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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Aug 21. 2018

29_기쁜 일도 함께, 슬픈 일도 함께

아내와 나는 무언가를 함께 해냈다는 동지애를 느낍니다.

179.

이 세상에는 어떤 병명病名이 있습니다.

대왕문어의 다리처럼 엄청나게 강한 빨판들을 가지고 있어서,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삶에 달라붙어버리는.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평상시 같았다면 어떤 감정도 내 안에서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병명이,

지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질병이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180.

큰 뚜루뚜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발병한 그 병 또한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큰 뚜루뚜는 종종 다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나는 가장 먼저 관절에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그런 종류의 통증은 아닌 듯했습니다.

그렇다면 신경인가 해서 이것저것 만져보았는데,

그 역시 그다지 증상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다고 투덜거리다가도 툴툴 털고 일어나

곧잘 활발하게 뛰놀았기에 가볍게 여기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1월의 어느 토요일 큰 뚜루뚜는 계속 통증을 호소했고,

급기야 잠에서 깨어난 일요일 아침 아파서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큰 뚜루뚜를 데리고 그제서야 허겁지겁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응급실에 가본 적은 적지 않지만,

아무래도 이곳의 공기는 여느 곳과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밀도가 높고, 입자가 거친 공기로 들어차 있습니다.

나는 걷기 힘들어하는 큰 뚜루뚜를 업고 응급실의 자동문으로 들어갑니다.


나와 아내는 응급실의 레지던트에게 아이의 증상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큰 뚜루뚜를 데리고 의사가 알려준 검사실을 오르내립니다.

검사는 신속하게 이루어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허벅지 뼈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고여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병명은 ‘급성 골수염’입니다.

다음날 일사천리로 수술이 잡힙니다.

허벅지 부분을 절개해서 뼈에 생긴 고름을 빼내고,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입니다.






181.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을 때면

나는 주사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따위는 결코 하지 않습니다.

주사는 당연히 아프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고,

나쁜 병균이 들어와 큰 병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면역력이 생기고,

그래야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주사바늘의 아픔을 잠깐 참으면 그런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아이에게 이해를 구합니다.

다행히 큰 뚜루뚜는 주사의 공포를 대견하게도 초기에 극복한 아이였습니다.






182.

수술 직전 의사가 큰 뚜루뚜의 상태를 점검합니다.

나와 아내는 최선을 다해 큰 뚜루뚜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합니다.


의사는 큰 뚜루뚜의 유치乳齒 하나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술을 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하는데,

수술 도중 마취상태에서 유치가 빠져 기도를 막을 수도 있다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유치를 뽑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나는 큰 뚜루뚜에게 그 상황을 설명해줍니다.

수술을 앞두고 겁에 질린 큰 뚜루뚜는 치아를 뽑아야 한다는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아플 거야. 근데 잠깐이야. 잠깐만 참으면 돼. 아빠가 바로 직전에 말해줄게.”

나는 애써 담담하게 큰 뚜루뚜에게 말합니다.


큰 뚜루뚜를 태운 이동식 침대가 내과 병동에서 치과 병동으로 옮겨집니다.

수술이 임박해 있어서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치아를 확인한 의사가 무시무시한 발치용 도구를 큰 뚜루뚜의 입으로 들이댑니다.


아이는 패닉상태에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울음이 거의 발작적입니다.

꾹꾹 눌러온 두려움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수술이 잡혀 있다는 말에 의료진은 서두릅니다.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큰 뚜루뚜의 팔다리를 움켜 잡으려 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그들을 막아섭니다. 

한 간호사가 못 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보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주사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해 나는 알고 있습니다.

주사가 아파서 그들에게 공포증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아이였던 그들이 겁에 질릴 때

아무도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그 기억은 주사공포증이 됩니다.

몸의 기억은 머리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가고,

주사를 맞는 아픔보다 주사를 맞기 직전의 두려움이 더 큰 법입니다.


아비가 그들을 제지하자 큰 뚜루뚜의 울음이 살짝 움츠러듭니다.

나는 큰 뚜루뚜를 보고,

큰 뚜루뚜는 나를 봅니다.

“이제 곧 이를 뺄 거야. 아빠가 왜 빼는 지는 설명해줬지? 지금이야. 지금, 잠깐만 참으면 돼.”


큰 뚜루뚜는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아이의 입술에 힘이 들어갑니다.

나는 의료진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큰 뚜루뚜는 입을 벌리고 의사는 발치용 도구를 치아로 가져갑니다.

아이가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굳이 큰 뚜루뚜의 팔다리를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행히 유치는 흔들리고 있어서 발치용 도구로 잡자마자 맥없이 빠집니다.

그런데도 큰 뚜루뚜의 눈시울에 눈물이 가득 차오릅니다.

침대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는 가만히 돌아서서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큰 뚜루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멋져."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합니다.






183.

이제 큰 뚜루뚜가 누운 이동식 침대가 수술실 앞에 당도합니다.

아비와 어미는 아픈 아이를 수술실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큰 뚜루뚜를 봅니다.

아이의 손이 가녀리게 떨리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미는 침대에 실려 아이는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나와 아내는 빨갛게 달아오른 조개탄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수술실의 자동문이 닫히고 큰 뚜루뚜의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옵니다.

큰 뚜루뚜가 많이 울어서 좀 안정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마취를 할 때까지 보호자가 옆에 있어주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아내가 간호사를 따라 수술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홀로 남습니다.


아내는 큰 뚜루뚜가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곁을 지키다가 수술실을 나옵니다.

아내의 눈가가 발갛게 부어 있습니다.


허벅지 뼈에 생긴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이 시작되고

긴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수술실 앞의 대기실에서 아내와 나는 기다립니다.

나는 몇 번이나 아내 몰래 대기실의 벽시계를 올려다봅니다.






184.

나는 어째서 아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할 때,

빨리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았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서 이런 병이 생긴 건지,

혹여 아이가 아픈 게 무심하고 게으른 내 탓인 것만 같아 애통합니다.

아내 역시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나는 아내의 등을 가만히 토닥입니다.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185.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수술은 끝이 납니다.

집도의는 뼈에 생긴 고름을 다 제거했다면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이 전혀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큰 뚜루뚜는 안스러워 보입니다.

얼굴이 붓고 힘이 들어 보이지만, 다행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큰 뚜루뚜에게 수술이 잘 끝났고,

정말 힘들었을 텐데,

멋지게 잘 참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합니다.


"아빠는 네가 자랑스러워."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합니다.


의사는 수술부위의 추이를 보름 정도 지켜보자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병원생활이 시작됩니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큰 뚜루뚜의 침대에 딸려 있는 보조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둘 중 한 명은 아이 곁을 지켜야합니다.

하루는 내가,

하루는 아내가.

바톤을 주고 받는 릴레이주자들처럼 아이를 보살핍니다.


아침이 밝으면 병원에서 곧장 일터로 향합니다.

이른 아침의 병원을 나설 때면 기분이 묘합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병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어떤 곳 같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병원은 먼 바다의 섬처럼 외따로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186.

작은 뚜루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보살펴주십니다.

아이들을 돌봐주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으시는 분들입니다.


아내와 교대를 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작은 뚜루뚜와 숨은 그림찾기를 합니다.

작은 뚜루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숨은 그림찾기입니다.

한참 숨은 그림찾기에 열을 올리다가

문득 형이 기억났다는 듯이 동생은 다시 형의 안부에 대해 묻습니다.


나는 작은 뚜루뚜에게 형이 얼마나 멋지게 모든 걸 잘 해내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네 살인 작은 뚜루뚜는 나름대로 형을 걱정합니다.

형이 보고 싶다고, 당장이라도 만나러 가고 싶다고 조릅니다.

나는 마치 어떤 주문을 거는 주술사처럼

“형은 금방 나아서 너랑 다시 놀아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하고 말합니다.


작은 뚜루뚜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받아들입니다.

아비의 바람을 진짜로 믿어줍니다.

믿어주는 작은 뚜루뚜를 보며 아비는 또 힘이 납니다.


아내가 없는 침대 위에 작은 뚜루뚜와 둘이 누워 잠이 듭니다.

나는 작은 뚜루뚜를 재우기 위해 자장가를 부릅니다.

아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잠든 작은 뚜루뚜의 가슴을 자장가의 박자에 맞춰 토닥입니다.


사람들은 그림동화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주인공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우리 네 식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습니다.

별다를 게 없다고 느꼈던 하루하루가,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나날들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87.

큰 뚜루뚜가 잠든 8인용 병실의 보조침대에서 나는 몸을 눕힙니다.

병실의 어둠으로 도심의 불빛이 아슴프레 스며듭니다.

어두운 병실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기도를 합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애끓는 아비의 심정으로 기도를 합니다.


이 시련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무엇도 상하거나 파괴하지 못하기를.

나는 염원합니다.

내가 아무리 염원해도 그럴 수 없다면,

그럴 수 없는 대로

우리가 굳건히 연결되어 서로를 지켜주기를.

이 뜻하지 않은 시련 앞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어주기를 빕니다.

언젠가 아내와 내가, 그리고 뚜루뚜뚜루뚜가

멋진 한 팀이었다는 걸 웃으며 추억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력하고 나약한 아비는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급박한 순간에도 나는 전능한 자의 섭리 같은 것에

나를 온전히 내어주고픈 생각은 일절 없습니다.

나는 다만 기도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뿐입니다.

그 간절함이 나를 더욱 굳세게 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의 기도는 천상의 신을 향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못 견디게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손을 더욱 꽉 쥘 것입니다.


보조침대에서 일어나 잠든 큰 뚜루뚜를 봅니다.

수술한 자리에 새 살이 자라나느라 아이의 얼굴에는 힘겨움이 묻어 있습니다.

나는 이불을 덮어주고 큰 뚜루뚜의 머리칼을 쓸어줍니다.      








188.

회복기에 접어든 큰 뚜루뚜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누빕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산책을 나갑니다.

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우울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미리 챙겨두었던 여러 영화들을 노트북으로 보여주고,

책을 읽어주고, 보드게임을 함께 합니다.

우울이 비집고 들어올 시간적 틈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씁니다.


휠체어에서 벗어나 목발이 주어지고, 수술 후 했던 깁스를 풉니다.

다리 근육이 굳어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는 말에

큰 뚜루뚜의 다리를 주무르고 다리를 폈다 굽혔다 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큰 뚜루뚜는 뭉친 근육으로 힘들어 하지만 나는 엄하게 아이를 대합니다.


"아, 아."

큰 뚜루뚜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큰 뚜루뚜는 굳어진 근육을 움직이며 안간힘을 씁니다.

나는 펴지지 않는 무릎 관절에 힘을 줍니다.

아이가 어금니를 꽉 뭅니다.

주먹을 쥐고 아비의 팔을 마구 때립니다.


매일 수술 부위를 소독해주는 인턴은

큰 뚜루뚜의 다리가 펴지는 각도를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회복이 정말 빠르네요."

큰 뚜루뚜가 노력한 만큼 다리는 금세 회복됩니다.

다리를 자꾸 써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틈만 나면 목발을 들고 병실을 나섭니다.  


큰 뚜루뚜의 담당의는 수술 부위가 정상적으로 잘 아물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끝났다면서 퇴원을 권합니다.

퇴원을 한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수술부위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합니다.


마침내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옵니다.

겨울의 추위가 한풀 꺾인,

아직 봄이 멀리 있지만,

제법 햇살이 따사로운 2월의 토요일입니다.

 

제법 목발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 큰 뚜루뚜가 앞장을 서고,

작은 뚜루뚜가 신이 나서 형의 뒤를 따릅니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앞서가는 아이들을 뒤에서 바라보며

우리가 무언가를 함께 해냈다는 동지애를 느낍니다.








189.

그 병실에서 큰 뚜루뚜와 함께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르네 고니시가 쓰고,

장 자크 상페가 삽화를 그린 ‘꼬마 니콜라’ 합판본입니다.


병원에 오기 전, 잠자리에서 큰 뚜루뚜에게 읽어주던 책입니다.

절반 정도 읽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서는 시간이 많아 점점 독서량이 늘어납니다.

아비가 읽어주는 음성을 들으며 큰 뚜루뚜가 킥킥거릴 때,

나는 정말이지 행복합니다.


이 시련 앞에서도 우리가 머리를 모으고 킥킥거릴 수 있다는 게 한없이 좋습니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세균들이 '뭐야? 이 인간들, 참 괴상하네.'하고 주춤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나에겐, 완독한 책의 속지에 독서를 하며 느낀 점들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대개,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은 직후에 곧장 쓰는데,

그렇게 하면 독서를 하는 내내 내 맘에서 찰랑거렸던 느낌들을 단박에 쏟아내 써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훗날 그 문장들이 내 독서의 증명서 같은 것으로 남게 됩니다.

나는 그 느낌과 더불어 책을 다 읽은 장소와 일시도 기록해둡니다.

분홍색 하드커버로 묶인 ‘꼬마 니콜라’의 속지엔

그해 늦겨울, 내가 써두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0.

'2016년 늦겨울.

이대목동병원에서 급성골수염으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던,

그 숨 막히는 시간 동안 큰 뚜루뚜를 웃게 했던 이야기.


'꼬마 니콜라’ 시리즈는 아주 오래 전에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읽어주겠노라 점찍어두었던 책이다. 그 책을 큰 뚜루뚜에게 읽어준다. 아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쓴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르네 고시니의 리듬은 얼마나 발랄하며 경쾌하고, 장 자크 상페의 삽화는 얼마나 앙증맞고 살아 있는가.


내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낄낄거리며 들어주던 아들.

밀려들던 불안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던 우리를 연결해주던 이야기.

무엇보다 우리 안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그 불안을 잊게 해주던 이야기.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하나의 추억을 만든다.

조금은 서로에게 더 다가간다.

어둠이 내리던 8인용 병실의 창가 자리에서 귀 기울여주던 아들을 기억한다.


이제 잠들었나, 싶어

읽기를 멈추면,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며

“아빠, 나 안 자. 계속 읽어줘.” 하고 말하던 아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나는 라디오 드라마의 성우처럼 등장인물에 맞춰 목소리를 제각각 달리하며 읽는다.

뚱보 알세스트와, 부잣집 아들 조프루아, 주먹대장 외드, 우등생 고자질쟁이 아냥, 경찰관 아들 뤼퓌스....... 그 이야기들에는 어른들이 주입하는 교훈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아이들이, 그 빛나는 순간들이, 솔직한 마음들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아이를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르네 고시니에게 머리가 숙여진다.


아비는 큰 뚜루뚜에게 책을 읽어주며 킥킥거리고,

큰 뚜루뚜는 아비의 낭독을 들으며 킥킥거린다.

킥킥거리다가,

우리 둘은 잠이 든다.


큰 뚜루뚜가 잠들면 나는 이따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기도를 생각하곤 한다.

다리를 절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러면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했던 기도를 기억한다.


이 늦겨울의 수술은 우리에게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우리 넷이 어떻게 하나가 되었는지 기억하는 고리가 될 것이다.

달빛이 쏟아지는 병실의 창가에서 곤히 잠든 큰 뚜루뚜를 보며,

퇴원을 앞둔 늦겨울, 이대 목동 병원에서 아비가 쓴다.'






190.

집으로 돌아오는 날, 다시 우리 네 식구가 한 자동차에 올라탑니다.

나는 집으로 차를 몰며 지난 한 달간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응급실에 가던 날부터 퇴원을 하는 이 늦은 오전까지.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한 달은 일종의 압축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함께 했는지 

이 경험은 징표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됩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버리면 그때부터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한 인간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그거면, 됩니다.

실은 그것 밖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담담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일이 다가오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비가 할 일을,

할 수 있는 한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191.

나는 남몰래 우리집 가훈을 정합니다.

우리 집 가훈은 이 문장입니다.

'기쁜 일도 함께, 슬픈 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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