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카레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카레에 대한 시시콜콜 이야기

by 황훈주


삶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한국인은 모르는 한식’이라고 한번 검색해 보자. 고추장 버터, 햄 말이 삶은 계란 나물 등 알 수 없는 것들이 한식이라며 외국인들이 즐기는 기이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탈리아인들이 파인애플 피자를 보고 절규하는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방을 떠나는 순간 음식은 내 것이 아니다. 외국인이 뜨거운 돌솥밥에 비빔밥을 먹을 걸 기대했지만 고추장 버터가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이쯤 되니 한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고추장 버터는 한식이라 할 수 있을까?


카레를 카레라 부를 없는

음식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김치가 우리나라 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고민에 조금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카레다. 카레 본국인 인도에는 카레가 없단 사실! 인도인에게 카레를 달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에게 국밥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즐기는 카레 대부분은 일본식이다. 그리고 이 일본식 카레는 메이지 유신 시대, 영국 해군들이 먹던 카레가 그 원형이다. 심지어 카레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상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왜 우린 카레가 인도 음식이라 생각하는 걸까?

『카레라이스의 모험』이란 책에선 인도 카레의 정의를 찾기 위해 인도로 떠나 인도인들에게 카레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 놀랍게도 인도인들도 그 정의를 다양하게 내리며 하나로 모으기 어려웠는데, 그중 눈길을 끄는 정의도 있었다.


“마살라, 즉 향신료를 조합한 사용한 요리는 전부 카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카레라이스의 모험』 P54.


향신료를 많이 넣어 음식을 만드는 건 더운 나라의 특징이다. 위 정의에 따르면 더운 나라 음식 대부분은 카레가 부를만하다. 그럼에도 인도가 카레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더운 나라에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진화생물학자 폴 셔먼 교수의 논문 ≪Antimicrobial functions of spices: why some like it hot≫에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더운 나라에선 살기 위해 향신료를 넣어 먹었다.”

이 논문은 향신료가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더운 기후에 있는 나라일수록 음식에 향신료를 많이 쓰는 것은 음식의 부패를 막기 위함이었다. 음식은 기후에 영향을 받으며 그 결과 음식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꼭 인도가 아니더라도 동남아 지방에서도 음식엔 다양한 향신료를 쓴다. 그럼에도 카레의 시작을 인도로 보는 이유는 처음 카레가 세계로 뻗어나간 그 시작점에 인도가 있었고, 세계에 카레를 소개한 나라가 영향력이 막대했던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인도 뿐 아니라더운 기후 지방에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jpeg 인도뿐 아니라 더운 기후 지방에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카레는

카레라는 이름은 상인들의 구전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1500년대, 포르투갈 상인들은 카리(करी)라는 단어를 카릴이라고 번역한다. 그럼 이 ‘카리’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 이에 대해선 나라마다 말하는 것이 다르다. 흔히 소스, 채소라고 하지만 고기, 향신료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종합하면 야채와 고기가 들어있는 향신료 소스 정도였지 않을까 싶다. 그때 그들이 주목했던 카레의 원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몇 가지 문서에서 인도에서 본 카레에 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생선은 대체로 수프로 끓여 쌀밥에 부어 먹는다. 이 수프를 카릴(carriel)이라고 한다. 약간 산미가 있어 익은 포도 같은 것을 섞은 듯한 맛이지만, 꽤 맛있다.” 『동방안내기』 48장. 인도의 어류 여러 해양 동물에 대해서 1596년

이 ‘꽤 맛있는’ 스튜는 영국을 통해 세계에 널리 퍼진다. 유럽에서 동방은 신비한 나라였다. 19세기 중반엔 일본풍이 유행했고, 20세기엔 이집트풍이 유행했지만 어쩌면 18세기엔 인도풍이 유럽, 특히 영국을 강타했는지도 모른다. 1747년, 영국에서 펴낸 쉽고 간단한 요리법은 영국 최초 카레 요리법이 적힌 책이다. 가정용 요리책에서 카레 만들기 레시피가 추가될 만큼 당시 영국에서 카레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상류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퍼졌다. 희귀한 향신료를 듬뿍 넣어 만든 스튜는 자신의 재력을 뽐내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도 카레가 영국을 중심으로 퍼진 건 동인도회사 때문이다. 영국에 카레가 소개된 시기는 본격적으로 인도를 식민지화하려고 인도에 침투한 무렵과 일치한다.

인도에서 카레란한식 백반과 같다. 그날그날 백반에 곁들이는 카레가 다르다.jpeg 인도에서 카레란한식 백반과 같다. 그날그날 백반에 곁들이는 카레가 다르다


인도 카레와 영국 카레. 그리고 절구 문화

인도에서 카레를 접했던 영국인들이 다시 영국에 돌아갔을 때 카레를 그리워해 그들의 방식으로 카레를 요리한 것이 영국식 카레의 시작이다. 인도 카레와 가장 큰 차이점은 소스를 만드는 주 베이스다. 인도의 카레는 병아리 콩가루, 우유를 응고시킨 ‘커드’, 요구르트를 뜻하는 ‘다히’가 소스 베이스가 된다. 하지만 영국 카레는 루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밀가루와 버터를 볶아 만드는 루는 유럽식 스튜를 만들 때 쓰는 기본 베이스다. 음식이 세계로 퍼질 때 언제나 주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들로 쉽게 재료는 대체되기 마련인 것이다.

이 카레는 영국 해군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다. 당시 긴 항해를 했던 영국 해군은 스튜의 오랜 냄새를 잡기 위해 향신료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카레는 일본 해군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바로 각기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카레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해군이 주둔했던 요코스카, 쿠레 군사항은 지금도 카레가 유명하다. 그리고 이 일본 카레가 물 건너 한국에 도달한다. 여기까지가 카레의 역사다.

대전에서 자주 보이는 수프 카레.jpeg 대전에서 자주 보이는 수프 카레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럼에도 카레는 인도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카레라이스의 모험』의 저자는 인도에서 카레 정의를 명확히 듣진 못했지만 그들에게 카레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인도에선 아직도 시장에서 신선한 향신료를 팔고, 가정에선 향신료를 직접 절구에 빻아 기름에 볶는다. 그들에게 향신료는 단순히 한 음식 그 이상으로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마치 우리에게 김장이 단순히 김치를 만드는 과정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한 음식이 한 나라에서 특수성을 가진다 할 때, 단순히 독특한 조리법을 넘어, 그 음식이 어떤 의미와 삶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세계화 속 한식이 계속 한식이기 위해선 우리 삶에서 한식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계량화는 그다음 문제다. 카레 역사를 보아서 알듯, 정확한 계량은 식당에서나 필요한 일이다. 김치찌개, 된장찌개는 시대를 넘어 엄마의 뭉클한 추억을 전한다. 어쩌면 그 감정이 찌개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음식은 결국 추억과 삶을 남에게 건네는 무언의 수단인 것이다.



카레와 한약방의 절묘한 만남

카레 역사와는 무관하게 요즘 대전에서 자주 보이는 카레 집 형태는 수프 카레다. 흐르는 듯한 카레 국물에 여러 야채를 적셔 먹는 즐거움을 주는 수프 카레는 일본 스타일로, 그 근원지는 삿포로다. 소비자에게 일식이라고 하면 일정 수준의 기대감을 줄 수 있기에 미식에 보수적인 대전에서 수프 카레가 많이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카레는 심지어 신비로운 느끼마저 주는데 수프를 먹고 건강해진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홋카이도 공식 관광 사이트에 따르면 “수프 카레는 1970년대 삿포로의 한 카페 ‘아잔타(Ajanta)’에서 약선 카레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라고 한다. 오래도록 끓인 카레가 마치 한약을 달이는 것과 비슷한 연상에서 나온 스토리텔링일진 모르나 실제 한약을 넣어 만드는 곳들도 종종 있는 듯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대전 한약방 거리에 카레 집이 생기는 것은 이해가 된다.

“저희는 8시간 정도 오래 끓이거든요. 양파부터 다 볶아 캐러멜라이즈 하고요. 카레와 이 공간에 잘 어우러질 거로 생각해서 들어오기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야 했어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죠. 또 테이블에 나가는 차는 옆 한약방에서 가져온 약재를 넣어 끓였죠.”

새롭게 약방 거리에 자리를 잡은 카레 집 사장의 고집이 이해되었다. 카레와 한약. 서로 오래 끓이고 또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것에서 그리 다른 개념도 아는듯하다. 어쩌면 대전 한약방 거리를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시킬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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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한약방 거리와 카레 집은 비슷한 맥락을 공유한다.jpeg
대전 한약방 거리에 생긴 카레 수프 집.jpeg
대전 한약방 거리와 카레 집은 비슷한 맥락을 공유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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