은 1시간을 꽉 채우고 6시에 마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온다. 어떤 부모님은 미리 와서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하원하는 아이들 틈에 그 아이는 늘 집이 아닌 어린이집으로 하원한다. 오늘만큼은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말이 그리도 좋게 들렸을까. 나는 아이가 건넨 말이라, 몇 번이고 다시 되묻는다. 자칫 아이와 엄마의 하원 동선이 달라지면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엄마는 바쁜 저녁인지 전화를 받지 못한다.
"욱아! 오늘 어린이집이 아니라 집으로 하원하는 거 맞아요? 늘 어린이집으로 하원했는데."
"엄마가 그랬어요!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아, 그랬군요! 욱이 집이 어디드라..“
아이가 집으로 오라는 말을 들었을 아침 상황을 상상한다. 다소 분주한 아침, 아이가 먹을 아침상을 차리고, 어린이집 가방을 싸주던 와중에 아이에게 말했겠지. 오늘은 집으로 오라고. 아이는 다른 어떤 말보다 그 말을 꼭 기억해두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내게 명확하게 말했다. 평소에 히죽히죽 웃고만 있던 그 아이가. 시끌벅적한 차 안에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내리고 어느새 아이와 나만 남아있다.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욱아. 축구하는 거 좋아요?"
"좋아요."
"그렇구나.“
아이는 축구가 좋다고 답한다. 나는 아이 대답에 놀란다. 짧은 말에 더 진심이 느껴진다. 아이는 훈련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고, 가만히 구경만 하는데 그마저도 좋다니. 다른 친구들이 경기에 이기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닐 때 한쪽에 앉아 히죽히죽 웃고만 있어도 그것만으로 좋다니. 아이는 엄마가 학원에 보내서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었다. 축구 클래스에 속해 있는 게 좋고, 가끔 나만의 세계에 빠질 때가 있지만 자기 손을 잡고 뛰어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좋았나 보다. 축구에 대한 아이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수업 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분명해진다. 조금 더 기다려주고, 한번 더 손목을 잡아끌어주기로. 때론 업고 뛰어다녀 주기로. 아빠 없이 사는 집에서는 그런 경험이 잘 없을 테니 말이다.
아이 집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아이가 외쳤다.
"어! 이모다!"
"욱이 이모예요? 이모랑 같이 갈래요?“
(끄덕끄덕)
이모랑 같이 살고 있나보다. 아이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아이를 이모에게 맡긴다. 우연히 만난 이모 덕분에 엄마가 집으로 오라고 했다는 아이말을 지켜줄 수 있었다. 출발하려던 찰나, 아이가 급히 다시 온다.
"내 선풍기, 선풍기"
아이는 손에 쥐고 다니던 선풍기를 차에 놓고 내렸다 용케도 다시 생각했다. 괜히 기특했다. 그날 아이의 저녁은 어땠을까. 오래간만에 다 같이 둘러앉아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밥을 먹었을까. 다음번 '엄마가 집으로 오라고 했던 날'에는 더 되묻지 않고, 즐겁게 하원해 주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가 클럽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아이의 코치가 된다.
우리클럽은 티칭(teaching)이 아닌, 코칭(coaching)에 집중한다. 코칭(coaching)의 어원은 마차를 뜻하는 코치(coach)라는 단어에서 왔다. 승객을 태운 마차는 원하는 목적지에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도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다.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마부와 말의 호흡, 말의 역량, 시시때때로 마차를 조절하는 힘 등이 관건이다. 클럽에 아이가 맡겨진 시간 동안 나는 아이들의 코치이다. 축구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그 본질적인 임무와 더불어 아이와 함께 호흡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때로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사람, 손을 잡아 끌어주고 수업을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