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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둑괭이 May 25. 2022

⑤동백(冬柏)은 꽃 잎을 떨구지 않는다

애기동백은 동백이 아니다

셋째날 下



택시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가지만 기사님도 좀 어려워 하더군요. 동백포레스트는 가시리 보다 좀 더 중산간 쪽에 있는데, 네비게이션이 큰 길 중심으로 가다보니 갈짓자를 그리며 안내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좁은 시골길 골목을 지나자 넓은 주차장이 보였습니다. 주차장 오른편에 담을 따라 동백꽃이 보입니다.


매표소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정말 핫한 곳인가 봅니다. 

입구를 지나니 동백나무가 줄을 서서 있고 붉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곳곳에 젊은 커플들이 동백꽃을 배경삼아 사진을 남기고 있네요. 

줄을 맞추어 서 있는 동백나무의 행렬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너무 인공(人工)의 냄새가 납니다. 동백포레스트는 ‘동백숲’이 아니었습니다. 4천원에 매표하기 위해 가둬 키우는 양식장이었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동백나무 아래 약속이나 한 듯 동그랗게 둘러 앉은 분홍 꽃잎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동백나무는 벚나무처럼 꽃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꽃송이 채로 떨어집니다. 

검붉은 꽃송이가 말그대로 ‘툭’ 떨어집니다. 떨어진 상태에서도 한참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3월~4월 초 동백나무숲을 만나면 낭자하게 떨어져 있는 동백꽃송이에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시인 김초혜 선생의 ‘동백꽃 그리움’이라는 시 입니다.


이 곳 동백포레스트에 있는 동백나무는 12월에 벌써 꽃잎을 떨굽니다. SNS용 사진에 이쁘게 나올 만큼 분홍빛 꽃잎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너무 실망해서 입장한 지 5분만에 나와 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동백포레스트’에 있는 동백은 동백이 아닙니다. 다매(茶梅)입니다. 원산지는 일본, 재배종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애기동백’으로 불립니다. 

애기동백은 11월부터 1월까지 꽃이 핍니다. 꽃이 질 때는 벚꽃처럼 꽃잎이 한장씩 떨어집니다. 토종동백은 2월부터 4월까지 꽃이 핍니다. 꽃이 질 때는 꽃봉우리 전체가 떨어집니다. 

꽃색깔도 다릅니다. 애기동백은 분홍색에 가깝고 떨어진 꽃잎은 연분홍입니다. 토종동백은 말 그대로 검붉은 핏빛입니다.


애기동백(다매)와 동백은 다른 나무입니다.

구분하기 위해 ‘토종’이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네요. 제주에서 먹는 ‘노르웨이산 고등어’와는 다른 감정입니다. 


11월부터 다음해 1월, 비수기에 관광객의 시선을 잡아줄 겨울 꽃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동백포레스트’ 같은 곳이 생기고 젊은 사람들에게 핫한 공간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애기동백은 겨울 제주 여행객에게 꽤 중요한 컨텐츠가 된 것 같습니다. 


이 곳 제주에서는 동백꽃이 4.3사건에서 죽어간 희생자를 상징합니다.  

2018년 4월,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 당시 제주에 살고 있었던 가수 이효리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이효리씨 앞 단상과 배경에 있는 꽃이 토종 동백꽃입니다.


1948년 4.3 이후로 당시 제주도민의 10%가 넘는 2만5천명~3만명이 학살 당했습니다. 육지에서 건너온 군 토벌대와 친일극우세력 서북청년회가 저지른 양민학살이었습니다. 

동백 꽃송이가 툭툭 떨어진 꽃무덤 위에 얼마나 많은 주검이 있었을까요?


동백나무는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한 번, 

두 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4월이 되면 우리 마음 속에서도 한 번 더 피겠지요. 


세 번 피는 꽃, 동백은 꽃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겨울 제주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건너온 애기동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제주도에서 만큼은 더 이상 관상수로, 가로수로 애기동백이 심어져서는 안됩니다. 

아름답지만 깊은 슬픔이 있는 곳, 제대로 기억하는 이 없어 두렵고 외로웠던 섬.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이제 겨우 조금씩 아물고 있는 상처를 같이 보아야겠습니다. 


서둘러 나와서 서귀포로 떠납니다. 이중섭거리 근처에 숙소를 잡아뒀습니다.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빙떡도 먹어보고 천혜향치킨으로 유명한 ‘수일통닭’집도 가야합니다. 제주 천하제일 김밥 ‘오는정김밥’도 먹어야 합니다.

혼자 서귀포에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획한 대부분의 메뉴는 혼밥스타일 이었습니다. 마침 목포에서 온 안소장도 있으니 다음에 두명 이상이 오면 가려했던 ‘천짓골’로 향했습니다.


‘천지골’식당은 돔베고기 전문집입니다. 유명 음식 방송프로그램 제주편에 소개되어 더 유명해진 곳입니다. 

제주에 온 첫날 ‘남원바랑’에서 돔베고기를 먹었지만 ‘천지골’식당은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천지골 식당에서는 흑돼지로 먹을 지 백돼지로 먹을 지, 부드러운 맛과 쫄깃한 맛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시간전 예약은 필수구요.  

덩어리 채로 도마위에 올라 온 고기는 주인장이 손님테이블에서 직접 썰어줍니다. 잠시 먹을만큼만 썰어줍니다. 고기 맛있게 먹는 법도 알려주고 옆테이블에 있는 다른 맛의 고기를 썰어와서 맛보기를 해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가져온 만큼 그 테이블에서 고기를 썰어 옆테이블에 갖다 주지요.


그 재미를 경험하고 싶어서 천짓골식당을 찾았지만 휴무일 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이 휴무이더군요. 

표선면 가시리에서 시작된 ‘일요일 휴무’는 서귀포에서도 이어집니다. 

재빨리 ‘오는정 김밥’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예약주문을 넣어도 몇시간이 되어야 먹을 수 있다는 제주 천하제일 김밥은 하필 ‘임시휴일’이라고 자동응답을 합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흑돼지 특수부위 전문점 ‘뽈살’에도 전화를 합니다.

“ 죄송합니다. 지금 12팀이 대기중이신데요. 오늘은 일요일이라 늦게까지 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오늘 드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 네 네 “ 

주인장은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거절합니다.  


#13. 안거리밖거리


내일 아침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식당으로 갔습니다. 이중섭거리 끝에 사거리나 나오는데  서귀포항 쪽 길 건너에 있습니다. 

안거리밖거리 식당은 가성비가 좋은 정식집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마도 오픈시간이 오전 8시여서 아침 메뉴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1인분에 9천원하는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옥동구이와 돔베고기외에도 각종 나물, 계란찜, 상추쌈까지 상 가득히 음식이 차려졌습니다.

제일 맛있게 먹었던 반찬은 산방산 마냥 봉긋 솟아오른 계란찜이었습니다. 

호불호가 많은 집이긴 한데, 저는 불호였습니다.

휴무 때문에 가고 싶은 식당을 가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남원바당에서 먹었던 각재기구이, 백리향에서 먹었던 분홍소시지, 나목도식당에서 먹었던 삭은 멸치젓갈 처럼 가지수가 아니라 한가지라도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되는데…

'풍요속의 빈곤'


처음 세웠던 계획처럼 혼자 먹는 아침이었다면 느낌이 달랐을까요?

“형, 안되겠어요. 내가 서귀포를 좀 압니다. 30년전에는 여서 몇년 살았어요.”

목포 안소장도 불호였나 봅니다.

“흑돼지나 먹으러 갑시다. 그 집은 여서 멀지도 않고 오늘 휴무도 아니여”


#14. 대향


다시 이중섭거리가 시작되는 사거리로 갑니다. 왼쪽 길가에 있더군요.

‘대향’ 흑돼지 고기 전문 식당입니다. 동그랗게 생긴 스테인레스 테이블, 다소 불편한 의자, 기름진 불판. 고기 꽤나 구운집입니다.


“ 제모한 걸로 드릴까요? 털 있는 걸로 드릴까요? “

“ 털 있는 걸 원하는 손님도 있나요? “

“ 흑돼지인지 확인하려고 털 있는 걸 찾으시는 분이 많아요”

“ 깎은 걸로 주세요”

‘제모’라… 재미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서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 제모된 흑돼지 오겹살 3인분 ”

식당과 손님 간의 불신이 낳은 주문방식은 그리 먹음직 스럽지 않는 형용사가 붙어서 주방으로 전달됩니다. 


목포 안소장의 30년 전, 서귀포 이 동네에서 살았던 이야기로 시작해서 현대사, 진보와 보수, 꽤 다양한 주제가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기름진 흑돼지와 한라산 소주도 이어졌습니다.

제주 흑돼지의 베지근한 기름 맛과 단백한 고기 맛이 참 좋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서귀포에 혼자 왔다면  올레시장에서 빙떡을 먹고 겨울방어 한 접시를 비웠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밤풍경이 좋다는 세연교를 보고 천지연폭포의 야경을 보았을 겁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수일통닭’에 가서 천혜향치킨을 픽하고 제주에일맥주와 함께 숙소로 향하고 있었겠지요.

안소장과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근처 생맥주집에서 먹태와 생맥주 1500cc를 먹었습니다. 

세연교와 천지연폭포의 야경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숙소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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