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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Jul 12. 2018

24_“동생이 생겨서 좋아?”

첫째는 둘째에게, 둘째는 첫째에게

151.

아기를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가 생기지 않아 고생을 하는 부부들이 적잖이 눈에 띕니다.

큰 뚜루뚜가 태어나고 아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되면서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깁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둘째에 관한 것입니다.

여전히 모든 것은 안개에 에워싸여 있고,

국가는 출산과 양육에 관한 한 거의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거의 그렇게 체감됩니다.)


하지만 형제 하나 없다는 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아비가 죽어 장례를 치를 때 상주 완장을 차고

홀로 서 있는 큰 뚜루뚜의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하기가 싫습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양육비가 몇 억씩 들어간다지만, 우리는 둘째를 가지기로 합니다.

첫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둘째이기에, 그 선택은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훌륭하게 아이를 넷, 다섯 씩 낳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나는 더 낳자.”

그게 아내와 나의 결정입니다.


첫째는 둘째에게,

둘째는 첫째에게,

서로서로 좋은 벗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렇게 아내는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다시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152.

작은뚜루뚜가 형이 머물던 곳에서 생성됩니다.

동생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좁쌀만 한 수정체입니다.

나는 이번에도 눈을 껌뻑이며 아기를 봅니다.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면 나는 아내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갑니다.

아내의 담당 산과의가 아내와 아기의 상태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줍니다.

그러다가 슬쩍 흘리는 듯한 말투로 산과의가 말합니다.


"큰 애가 어머니 유두를 만지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산과의는 무심히 지나치듯 말했지만,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나는 산과의의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묻습니다.

"아까 유두를 만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 이유가 뭐죠?"


산과의는 큰 아이가 어미를 지나치게 자주 자극하면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아 유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나와 아내는 그 말을 듣다가 깜짝 놀랍니다.

나는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처럼 형과 동생의 관계가

그저 우애 좋은 사이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내가 받는 사랑의 절반을 빼앗아갈 숙명의 라이벌에 대한 경계가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와 아비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와 아이 사이의 관계도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지점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153.

첫째와 둘째의 관계에 대한 추억은,

세월이 꽤 흘러도 흩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어느 집 안이건 하나쯤 회자되곤 합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자식이나 조카를 앞에 두고

짓궃은 장난을 치듯 어린 시절의 시샘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동생을 이뻐하다가도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면 몰래 아기를 꼬집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사람들은 첫째의 질투에 대해 장난기 어린 농담을 던지지만,

첫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단순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둘째는 첫째가 독차지하던 사랑을 한순간에 가져가버립니다.

물론 첫째 역시 그 사랑을 아무런 대가 없이 얻었지만,

자신을 향하던 모든 애정의 찬사들이 한순간에 동생의 것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저 작고 요망한 것이 내 사랑을 몽땅 가져갔어.'

어제까지만 자신의 것이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갓 태어난 동생을 향합니다.

첫째는 엄청난 충격과 더불어 상실감과 질투에 휩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첫째와 둘째의 관계 설정의 첫 단추

이런 식으로 꿰어질 확률이 무척 높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임신소식을 접하자마자 큰뚜루뚜에게 동생이 생길 거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큰 뚜루뚜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에,

어미가 새 생명을 잉태했다는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작은 뚜루뚜가 엄마의 뱃속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큰 뚜루뚜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초음파 사진에 찍힌 아기를 함께 보고, 동생의 심박을 함께 듣습니다.

큰뚜루뚜를 기다릴 때는 둘이었는데,

작은 뚜루뚜를 기다릴 때에는 셋이 됩니다.


네 살이 된 큰뚜루뚜는 아내의 배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동생에게 속삭입니다.

손을 가져다대고 태동을 느낍니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도 이랬어.”

내가 큰 뚜루뚜에게 말합니다.

"네가 이곳에 왔듯이, 이제는 곧 동생이 이곳에 올 거야."


큰 뚜루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작은 뚜루뚜의 초음파 사진을 신기하다는 듯이 들여다봅니다.

나는 잘 갈무리해둔 큰 뚜루뚜의 초음파 사진도 꺼내 보여줍니다.


나와 아내가 큰 뚜루뚜를 통해 다시 한 번 태어났듯이,

큰 뚜루뚜는 동생을 통해 다시 한 번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큰 뚜루뚜에게도 동생의 탄생은 신나는 일이 됩니다.


아비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작은 뚜루뚜가 태어나기 전에 큰 뚜루뚜는 이미 형이 됩니다.

우리가 큰 뚜루뚜가 태어나기 전부터 큰 뚜루뚜를 사랑했던 것처럼.

큰 뚜루뚜는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에 형이 되어 동생을 기다립니다.      






154.

오늘은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아내가 작은 뚜루뚜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나와 큰 뚜루뚜는 힘을 합쳐 대청소를 합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할 일이 많습니다.


이제 다섯 살인 큰 뚜루뚜는 제법 아비를 잘 도와줍니다.

아비가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면,  

큰 뚜루뚜는 책들을 제자리에 꽂고, 장난감을 치웁니다.

우리는 산후조리원의 퇴실 시간에 맞춰 아내를 데리러 갑니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큰 뚜루뚜는 아내의 품에 안긴 작은 뚜루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큰 뚜루뚜는 작은 뚜루뚜를 안아보고 싶다고 합니다.

아직 혼자 안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습니다.


막 태어난 작은 뚜루뚜는 목을 가누지 못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큰 뚜루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큰 뚜루뚜가 아기일 때 나와 아내는 서로 안겠다고 곧잘 투닥거리곤 했습니다.


나는 큰 뚜루뚜에게 팔로 목을 받치는 요령을 알려주면서 안아보라고 합니다.

영 믿음이 안 가는 불안한 자세지만, 나는 기꺼이 동생을 내어줍니다.

대신 침대에 앉으라고 하고, 아비는 옆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합니다.


큰 뚜루뚜는 품에 안은 동생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바싹 들이댑니다.

그러곤 뭘 생각하는지 미동도 없이 동생을 빤히 봅니다.

아내와 나도 숨을 죽이고 큰 뚜루뚜와 작은 뚜루뚜를 봅니다.

“동생, 어때?”

아내가 조심스레 묻습니다.

“예뻐.”

큰 뚜루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합니다.


주책맞게도 나는 그 말에 남몰래 콧날이 시큰해집니다.

큰 뚜루뚜가 태어난 날 아침, 병원 앞 김밥집에서 밤새 고생한 아내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김밥과 어묵을 사들고 온 나에게 아내가 물었습니다.

“아기 봤어?” 하고.

그 질문에 내가 했던 대답을 이제 다섯 살이 된,

그리고 형이 된 큰 뚜루뚜가 작은 뚜루뚜를 보고 말합니다.

예쁜 형이, 예쁜 동생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둘은 넷이 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가족이 됩니다.

“동생이 생겨서 좋아?”

큰 뚜루뚜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는 아내의 짐을 챙겨 산후조리원을 나섭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네 식구가 한 차에 올라탑니다.


부릉부릉.


우리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155.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짐을 풀기 전에 침대에 작은 뚜루뚜를 눕힙니다.

나와 아내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큰 뚜루뚜가 작은 뚜루뚜에게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나는 서재로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나옵니다.

본능적으로,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큰 뚜루뚜가 작은 뚜루뚜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신생아에게는 감염의 위험이 있다지만,

이 샘솟는 사랑의 표현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작은 뚜루뚜는 신기하게도 투정도 없이 형을 봅니다.

나는 고양이처럼 소리 내지 않고 다가갑니다.

렌즈를 겨누고 검지를 셔터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감광판에 새겨 넣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뚜루뚜뚜루뚜가 서로를 의지하고 아끼면 좋겠습니다.

딱 오늘 만큼만.

뚜루뚜뚜루뚜가 처음으로 한 앵글에 담긴 사진은 아비와 어미를 웃게합니다.

오늘은 형이 동생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전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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