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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非幸運) 속에 사는 이들에게

비행운 | 김애란

by 모래쌤


어릴 때부터 나는 경품 이벤트, 제비 뽑기, 네 잎 클로버...... 등과 같은 행운이라고 하는 어떤 것과도 인연이 없었다. 그러한 자잘한 것에서부터 큰 시험에 이르기까지 그랬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사람 복은 없고 일복만 많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젊은 시절엔 그게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한테 배신당해도 꿋꿋하게 내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일 복 많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중년에 접어들고 슬슬 모든 것이 힘에 부치는 나날이 오자 불현듯 '인생이 갈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아지는 듯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니 이게 언제 끝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617일 전 갑자기 남편이 주님 품으로 가버렸다. 나랑 만나 사는 인생이 자신의 그전 삶에 비해 훨씬 더 불운의 연속이어서 지쳤던 것일까? 마지막 인사도 없이 한 순간 고인이 된 그를 원망해야 할지 부러워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멍했었다. 그 일이 나락의 끝이길 바랐지만 내 앞에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비행운'이라는 책을 읽으며 더 착잡해진 이유가...








김애란 소설 '비행운'은 2012년 발표된 작품인데,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각각의 작품들이 현실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 판타지 같다고 여겨질 만큼 비참하기도 했다. 한 작품이 끝나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이건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하면서도 '더 비참하려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다.



비행운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긴 구름이라는 뜻과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 행운이 없는 상황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들의 꿈이라는 것이 또 하나같이 비행운(飛行雲) 같아서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고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들에게는 비행운(非幸運)만 점점 더 커진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용대를 떠올리면 처량하기 그지없다. 평생 천덕꾸러기로만 살던 그를 사람으로 대해 주었던 조선족 여자 명화와의 짧은 결혼생활. 그녀는 중국에서 함께 새로운 인생을 만들자는 비행운(飛行雲) 같은 말과 직접 녹음한 중국어 회화 테이프만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남겨진 용대는 택시운전을 하며 명화의 목소리를 듣는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런스 니 헌 까오씽."

용대는 무심하게 따라 했다.

"런스 니 헌 까오씽."

이어, 명화가 한국말로 말했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었던 사람.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욕을 갖게 해 주었던 여자와의 반지하 셋방에서의 신혼생활. 그마저도 그에게 주어지기에는 아까운 행운이었다는 말인지......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리 쩌리 위안 마? 린스 니 헌 까오씽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를 나도 중얼중얼 따라 해 보니 한 문장을 넘어가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치받쳐 올라오는 설움에 말문이 막힌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친구도 다 떠나보냈는데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동지였던 남편을 그렇게 데려가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천 일이 지나면 알게 될까? 주님 품에 가는 날이 언젠지 몰라도 그때는 알게 되려나......



'하루의 축'의 기옥 씨의 삶은 사실 나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우리 남편은 가정을 중시했고, 가정에 충실했고, 특히 아내에게 충실했던 사람인데, 미안하게도 기옥 씨 남편은 정반대였고, 귀한 아들 영웅이가 어릴 때 산에 놀러 갔다가 실족사를 했다. 아이 하나 잘 키우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녀였지만 아이는 교소도에 있다. 어느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그녀가 무너졌다. 그 증거는 탈모증상. 그럼에도 그녀는 살아야 한다. 공항 화장실 청소를 하는 그녀는 명절엔 반드시 쉬겠다는, 그러니까 명절이 아니고서는 스스로에게 쉴 명분조차도 주지 못하는 팍팍한 삶을 사는 기옥 씨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 왜? 왜 살아야 하지?

왜긴 살아있으니 살아야지. 다른 생명체들을 봐. 좀 배우자





작품 속 주인공들은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소위 이 세상의 경쟁에서 밀린 약자들이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남들 만큼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고 내 모습이다. 그래서 보기 싫으면서도 자꾸 넘겨 보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울었다. 그리고 위로하고 싶어졌다.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위로도 되었다. 용대 씨, 기옥 씨, 너의 여름은 어떠니의 미영 씨, 큐티클 '나', 물속 골리앗의 소년, 벌레들의 애기 엄마, 서른의 수인씨, 호텔 니약 따의 서윤 씨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을 만난다면 그들 옆에 서 주고 싶다.








더 자세한 작품 소개는 블로그를 참고해 주세요.



https://blog.naver.com/bbkrtou/224012869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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