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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Jul 08. 2018

23_"쟤는 매번 혼나는 아이야."

상대를 뜯어고치려는 관계는 결국 으그러집니다.

146.

이상한 일입니다. 

아픈 가족이 있으면 꼭 앰뷸런스를 보게 되고, 

군대에 간 동생이 있으면 꼭 군인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로 코앞에 있어도 관심이 없는 것은 어찌 된 일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본 것도 

혼자서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반대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나는 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른 때엔 보이지 않던 앰뷸런스가 보이고, 군인이 보이는 겁니다. 

아픈 가족 생각에, 군대에 간 동생 생각에. 

그 생각들이 평소에도 여느 거리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그것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비가 된 이후, 거리에 나서면 내 눈엔 어김없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보입니다. 

내 시선이 아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부모가 아이를 꾸짖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부모가 언성을 높이고,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을 향합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어긴 아이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는 훈육의 당사자인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아이를 혼내는 것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147. 

나에게는 남자 사촌동생 두 명 있습니다. 

남자 형제가 없고 누나들만 있는 탓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친형제처럼 끈끈한 우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방학 때면 사촌동생들을 불러 며칠이고 걷어 먹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실컷 뒹굴다가 

방학이 끝날 때면 아쉬워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곤 하던 사이였습니다. 

동생들은 나를 잘 따랐고, 

나는 동생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어야 하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연락 없이 너무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용돈을 군것질에 써버리거나, 

예배를 빼먹고 다녀온 척 하거나. 


그럴 때면 어머니는 제일 큰 형인 나를 혼냅니다. 

혼나는 거야 그리 대단한 사건이 아니지만, 

동생들 앞에서 혼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은 정말이지 싫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도 슬쩍슬쩍 동생들이 나를 보고 있나 살핍니다. 

동생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멋진 형이 되고 싶은데. 

언제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나는 남몰래 입술을 꽉 깨뭅니다. 

그 이상한 부끄러움은 내 마음에 오랫동안 자국을 남겼습니다.      







148. 

여러 사람이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아이를 혼내는 일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혼내고, 아이는 위축됩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이중의 관계가 생겨납니다. 


혼나는 나와, 

혼나는 내 모습을 들킨 나.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는 나와,

남들이 그게 바로 너야, 라고 믿는 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아이를 보면서, 

“쟤는 매번 혼나는 아이야.” 하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혼이 나는 아이는 주눅이 듭니다. 


한 사람은 종종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존재입니다. 

은연중에 아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항상 혼나는 아이로 인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 중 혹여 한 장면만으로 한 아이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로 아이가 매번 혼날 짓만 한다고 지레 짐작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두려움은 아이의 자존감이 현저히 결여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나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신경 쓰게 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훌륭한 자존감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149.

아이를 훈육할 때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합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지만 아이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뚜루뚜뚜루뚜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옵니다.  


훈육은 아비와 뚜루뚜루뚜, 둘 사이의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나는 뚜루뚜뚜루뚜를 데리고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복도의 한적한 구석으로 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도착하면 아이는 한결 아비에게 집중합니다. 


나는 거기서 단호한 어투로 말합니다. 

상황과 규칙을 설명하며 훈육을 해나갑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훈육을 한다면 아이는 집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집중력을 높아집니다. 


나는 아이에게 설명하고, 질문하고, 동의를 구합니다. 

뚜루뚜뚜루뚜는 내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150.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상황이 역전됩니다. 

아비가 뚜루뚜뚜루뚜를 혼낸 그 방식으로, 뚜루뚜뚜루뚜에게 아비가 혼이 납니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육두문자가 입에서 튀어나올 때나, 

금단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담배를 피울 때면 아이들이 가차 없이 아비를 혼냅니다. 

역시나, 한 만큼 당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나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번번이 완전히 고치지는 못합니다. 

아비도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데, 

대관절 아이를 어떻게 뜯어고치겠습니까. 


다만, 노력하겠다는 다짐만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완전한 변화 같은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훈육 같은 것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일 때에 일어납니다. 


변화의 기운이 생성되려면 무엇보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조금씩 고쳐날 것이고, 아비도 조금씩 아이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아야 아이도 나를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내가 한 대로 아이도 나를 배려하고, 

내가 한 대로 아이도 나를 혼냅니다. 

상대를 뜯어고치려는 관계는 결국 으그러집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기다리면 됩니다. 

"노력해볼게." 하고 말하고, 서로를 믿어주면 됩니다. 

기다릴 수밖에 없고,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고 보면 믿고, 참으며,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김이을 작가의 '뚜루뚜뚜루뚜와 함께 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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