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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30. 2018

14_우리의 말은 흩어져도
우리의 몸은 기억합니다

물고, 빨고, 핥고



98.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종종 뜻 모를 외로움에 빠져들곤 합니다. 

딱히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는 어떤 빈 구멍 같은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해질녘의  한강 다리를 차로 건널 때나, 

인적 없는 새벽의 골목을 걸을 때, 

도심의 흐린 하늘 아래로  눈발이 점점點點이 흩날리기 시작할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에 홀로 탑승할 때면, 

이따금 모든 것이 허무하게 다가옵니다. 


발에 닿으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낙엽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고단함 속에 가려져 삶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은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이 도시는 살아가기에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어떤 힘이 나 대신 나를 끌고가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내가 아닌 내가 나타나 나인척 하는 경우마저도 있습니다.  


모두들 다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나만 같은 자리를 끝도 없이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 불안하기도 합니다. 


불현듯 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이상한 허탈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내 안의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걸까요?

나는 꽤 오랫동안 한 지점을 응시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 

쓸쓸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에 있겠어.

혼자가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어.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어.

다, 그렇고 그런 거야. 


나를 위로해보지만,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외로움은 조금도 덜어지지가 않습니다. 






99.

그러던 서른 중반의 어느 날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알게 됩니다. 

꽤 긴 시간 동안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 고여 있던 허무함이 

세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섰다는 것을. 


그 끈적끈적한 쓸쓸함은 어디로 간 거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내 눈에 아기가 들어옵니다

아기가 나를 알아보고 눈을 맞춥니다. 

그 순정純正한 까만 눈동자가 나를 봅니다. 


나는 아기를 품에 안습니다. 

잠시만 시선을 돌리면 구강기의 아기는 무언가를 물고 빨고 핥고 있습니다.

어미의 젖을 빨고, 고무젖꼭지를 빨고, 손가락을 빱니다. 

이가 나려고 간지러워 치발기를 뭅니다.


나는 손가락이 맛있는 막대사탕이라도 되는 양 쭉쭉 빨고 있는 아기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100.

아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모두 한때는 물고 빨고 핥는 존재였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조금은 다른 욕구와 표현방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은 가장 큰 욕구 중의 하나는, 

바로 물고 빨고 핥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평온할 때엔 내 곁에 물고 빨고 핥을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손을 맞잡고,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불행하다면, 물고 빨고 핥을 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기를 있는 힘껏 꽉 안아주고 싶습니다. 






101.

나는 그야말로 마음껏 아기 곁에 누워 뒹굽니다. 

아기를 물고 빨고 핥을 때마다 

내 안에 무언가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 작고 연약한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깨물어주고 싶다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나부끼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 임하는 이 안온함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요? 


우리의 체온이 서로에게 전해집니다


나는 아이가 나보다 더 덩치가 커져도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건장한 청년이 된 아들과 머리칼이 허옇게 센 아비가 서로를 안고 뺨을 부비는 상상을 합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늙고 가벼워져 아기처럼 작아질 것입니다. 

내 아이의 품에 아기처럼 안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102.

언어는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살다보면, 때때로 도저히 말로는 다 할 수가 없는 순간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럴 때면 한 번의 포옹이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안으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사랑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집니다. 


우리가 서로를 물고 빨고 핥는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말은 흩어져도 우리의 몸은 기억합니다

몸은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각인된 것들을 좀처럼 잊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커나가는 동안 

뺨을 부비고 마음을 부비는 이 소중한 행위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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